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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속의 집, 캐노피 침대

캐노피 침대

Text | Shin Kim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아늑한 것,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시각적, 공간적 차단막을 치는 것이다. 집의 본질적 기능이 무엇인지 찾고자 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는 공간을 찾아 들어간다. 특히 서양은 근대 이전에는 사적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방이 줄 수 없는 기능을 대신한 것이 캐노피 침대다.





폴란드식 침대(lit à la polonaise). 폴란드에서 유래한 이 화려한 캐노피 침대는 프랑스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Starus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인이 자기 방을 갖지 못했다. 단칸방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두세 명의 자녀가 함께 사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바람은 자기만의 사적인 공간을 갖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자기만의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찾는 것은 고양이가 높은 곳을 지향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런 본능도 억압을 받으면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 근대 이전 유럽의 평민이 그랬다. 귀족이 아닌 대다수의 평민과 하인에게도 집 안에 자기만의 공간이 없었다.



루시 워슬리의 <하우스 스캔들>에는 19세기 초 아일랜드의 어느 평범한 가정의 잠자리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문에서 가장 먼 벽 쪽에 장녀가, 그다음부터 나이 순서대로 나머지 딸들이, 그 옆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들이 나란히, 끝으로 행상인, 재단사, 거지를 비롯한 낯선 사람들이 누웠다.” 부모가 중간에 누움으로써 처녀들인 딸들과 낯선 남자들 사이의 경계를 만든 것이다. 이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사적인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권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크 스타일의 캐노피 침대. 조각적인 덮개는 건물의 지붕 장식을 모방했고, 기둥은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바로크 기둥 형식을 모방했다. ©Als33120




수많은 방이 딸린 대저택을 소유한 귀족들조차 근대 이전까지는 방을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라기보다 공적 공간으로 활용했다. 1969년에 나온 영화 <천일의 앤>에서는 영국 왕 헨리 8세가 앤 볼린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호화로운 침실에 마련된 화려한 캐노피 침대에 나란히 누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눈다. 방에는 단 두 사람뿐이다. 이런 장면은 고증을 무시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은 절대로 혼자 자는 법이 없다. 반드시 경호원이나 시중을 들어줄 하인들이 왕의 침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영화를 연출하면 낭만적이어야 할 주인공들의 사랑 장면을 망치고 만다. 왕이 왕비나 애첩과 사랑을 나눌 때도 물론 침대 주변에는 하인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하인들이 그 장면을 구경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캐노피 침대의 커튼이다. 그런데 커튼이 가려져 있어 시각적으로 차단되지만 소리까지는 차단하지 못한다. 귀한 신분일수록 사생활 보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했다. 따라서 캐노피 침대는 필수적이다. 캐노피 침대는 침대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캐노피, 즉 덮개를 덮은 다음 그 아래로 커튼을 두를 수 있는, 말하자면 방 속의 방 같은 구실을 했다.



유럽에서는 하루 24시간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왕족이 아니더라도 캐노피 침대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 따르면 중세부터 15세기까지 영국의 집은 거실과 부엌 같은 기능적인 개별 공간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커다란 공간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을 ‘홀hall’이라고 불렀다. 홀에서 주인과 하인들이 모두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사적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





‘웨어의 거대한 침대(The Great Bed of Ware), 1590년경. ©veronikab




홀은 곧 집을 뜻했다. 10세기를 전후로 별도의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대개 주인 남자가 개인적인 일을 하는 곳이다. 개인적인 공간인 방을 뜻하는 단어 룸room 15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그렇게 노출된 공간에서 사적인 영역을 만들려면 커튼을 두른 캐노피 침대가 있어야 한다. 캐노피 침대는 방의 기능을 하므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것도 많았다. 현존하는 가장 큰 캐노피 침대는 1580년 영국에서 만든 ‘웨어의 거대한 침대(The Great Bed of Ware)’로 가로 3.26m, 세로 3.38m, 11㎡ 규모다. 12명이 이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이 있다.



수많은 방이 있는 성이라고 해서 사적 영역이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다. 돌로 만든 중세의 성은 상당히 추웠다. 중세의 난방 장치란 형편없어서 사람들의 온기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가까이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는 시중을 드는 귀족 자제들, 하녀들과 커다란 방에서 함께 먹고 즐기며 살아갔다. 잠을 잘 때는 최측근 몇몇과 함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커튼을 쳤다. 이때 커튼은 시각적 차단막에 더해 추위를 막아주는 구실을 했다. 왕자와 공주의 간택을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방바닥 여기저기에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오로라 공주가 캐노피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다.




1959년 작 디즈니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오로라 공주는 마녀의 저주를 받아 성의 가장 높은 탑, 차가운 돌 방의 캐노피 침대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 있다. 영화 특성상 캐노피 침대의 커튼은 치워져 공주의 모습이 노출되어 있다. 중세 공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좀 더 정확히 고증했다면, 침대 주변에 잠들어 있는 하인들도 묘사해야 했을 것이다. 정확한 고증은 언제나 극의 낭만성을 떨어뜨린다. 오로라를 키스로 구원한 왕자는 잠 그 자체보다 그녀가 잠 속에서 겪었을 추위로부터 구원한 것이 아닐까? 추위를 녹여줄 하녀가 옆에 없으니 말이다.



침대는 집 안의 가장 자랑스러운 물건이라는 이유에서라도 집에서 공적인 공간에 놓여야 했다. 16세기 영국에서 캐노피 침대 가격이 교사 연봉의 절반에 해당했다고 하니 얼마나 귀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런 비싼 가구는 손님들 눈에 띄어야 했던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살롱 문화가 발전했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문인이나 지식인으로부터 최근 시사, 과학, 예술 등의 교양과 지식을 얻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살롱을 주최하는 사람은 대개 귀족 집안의 여주인인데, 이들은 자신의 침실에서 그런 행사를 열곤 했다. 따라서 손님들에게 잘 보이도록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 캐노피 침대를 경쟁적으로 가구 장인에게 주문했다.



루이 15세와 결혼한 폴란드 태생 왕비로부터 유래한 폴란드식 침대(lit à la polonaise)는 왕관 모양의 캐노피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어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다. 침대가 그렇게 비싸다면 평민은 어디서 잤을까? 그들은 대개 짚을 천으로 싼 메트리스에서 잤다. 침대 틀이 없는 매트리스는 우리로 치면 요에 해당한다. 귀족이 아닌 대부분의 유럽인도 침대가 아닌 바닥에 붙은 요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이미 집이 아늑함을 제공하지만 아늑함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15세기 이후 다양한 기능적인 방이 늘어나면서 집을 의미했던 거대한 홀은 현관 로비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귀족은 물론 평민에게도 사적 공간이 생겨났다. 하인의 방도 별도로 만들어 이제 누구나 자기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난방 시스템도 발전해 시각적 차단막이자 추위를 막아주었던 캐노피 침대는 쓸모가 없어졌다.



20세기에 캐노피 침대는 그 원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근대 이전의 공주를 동경하는 소녀들은 공주 방에 놓인 캐노피 침대에도 매력을 느꼈다. 그리하여 얇고 투명한 핑크색 천을 두른 캐노피 침대는 소녀들의 공주 취향을 반영할 뿐이다. 어른들도 근대 이전의 이국성과 낭만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캐노피 침대를 갈망한다. 하지만 현대의 캐노피 침대는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도 없고 더구나 하인과 동침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사적 비밀이 보장되는 방 안에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드는 낭비인 셈이다. 장식적 기능 말고 캐노피 침대의 실질적 기능이 있긴 하다. 방 안에 더욱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이미 집이 아늑함을 제공하지만 아늑함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사방이 막힌 협소한 공간은 고양이 이상으로 사람들도 좋아한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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