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보다 기차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이에 관련한 신조어도 생겼다. 비행기는 빠른 만큼 많은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고 높은 고도에서 질소산화물 같은 공해를 유발한다. 하지만 기차는 비행기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기차가 점점 빨라지고 화려하게 변하고 있다.
스웨덴어 플뤽스캄Flygskam, 핀란드어 렌토하페아Lentohapea, 독일어 풀룩샴Flugscham, 네덜란드어 플리흐스함터Vliegschaamte. 몇 년 사이 유럽 국가에서 생겨난 이 신조어는 모두 ‘비행기 여행이 부끄럽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필환경 시대, 탄소 중립 여행이 주목받으면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자는 의미로 생겨난 용어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그만큼 많은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고 높은 고도에서 질소산화물 같은 공해를 유발한다. 하지만 기차의 경우 비행기의 1/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수소 동력 기차 코라디아 아이린트 웹사이트
에너지 소비량 정보 사이트 에코패신저EcoPassenger에 따르면, 런던에서 파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승객 한 명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122kg 발생하며 자동차는 48kg, 기차는 8.3kg이라고 한다. 물론 기차 연료가 디젤인지 전기인지, 전기 중에서도 석탄 발전인지 재생에너지를 원료로 하는지에 따라 수치에 차이가 나지만 다른 교통수단과 비교했을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기차가 절대적으로 적다. 게다가 요즘 기차는 신기술을 탑재하면서 날로 발전하고 있다. 철도 강국 스위스는 대부분 전기에너지를 원료로 사용하는 기차를 이용한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에서 운행하는 수소 동력 기차 코라디아 아이린트Coradia iLint의 경우 탄소 배출량이 제로다. 소음과 공해도 없다. 시간 대비 효율성을 비교해도 비행기보다 기차가 압도적이다. 한 시간 당 평균 승객수로 비교하면 비행기는 약 200명의 승객을 소화할 수 있지만 기차는 최대 50,000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2,500명 정도 이동할 수 있지만 사람만큼 차량 수도 늘어난다.
“비행을 멈추라는 말이 여행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며, 비행기 대신 기차로 보다 가까운 장소로 천천히 여유롭게 여행해보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기차로 유럽 전역은 물론 아시아 대륙까지 횡단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기차 여행객 수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점점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기차 여행이 폭증한 나라는 스웨덴이다. 2017년 가수 스타판 린드베리Staffan Lindberg가 비행을 포기하겠다며 플뤽스캄Flygskam 운동의 불씨를 지핀 이후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고 대회에 참가하는 바이애슬론 금메달리스트 비에른 페뤼Björn Ferry, 배로 미국 땅을 밟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등 유명 인사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스웨덴 사람들은 비행기 여행에 대한 대안을 소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탁세메스테르Tagsemester(기차 여행 자랑)를 만들고 기차 여행을 장려한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열차 암트랙 노선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철도 여행자를 가리키는 헤이든 클라킨Hayden Clarkin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 횡단 열차 탐험기를 업로드하면서 미국 횡단 열차도 편안하며 재미있다고 여행객들을 설득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애나 휴즈Anna Hughes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비행을 멈추라는 말이 '여행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며 ‘비행기 대신 기차로 보다 가까운 장소로 천천히 여유롭게 여행해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분명 기차가 보여주는 풍경은 다르다. 알프스 해발 2250m까지 올라가는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알래스카의 설산과 툰드라를 지나는 화이트 패스 열차, 아름다운 피오르 해안을 거스르는 노르웨이 베르겐 열차 등은 어떤 교통수단으로도 만날 수 없는 멋진 풍광 때문에 반드시 타봐야 하는 기차로 꼽힌다. 또 기차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닿는 도시에 정차해 며칠 머물다 다시 떠날 수 있다. 편하고 넓은 좌석은 물론 침대 열차도 있다.
에어비엔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 또한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기차를 선호하며, 바다 건너 낯선 대륙으로 향하기보다 집과 가까우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로 짧은 휴가를 보내는 흐름을 파악했다고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사람들이 코로나 시대 이후 낯선 장소로 여행하길 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익숙한 장소를 찾아가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잘 아는 동네, 좋았던 숙소,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찾고 있다고.
이런 사실은 기차 여행이 급부상한 또 다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기차 여행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디지털 이전 시대의 낭만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1883년에 운행을 시작한 장거리 여객 열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를 운영하는 벨몬드Belmond는 잠시 운행을 중단했던 이스터 &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2024년 2월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기차 여행이 가장 활발했던 19세기 시대로 타임슬립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춘 이 기차는 싱가포르 우들랜즈역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를 거쳐 페낭, 랑카위, 타만 네가라 국립공원 등에 정차할 예정이다.
파리 스타트업 미드나이트 트레인Midnight Trains은 2024년부터 파리에서 로마, 포르투, 코펜하겐까지 연결하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스타일의 고급 열차를 운행할 예정이다. 스칸디나비아식 디자인, 전용 욕실 등을 갖춘 오스트리아의 차세대 침대 열차 나이트젯Nightjet도 철도 위를 달릴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빈, 뮌헨, 파리, 쾰른, 암스테르담, 취리히를 연결하게 된다. 기차는 느리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소식도 있다. 폴란드 스타트업 네보모Nevomo는 자기 부상 기술을 이용해 기존 철로 위를 최대 550km/h 속도로 운행하는 메가 레일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다.
물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기차 여행은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 비해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는 큰 이점이 있다. 호텔식 관광 열차 해랑, 온돌방을 갖춘 서해금빛열차 등 독특한 기차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기차는 여행에 대한 깊은 갈망을 충족시켜주고, 삶은 계란에 사이다를 마시며 여행하던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며,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할 수도 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훨씬 깊고 그윽하다. 그렇게 기차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일탈과 집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안정감 사이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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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힐튼 뱅크사이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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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