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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큐레이션, 홈데코

책상의 진화

책상

Text | Shin Kim

책상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공부, 연구와 같은 일뿐만 아니라 TV시청,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메일, 카톡과 같은 의사소통 등 거의 모든 일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책상 위다. 책상은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오히려 디자인은 더욱 간소해졌다. 일과 책상 디자인의 관계를 살펴본다. 서랍이 많이 달린 초기 책상이 20세기에 들어와 어떻게 진화했는지 살펴본다.





©coloripop




픽토그램pictogram은 어떤 대상을 압축해서 표현한 그림 기호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의 픽토그램은 포크와 접시, 나이프를 간결한 선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책상의 픽토그램은 어떨까? 책상의 픽토그램은 대개 한쪽에 서랍이 달리고 그 위에 컴퓨터가 있는 책상 그림이다. 책상 픽토그램에서 서랍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서랍이 없으면 테이블과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21세기 들어 책상이 점점 테이블과 비슷한 모양으로 되어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랍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중세의 책상도 서랍이 없었다. 서랍 달린 책상은 17세기에 처음 등장해 오늘날 전형적인 책상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21세기를 맞이해 서랍의 중요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책상의 진화에 대해 살펴보자.





뷰로 마자랭, 프랑스, 17세기 / ©Ebeniste 17ème




중세의 책상, 책상이라기보다는 작업대라는 표현이 더 맞는 그 물건은 테이블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평평한 상판과 그것을 지탱하는 4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구조다. 서랍 달린 책상은 17세기에 등장했다. 니홀kneehole 데스크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무릎 구멍 책상’으로, 사실 책상이라기보다 낮은 서랍장에서 중간 부분의 서랍을 빼낸 것에 가깝다. 직사각형의 구멍 폭이 넓지 않아서 무릎 하나만 들어갈 수 있다. 한쪽 무릎만 책상 밑으로 넣고 비스듬히 앉아 작업했던 것이다. 무릎 구멍은 17세기 귀족이 칼을 차고 다니는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리 쪽에 칼이 튀어나와 있으니 서랍 달린 책상에서 작업하기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칼을 차지 않은 쪽 다리만 책상 안쪽으로 넣을 수 있게 서랍을 제거해 공간을 만든 것이다.



니홀 데스크는 작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실질적 기능보다 과시적 기능의 책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받침대 책상은 니홀 데스크보다는 기능적으로 진화한 책상이다. 받침대 책상에서 기능적으로 더 진화한 책상은 실린더 데스크cylinder desk. 이 책상은 말 그대로 원통형 뚜껑이 달려 있다. 문서 중에서는 비밀스러운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작업이 끝난 뒤 뚜껑을 덮고 열쇠를 잠가 서류를 보호한 것이다. 또 책상 위에도 서랍을 만들어 서류를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실린더를 열고 책상 상판을 밖으로 빼내 확장할 수도 있어서 작업을 더 편하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실린더 데스크는 기존 책장에서 서류 작업과 보관이라는 기능을 더한 가구다. 이 가구가 태어난 18세기는 바야흐로 계몽주의와 역사적 전환점의 시대다. 계몽주의는 왕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낳게 한 원동력이 된다. 실린더 책상은 이성에 눈뜨고 신의 권위나 미신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받아들인 유럽 상류사회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롤톱 데스크, 영국, 1910년경 / 사진 출처 www.londonfine.co.uk




롤톱 데스크rolltop desk는 실린더 데스크에 남아 있는 일말의 과시욕을 제거한 더욱 실용적인 책상이다. 실린더 데스크는 책상 표면을 ‘마케트리’라는 정교한 상감기법으로 장식하고 다리도 가늘고 세련되게 디자인한, 그야말로 귀족의 사치스러운 가구다. 반면에 롤톱 데스크는 서랍으로 받침대를 삼고, 책상 위의 수납장도 실용적으로 나누었다. 실린더 데스크보다 투박해 보이지만 산업혁명으로 사무직 노동자가 늘어난 19세기에 사무용 책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초에도 롤톱 데스크는 여전히 최적의 사무 가구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져 고층 빌딩이 세워지고 거대한 사무 공간이 생겨나면서 사무 책상의 변화가 촉진되었다. 이른바 ‘생산 효율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다양한 경영 이론이 나왔다. 이에 따르면 롤톱 데스크는 매우 비효율적인 사무 가구로 비판을 받는다.



새로운 경영 이론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면 관리자가 일반 사무원을 잘 감시 감독할 수 있는 사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즉 사무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롤톱 데스크의 높은 수납공간과 옆에 달린 칸막이는 사무원을 감시하는 데 방해물이 된다. 따라서 상판 위에 수납장 없이 평평한 면만 남은 책상이 각광받는다. 과거의 받침대 책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사무원은 투명하게 자신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최근 출시한 허먼 밀러의 OE1 책상. 서랍이 사라졌다. / 사진 출처 www.hermanmiller.com




이제 수납공간은 상판 밑에 붙어 있는 서랍장만 남았다. 이 서랍장은 책상을 받치는 기둥 역할도 겸한다. 이것이 위생 문제를 낳는다. 서랍장 밑부분에 세균이 서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기 서구 사회에서는 위생 문제가 큰 사회적 관심사였다. 사무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해 사무원의 건강을 유지해야 하므로 이렇게 서랍장이 바닥에 닿아 있는 책상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서랍장이 사무실 바닥 면에 닿지 않도록 해 그 밑을 청소할 수 있는 책상이 확산됐다. 이제 서랍이 상판에 매달려 있는 구조를 취했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책상 픽토그램의 모델이다. 이 책상은 20세기 책상의 전형이 된다.




책상 위에 컴퓨터가 올라간 모습이 현대 책상의 일반적 풍경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마지막 진화는 디지털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상판 밑에 달려 있는 서랍이 사라진 책상이 그것이다. 이는 식탁과 큰 차이가 없는 디자인이다. 컴퓨터 보급으로 문서를 보관할 일이 대폭 줄었다. 수많은 문서가 컴퓨터 하드 디스크 안으로 들어갔다. 하드 디스크가 서랍을 대체한 셈이다. 또한 가구를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렇게 판매하는 가구는 중저가의 단순하고 평범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간단한 디자인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덩그러니 올라간 모습이 바로 현대 책상의 일반적 풍경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하지만 책상의 픽토그램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서랍 달린 옛날 책장이 책상의 원형이자 이데아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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