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밥을 먹는 것은 사회화를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우선 밥을 먹는 곳처럼 서열이 또렷하게 시각화되는 곳도 없다. 한국에서 가장은 아내, 자식과 겸상하지 않음으로써 가족에게 권력의 정점에 있음을 알린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의 주택에서 아직 식당이 분화되기 전 가장이 앉는, 홀의 커다란 의자가 식사의 중심이었다.
영화 <소공녀>에서 두 여성이 식탁 양 끝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긴장감이 감돈다.
일반 가정에서 주방 바로 옆에 식탁이 있는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모습이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지는 불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을 차려 방에서 식사하는 가정이 많았다. 한국의 전통 가옥 구조인 한옥에서는 식당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엌에서 밥과 반찬을 만들고 상에 올려 방으로 들고 갔다. 한옥에서 방은 다목적 공간이다. 일도 하고 잠도 자고 손님도 맞이하고 밥도 먹는 곳이다. 그러니까 서재이자 침실이자 응접실이자 식당인 셈이다. 이런 한옥 구조의 특성상 한국에서는 영구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고정된 식탁이 발전할 수 없었고, 그것을 대신해 이동이 쉬운 소반이 발전했다. 여성이 담당했던 밥상 차리기는 하루 일과 중 가장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노동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식구食口’, 즉 ‘밥을 먹는 입’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가족이 밥상 공동체임을 드러낸다.
“오늘날 식탁이 있는 통합된 주방만큼 가정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현장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밥을 먹는 것은 사회화를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우선 밥을 먹는 곳처럼 서열이 또렷하게 시각화되는 곳도 없다. 한국에서 가장은 아내, 자식과 겸상하지 않음으로써 가족에게 권력의 정점에 있음을 알린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의 주택에서 아직 식당이 분화되기 전 가장이 앉는, 홀의 커다란 의자가 식사의 중심이었다. 밥을 먹으려면 기다란 식탁을 가장의 의자 앞으로 대령했다. 가장은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식사했고, 나머지 식구들은 등받이가 없는 기다란 스툴에 앉아 밥을 먹었다. 영국의 대형 홀이나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보다 더 높게 단을 만들어 주인이나 교장은 더 높은 곳에서 식사를 했다. 단으로 높인 자리는 대개 창가여서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이었다.
<농가의 결혼식>, 피터르 브뤼헐, 1568년. 만찬 자리에서 가장 큰 어른인 신부의 아버지만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있고 나머지 하객들은 긴 스툴에 앉아 식사하고 있다.
<결혼식 만찬>, 마르틴 판 메이턴스, 1763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결혼식을 묘사한 이 그림에서 철저하게 위계에 따라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다.
밥을 먹는 것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시련의 시간이기도 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사 자리만큼 예절이 까다롭고 복잡한 곳이 없다. 아이들은 가장 큰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까지 절대로 먼저 식사 도구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되고 수저로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방귀는 물론 소화를 촉진시키는 트림도 참아야 한다. 자리는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열에 따라 앉아야 한다. 물론 밥을 다 먹고 먼저 일어나서도 안 된다. 특히 코스로 진행되는 서양의 격식 차린 만찬에서는 지켜야 할 세부 에티켓이 너무 많아서 손님은 늘 긴장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서양인들은 복잡한 식사 예절과 테크닉을 더욱 발전시켜 자신들이 상류사회의 교양인임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도 아무리 사회적으로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진 가장이라도 밥상 앞에서 만큼은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려고 했다. 무거운 침묵을 지키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든, 또는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관대함을 보이든 모두 가장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는 식탁의 디자인에서도 나타난다. 식탁은 대개 직육면체로 되어 있다. 직육면체의 비례가 더욱 커져 기다란 식탁이 될수록 더욱 권위적인 식탁이 되기 쉽다. 그런 식탁에서는 반드시 정점, 즉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리로 식탁의 끝 자리가 강조된다. 자연스럽게 그곳과 얼마나 가깝고 머냐에 따라 식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위계가 가시화된다. 식탁 끝 자리에서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자리에 앉은 사람은 심리적으로도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영화 <소공녀>에서 가난한 주인공은 집세 낼 돈이 없어 부잣집에 시집간 옛 밴드 멤버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어느 날 부잣집다운 긴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 같은 밴드의 친근한 동료 사이였던 두 여성은 긴 식탁의 끝과 끝에 어색하게 자리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는 미녀와 야수가 식탁 양 끝에 앉아 서먹한 관계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왜 이렇게 멀리 앉느냐고 묻자 친구였던 집주인은 자기 남편이랑 원래 이렇게 앉아 버릇했다고 대답한다. 이 대화에서 집주인의 삶이 드러난다. 그녀는 남편과도 소원한 관계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라면 그렇게 멀리 앉아 밥을 먹일 리 없다. 이 장면은 또한 집주인이 가난한 옛 친구와도 거리가 멀어졌음을 의미한다.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가 야수의 성으로 가서 첫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미녀와 야수는 긴 식탁의 양 끝에 앉아 밥을 먹는다. 시간이 흐르고 둘의 사이가 좋아지자 미녀는 야수 바로 옆자리로 와서 밥을 먹는다. 원탁이나 정사각형 식탁이라면 위계가 생길 수 없다. 하지만 권위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식탁에서도 상석을 찾는다. 벽에 등을 댈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근대화 이후 부엌과 식탁은 통합되었다. / ©Txllxt TxllxT
20세기 전까지 식사를 마련하고 식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부엌과 식당(또는 방)은 남녀의 역할 구별과 장유유서의 도리를 실현하고 교육하는 가장 보수적인 곳이었다. 근대 이후 집 안에서 일어난 가장 극적인 변화는 부엌과 식당이 가까워진 것이다. 부엌과 식당이 통합되었다. 어머니들은 이제 밥상을 들고 부엌 문턱을 넘어 높은 대청마루로 올라가서 방으로 가져가는 위태로운 곡예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 어머니들은 아들이 부엌 근처에도 못 오게 함으로써 남녀의 역할 구분을 하늘이 내린 타고난 것으로 가르쳤다. 게다가 밥상을 차린다는 그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아이들은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의 매력을 느낀다. 방 안에 소반을 가져가 밥을 먹는 것과 달리 주방에 있는 식탁은 요리 현장을 가시화한다. 또한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같은 요리용 가전을 가까이 둠으로써 요리를 더욱 즉흥적이고 개방적인 것으로 만든다. 과거 부엌에서 차린 음식은 완벽하게 차려져 더 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자가 가정에서 요리하는 것은 취미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것을 못하면 설거지라도 한다. 최소한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치우는 것이 식사 예절이 되었다.
권위주의의 산물인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도 낡은 생활 방식이 되고 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내가 아들에게 뭐라고 잔소리라도 하려 들면 아들은 “아,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하면서 보고 있던 스마트폰에 집중한다. 나는 오늘날 식탁이 있는 통합된 주방만큼 가정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현장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