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만큼 풍부한 의미를 지닌 가구도 없다. 라운지체어는 말 그대로 휴식 공간을 위한 의자다. 호텔이나 공항 라운지, 카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라운지체어는 좌석 높이가 일반 의자보다 10cm 정도 낮다. 또 대개 좌석이 10도 정도 뒤로 기울어져 있다. 몸을 깊숙이 누이고 편안하게 쉬거나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라운지체어를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보기 힘든 것은 일단 커다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토넷 흔들 셰즈 롱그 모델 No. 7500, 제조: 게브뤼더 토넷, 1880년 / ⓒSaint Louis Art Museum
완벽한 휴식을 위한 가장 편안한 자세는 역시 눕는 것이다. 하지만 휴식이 반드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므로 누워서 TV를 볼 수도 있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소파에 옆으로 누운 채 피자나 치킨을 먹고, 또 거기에 맥주나 음료를 곁들여 마시며 TV 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런 자세로 뭔가를 구경하면서 입으로 음식을 집어넣는 행위는 극도의 쾌락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각, 청각, 미각 세 감각기관 모두 즐거운 동시에 몸까지 가장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개 음식을 먹거나 뭔가를 볼 때는 앉아 있다. 앉아 있을 때는 몸, 특히 허리가 압력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옆으로 누우면 그런 압력이 없으니 더욱 편안하다. 따라서 쾌락의 단계를 극도로 높이려면 역시 누운 상태에서 시청각과 미각을 자극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에 복제한 고대의 트리클리니움. 셰즈 롱그 3개를 ㄷ자 모양으로 배치했다. ⓒMattes
‘트리클리니움 식사’, 귀스타프 블랑제, 1877년
고대인들도 그런 쾌락을 일찍이 깨달았고, 거기에 맞는 가구를 개발했다.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이 그것이다. 트리클리니움은 셰즈 롱그chaise longue 3개를 ㄷ자 모양으로 배치한 가구다. 1955년 영화 <쿼바디스>에서 네로 황제가 큰 연회를 베푼다. 황제는 물론 초대된 귀족들 모두 옆으로 누운 채 식사를 하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춤과 노래를 즐긴다. 그들의 고귀한 몸은 트리클리니움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다. 노예들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시중을 들기 때문이다. 이 가구는 거기에 누운 사람이 다리를 사용하지 않도록 고안한 것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다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귀족의 가장 중요한 표식이다. 그들은 이동할 때 가마를 타고, 대화할 때는 상대방은 서게 하고 자신은 의자에 앉으며, 만찬을 즐길 때는 눕는다. 로마인들은 트리클리니움을 빈번하게 사용해 옆으로 누운 채 음식과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데 능숙하다. 이때 자세가 천박해 보여서는 안 되므로 누운 모습이 고상하게 보이도록 몸을 훈련한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프 블랑제가 그린 ‘트리클리니움 식사’는 위계가 분명한 로마식 만찬을 잘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귀족들은 편안하면서도 우아하게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운 채 노예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영화 <베테랑>에서는 재벌 3세의 집무실에 이 의자가 놓여 있을 만큼 호사스러운 가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글에서 셰즈 롱그는 18~19세기 서유럽 상류사회에서 여성의 관능미를 뽐내는 의자로 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셰즈 롱그는 원래 목적에 맞게 다시 휴식용 의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로마인의 쾌락주의를 대변했던 트리클리니움의 쓸모를 되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정판 가운데 하나는 토넷에서 생산한 흔들 셰즈 롱그다. 토넷은 나무를 증기로 물렁하게 한 뒤 틀에 넣어 휘는 곡목(bentwood) 기술로 가구 역사를 바꾼 오스트리아의 가구 회사다. 최초의 대량생산 가구를 개발한 회사답게 이번에는 셰즈 롱그의 혁신을 이루었다. 이 의자의 혁신은 받침대의 곡선으로 흔들린다는 쾌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오히려 다리를 뻗는 부분을 한 번 꺾은 디자인에 있다. 20세기 들어 독일 디자이너 안톤 로렌츠의 주도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연구했다. 물탱크에 소금물을 넣어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를 만든 뒤 사람이 들어가 눕게 한다. 그때 사람 몸과 다리가 특정한 각도를 이루는데 그것이 가장 편안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때 허벅지와 종아리는 45도 이상의 각도로 구부러진다. 토넷의 19세기 디자이너들은 이런 인체 공학적 실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누운 상태에서는 다리를 쭉 뻗는 것보다 어느 정도 구부렸을 때 더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독일 도르트문트 카이저-빌헬름 노동생리학연구소의 실험, 1938년
LC4 셰즈 롱그, 디자인: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레, 샬로트 페리앙, 1929년 / ⓒjeanbaptisteparis
토넷의 흔들 셰즈 롱그가 그런 편안한 자세로 눕는 의자의 각도를 알고 만든 것인지 우연히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 의자가 20세기에 생산한 가장 유명한 셰즈 롱그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LC4 셰즈 롱그다. 이 의자는 유럽 모던 디자인의 대가 중 한 명인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레, 그리고 샬로트 페리앙 세 사람의 공동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이 의자의 특징은 사람이 눕는 부분과 알파벳 H자 모양의 받침대를 분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좌석 부분만 따로 떼어내면 그 형태가 토넷 셰즈 롱그와 비슷하다. 밑받침 프레임이 휘어져 있어 받침대에 올려놓을 때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머리 부분을 낮게 해서 다리를 머리보다 더 높일 수도 있다. LC4 셰즈 롱그도 다리가 45도 이상 구부러져 있다. 의사들도 이 의자의 편안함을 인증했다고 할 정도다.
LC4 셰즈 롱그 사진을 촬영할 때 샬로트 페리앙은 직접 모델이 되어 의자에 누웠다. 이때 페리앙은 얼굴을 돌려 카메라를 외면했다. 이것은 18~19세기 셰즈 롱그에 누워 관능미를 뽐냈던 여성들의 포즈를 일부러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이 의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목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한 의자라는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도 LC4 셰즈 롱그가 종종 보인다. 2015년 영화 <베테랑>에서는 재벌 3세의 집무실에 이 의자가 놓여 있다. 그만큼 이 의자가 호사스러운 가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값비싼 셰즈 롱그를 살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 대체품이 있다. 바로 침대다. 셰즈 롱그의 쾌락이란 누워서 뭔가 흥미로운 걸 보고 맛있는 걸 먹는 것이다. 소파도 그런 대체품이 될 수 있지만, 옆으로 눕는 자세는 우리가 로마 귀족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하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침대 헤드에 베개와 쿠션을 잔뜩 쌓는다. 그러면 마치 작은 언덕처럼 기댈 수 있는 기울어진 등받이가 생긴다. 그다음 요즘 유행하는, 다리와 상판이 조절되는 작은 책상을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상판을 약간 기울인 뒤 그 위에 태블릿 PC를 올려놓는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영상을 감상한다. 이것이 셰즈 롱그를 대체한 나만의 호사다. 에드워드 테너의 책 <사물의 역습>에 이런 말이 있다. “최고의 의자는 침대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