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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다양성, 큐레이션

한겨울, 봄을 집에 들이는 방법

장우철의 책 [a boy cuts a flower: 소년전홍] 외

Text | Kakyung Baek
Photos | fictiondle, Ulla, unsplash

사람이 활짝 핀 꽃을 보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인 알파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렇게 물리적 작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봄과 꽃을 상상하면 어느 정도 마음에 온기가 도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해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새해를 마주해야 하는 괴로움과 불안에 싸여 있다면, 보기만 해도 봄이 상상되는 작품을 내 방 어딘가 둬보는 것은 어떨까? 한겨울에 선보인 신작 두 점을 소개한다.








겨울 한복판에서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현재 여름인 나라로 여행 가기, 두꺼우면서 가벼운 질 좋은 외투 장만하기, 충분히 사랑스러운 애인 구하기 등등. 가장 비효율적이라서 가장 낭만적인 방법은 봄을 상상하는 일이다. 갓 피어난 여린 잎과 봄날의 하늘, 부유하는 훈기 같은 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몸과 마음에 온기가 조금 퍼지는 것 같다.



이 겨울에 봄을 상상하기 좋은 신작을 소개한다. 그저 집에서 틀어두거나 소파나 테이블 위에 두는 것만으로도 봄처럼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우선 장우철의 책 [a boy cuts a flower: 소년전홍]이다. 책 표지는 분홍색 꽃 사진이다. 두툼하고 좋은 향이 나는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 꽃 사진이 나온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고 그 자체로 신비하고 우아하게 생긴 꽃이다. 작가는 꽃 하나에 짧은 이야기를 하나씩 썼다. 처음부터 쭉 읽지 않고 아무 데나 펼쳐 봐도 괜찮다. 어떤 페이지에나 꽃이 있고 어디서 읽기 시작해도 괜찮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우철은 15년간 매거진 에디터로 일했고 지금은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그는 이 책에 주로 꽃을 피사체로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적었다. “저는 부족하지만 꽃은 완벽하니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다시 꽃을 보면 전과 다르게 완벽하니까요. 꽃의 예쁨, 꽃의 징그러움, 깨끗함, 더러움, 찬란함, 이상함은 어떻게든 계속되고, 덩달아 계절을 대하는 기쁨이 있고, 행여 꼴도 보기 싫다면 철저히 버릴 수 있다는 쾌감도 한몫합니다.” 꽃에 대해 으레 따라붙는 자연스러운 단상은 아니다.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명이 여기저기서 움트는 봄날의 땅 같은 대답이다.




저는 부족하지만 꽃은 완벽하니까요. 이렇게 말해놓고 다시 꽃을 보면 전과 다르게 완벽하니까요.”




그저 꽃 사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a boy cuts a flower: 소년전홍]을 꼽은 것은 아니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장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묘한 것을 꼽자면 봄의 공중이다. 갑작스레 온화해진 기후 탓에 봄을 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봄날의 기분을 봄의 공중이라 표현한 것이다. ‘봄의 공중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병치한 이야기에는 서정주 시인의 시 의 한 행이 인용되어 있다. “슬픈일좀 슬픈일좀.” 인간의 모든 감정은 명징한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데 그중에서도 봄에 느끼는 감정은 더욱 표현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장우철은 봄의 공중이란 말과 시의 한 행으로 독자를 속절없이 봄의 한가운데로 이끈다.








바이닐은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만큼 재킷 이미지를 어딘가 세워두고 바라보며 그 안에 든 가사집, 화보를 뒤적거리는 재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디지털 음원과 바이닐을 동시 발매한 뮤지션 울라 스트라우스Ulla Straus의 앨범 [Foam]은 봄을 기리기에 제격인 음반이다. 앰비언트 장르의 이 앨범은 리스너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그리는 캔버스가 되기보다 울라 스트라우스의 예민하고 고유한 내면의 세계로 초대하는 방식에 가깝다. 기타와 피아노 연주의 조각, 여성 보컬의 목소리 등 작은 소리의 조각이 콜라주처럼 이어져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실험적 장르인 것을 감안하고도 [폼]은 일상에서 틀어두기에 부담 없을 정도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일할 때, 책 읽을 때 백색소음처럼 틀어두기에도 좋지만 뮤지션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음악에 오롯이 심취하기에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때, 거리를 걸을 때,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창작자가 계획해 넣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부유할 테고, 하얀 꽃 한 송이가 그려진 재킷을 힌트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에 폭설이 내렸다. 폭설은 도시의 온갖 더러운 것을 덮고서 며칠 동안 가만했다. 2023년을 앞두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미리 보여주기라도 하듯 백지를 닮은 풍경이었다. 슬프고 힘든 일이 많았던 올해가, 1231일이 지난다고 해서 잊히지도 해결되지도 않을 테지만, 새해에 소원 빌 듯 꽃을 보며 빌어보는 것이다. 이 혹독한 추위도 곧 지나갈 것이며 봄이 오면 다시 나무가 잎을 틔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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