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만큼 풍부한 의미를 지닌 가구는 없다. 라운지체어는 말 그대로 휴식 공간을 위한 의자다. 호텔이나 공항 라운지, 카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라운지체어는 좌석 높이가 일반 의자보다 10cm 정도 낮다. 또 대개 좌석이 10도 정도 뒤로 기울어져 있다. 몸을 깊숙이 누이고 편안하게 쉬거나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라운지체어를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보기 힘든 것은 일단 커다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운지체어, 디자인: 찰스 & 레이 임스, 1956년 / ⓒrahims
의자만큼 풍부한 의미를 지닌 가구는 없다. 의자를 단지 앉아서 쉬거나 일할 때 쓰는 가구로 생각하는 건 의자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의자를 열거하면 거실 소파, 식탁 의자, 책상 의자, 그리고 가끔 사용하는 스툴 정도다. 한국의 가정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의자로는 라운지체어lounge chair가 있다. 라운지체어는 말 그대로 휴식 공간을 위한 의자다. 호텔이나 공항 라운지, 카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라운지체어는 좌석의 높이가 일반 의자보다 10cm 정도 낮다. 또 대개 좌석이 10도 정도 뒤로 기울어져 있다. 몸을 깊숙이 누이고 편안하게 쉬거나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그러면 다리가 좀 불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라운지체어는 ‘오토만ottoman’이라는,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별도의 받침대와 세트인 경우가 많다.
주인 없는 집에서 하녀가 전유하고 싶은 대상으로 호사스러운 임스의 라운지체어만 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라운지체어로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찰스와 레이 임스가 디자인한 ‘라운지체어’다. 미국의 모던 가구를 대표하는 가구 회사인 허먼 밀러에서 1956년부터 생산했고, 6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라운지체어의 제왕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의자는 영화 속 부잣집의 소품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부자라는 걸 표시하고 싶다면, 그의 집에 임스의 라운지체어를 갖다 놓으면 된다. 한국 영화로는 2010년에 개봉한 <하녀>에서 이정재가 사는 대저택의 럭셔리한 거실에 라운지체어가 놓여 있다. 이 저택의 주인 가족이 멀리 여행을 떠나자 늙은 하녀 윤여정은 오토만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라운지체어에 누워 와인을 마신다. 주인 없는 집에서 하녀가 해방감을 만끽하며 그들의 술과 가구 그리고 공간을 전유하는 것이다. 임스의 라운지체어는 집주인 가족의 부유함과 고상함을 증명하는 사물이다. 주인 없는 집에서 하녀가 전유하고 싶은 대상으로 호사스러운 임스의 라운지체어만 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영화 <하녀>에서 윤여정이 임스의 라운지체어에 누워 있다.
라운지체어를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보기 힘든 것은 일단 커다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의 거실은 소파만으로 꽉 찬다. 서양의 가정에서는 어떨까? 서양에서도 라운지체어는 상류층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구다. 특히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나 가족실 같은 공간에서 빛을 발한다. 직장인이라면 주말 오후 오토만에 발을 올려놓고 라운지체어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맥주를 마시며 한낮의 스포츠 중계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라운지체어는 이처럼 여유와 편안함, 호사, 나아가 권태와 같은 유한계급의 삶을 대변한다. 소파도 그런 기능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소파는 우선 여러 사람이 함께 앉도록 고안된 의자이고, 소파에 눕는 것은 일종의 파생 기능이다. 주로 주말에 아버지가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TV도 보고 쉬기도 하는 소파는 주말 시간만큼은 집안의 권력자가 자기 특권을 과시하는 가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니까 서민 가정의 소파는 호사스러운 라운지체어의 기능을 부족하나마 일부 흡수한 셈이다.
로코코 양식의 셰즈 롱그 / ⓒBurgat, Claude-Louis
뒤셰스 브리제는 의자 2개 사이에 스툴을 놓아 연결한 셰즈 롱그다. / ⓒGeorg Naggies
의자는 이처럼 일하고 먹고 눕는 여러 기능을 수용해야 하므로 그 기능에 맞는 여러 형태로 분화될 수밖에 없었다. 라운지체어, 즉 쉬는 의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셰즈 롱그chaise longue가 등장한다. 셰즈 롱그는 프랑스어로 ‘긴 의자’를 뜻한다. 형태를 보면 라운지체어와 오토만을 하나로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토만이라는 별도의 보조 의자에 다리를 올려놓을 필요 없이 그냥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 있다. 16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 등장한 셰즈 롱그는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편히 앉는 의자였다. 하지만 19세기가 되자 이 의자는 기대하지 않은 새로운 사회적 구실을 얻는다. 그것은 여성의 관능미를 뽐낼 수 있는 무대장치가 된 것이다.
셰즈 롱그는 여러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뒤셰스 브리제duchesse brisée는 스툴을 중앙에 놓고 의자 2개를 붙여 긴 의자를 만든 형태다. 이름도 우아하기 그지없는 ‘부서진 공작 부인’이다. 레카미에récamier는 등받이는 물론 다리 쪽도 등받이처럼 위로 솟아 올라와 있는 의자다. 19세기 프랑스 사교계의 명사를 그린 ‘마담 레카미에’에서 유래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초상화에서 마담 레카미에는 양 끝이 솟아 있는 셰즈 롱그에 요염하게 앉아 있다. 메리디엔méridienne은 등받이와 별도로 좌석 한쪽 옆에도 몸을 기댈 수 있는 부분이 솟아 있다. 따라서 메리디엔은 옆에서 봐도 비대칭이고 앞에서 봐도 비대칭이다. 이런 비대칭 의자는 이 의자에 앉는 사람의 자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마네가 그린 ‘스페인 복장을 한 젊은 여인’ 속 주인공은 바로 메리디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을 몸을 비대칭으로 만드는 것이다.
‘스페인 복장을 한 젊은 여인’, 그림: 에두아르 마네, 1863년. 어디서 보든 좌우 비대칭인 메르디엔 셰즈 롱그다.
19세기 서유럽 사회는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으로 그 어느 시기보다 금력과 권력이 팽창했다. 상류사회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를 힘든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돈의 힘을 과시하면서 살도록 했다. 그 대신 부자의 아내는 여성성을 강요받았다. 이 시기 여성성이란 일체의 생산적 노동에서 벗어나 오로지 세련된 에티켓을 몸에 익히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만 매진하는 것이었다. 이는 여성을 묘사한 19세기 회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개 그런 여성들은 셰즈 롱그에 요염하게 몸을 기댄 채 반쯤 누워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런 포즈는 관능의 아름다움을 끌어올린다. 19세기 남자들은 그림에서 결코 이런 포즈로 표현되지 않는다. 남자들은 늘 당당하게 서 있는 포즈로 묘사된다. 따라서 셰즈 롱그에 반쯤 누워 있는 포즈는 여자들에게만 강요된 것이다.
19세기 상류사회의 대저택에는 졸도의 방(fainting room)이라는 곳이 있었다. 당시 파티에서 춤을 추다가 코르셋이 가슴을 압박해 숨을 못 쉬고 졸도하는 귀부인이 종종 있었다. 이때 졸도한 귀부인을 졸도의 방으로 데려가 졸도의 의자(fainting couch)에 눕힌 뒤 코르셋을 풀어 안정을 취하게 했다. 졸도의 의자는 대개 메리디엔이다. 파티에서 여성이 졸도를 하는 일이 빈번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졸도의 방은 대저택에서 여성 전용의 휴식 공간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 또한 남성 권위주의 사회가 여성을 격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가두고 그 안에서만 자유를 주려고 한 것이다.
셰즈 롱그는 바로 이러한 문화의 산물이다. 19세기 수많은 여성이 셰즈 롱그에 반쯤 누워 회화나 사진의 모델이 되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남성들 시선의 대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20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영화배우들이 셰즈 롱그에 누워 자신의 홍보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는 포르노그래피 역시도 이 소품과 그 포즈를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셰즈 롱그만큼 편안한 의자는 없다. 그것을 증명한 사람은 20세기의 모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다. 그전까지 셰즈 롱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최고의 무대장치로 각광받았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