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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용 의자, 권위주의에서 기능주의로

오피스 체어

Text | Shin Kim

오직 남자들만 입장할 수 있는 젠틀맨스 클럽에는 대개 가죽으로 마감한 푹신하고 육중한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이 의자들은 그곳을 드나드는 상류사회 남자들의 권위와 위신을 드러낸다. 그들의 높은 지위만큼이나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겁고 덩치 큰 의자인 것이다. 클럽 체어가 한국으로 들어오자 손님 접대용 ‘중역 의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역 의자는 대개 사장님, 의원님 같은 높은 지위에 오른 남자들의 집무실에 놓이곤 했다.





클럽 체어 / ⓒDidouner




월간 <디자인> 기자 시절 장관 집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있던 의자 좌석과 등받이는 두꺼운 패딩으로 되어 있고 표면은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팔걸이도 굉장히 두꺼웠다. 이런 종류의 의자를클럽 체어club chair’라고 부른다. 클럽 체어는 18세기 영국 젠틀맨스 클럽Gentlemen’s Club에서 유래했다. 오직 남자만 입장할 수 있는 젠틀맨스 클럽에는 대개 가죽으로 마감한 푹신하고 육중한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이 의자들은 그곳을 드나드는 상류사회 남자들의 권위와 위신을 드러낸다. 그들의 높은 지위만큼이나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겁고 덩치 큰 의자인 것이다. 클럽 체어가 한국으로 들어오자 손님 접대용중역 의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역 의자는 대개 사장님이나 이사님, 교장 선생님, 부장검사님, 장관님, 위원님 같은 높은 지위에 오른 남자들의 집무실에 놓였던 것이다.



나는 그 중역 의자에 앉아 장관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뿌드득뿌드득하는 가죽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감히 장관님이 말씀하시는데 버릇없이 몸을 움직여? 바른 자세로 경청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실제로는 의자의 두꺼운 패딩과 가죽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일 뿐이었다. 이런 중역 의자 앞에는 대개 녹색 부직포를 깔고 그 위에 유리로 덮은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이로써 전형적인 관공서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의자와 권력의 상관관계는 영원할 것이다. 그나마 건강에 대한 이슈가 의자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의 의자는 늘 이렇듯 육중함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왕이나 관직이 높은 사람의 옷이 자신의 몸보다 훨씬 풍성한 것처럼 말이다. 물리적으로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이 지위를 표시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20세기 들어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기업 내에서 계급이 분화되자 사용하는 가구 역시 계급에 맞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었다. 간부 의자는 그 책임과 권력에 맞는 표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간부 의자는 자연스럽게 클럽 체어가 지향하는 바를 따르게 된다. 두꺼운 패딩을 좌석과 등받이에 부착하고 가죽으로 마감하는 것이다.





1930년대 기업의 중역 의자. 커다란 등받이, 두툼한 패딩, 가죽 마감으로 존재감이 있다. / 사진 출처 www.1stdibs.com



두 모어 체어. 엉덩이를 밀어 넣을 수 있게 간결하게 디자인했다. / 사진 출처 www.ztijl.com




반면에 일반 사무원의 의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패딩 같은 푹신한 재료를 최소화하는 대신 허리를 곧게 세워 앉게 되는 형태를 채택했다. 1920년대에 영국 가구 회사 탠새드Tan-Sad에서 생산한 두 모어Do More 체어는 현대 사무용 가구 의자의 효시라고 할 만하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만든 최초의 의자이기 때문이다. 두 모어 체어는 패딩이 있긴 하지만 아주 얇다. 또 등받이는 좌석과 뚝 떨어져 등을 받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로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등받이와 좌석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곳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고 앉게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렇게 앉으면 경추부터 흉추, 요추까지의 척추 모양이 자연스럽게 S자를 그린다.



간부 의자는 커다란 등받이 면 때문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굽는다. 이런 자세는 척추를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위에도 좋지 않아 소화불량을 유도한다. 두 모어 체어는 앉는 자세 교정을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으므로 광고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치질과 신장 질환, 변비, 소화관 장애, 만성 소화불량, 전립선 질환, 혈관 경화를 예방할 수 있다”(에드워드 테너의 <사물의 역습>에서 발췌)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의자에 앉는다는 건 온갖 병을 부르는 행위인 셈이다. 의자는 대단히 위험한 가구다. 물론 잠깐 앉는 거야 무슨 문제랴.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할 때까지 무려 7~8시간, 야근이라도 하면 10시간 이상, 일주일에 30~40시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사무 노동자들의 허리가 문제다. 그들의 허리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통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결국에는 탈이 날 것이다.





사무용 의자로 개발한 임스 알루미늄 그룹 체어 / 사진 출처 hivemodern.com



영화 <스티브 잡스>에서 스티브 잡스로 분장한 배우가 알루미늄 그룹 체어에 앉아 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까지도 간부 의자는 넓고 두꺼운 패딩 등받이가 허리를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간부들은 일반 사무원보다는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중역 의자도 변화를 맞이한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20세기 가구 디자인의 혁신자인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다.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알루미늄 그룹 체어는 크롬 도금으로 반짝이는 알루미늄으로 프레임을 짰다. 그 자체로 매우 모던한 느낌을 준다. 이보다 더 혁신적인 건 패드 두께를 최소화한 것이다. 천이나 인조 가죽을 등받이 프레임 사이에 끼워 팽팽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서 패드를 두껍게 할 수도 없다. 이에 따라 의자를 옆에서 보면 등받이 프레임이 선처럼 가늘어 매우 세련된 인상을 준다. 이 의자에 앉은 간부는 왠지 권위적 태도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경영을 할 것 같다. 알루미늄 그룹 체어는 <소셜 네트워크>(2011), <스티브 잡스>(2015) 같은 영화에서 첨단 IT 기업의 사무용 가구로 채택되었다.



임스가 디자인한 이 의자는 미국의 사무용 가구 역사를 주도한 허먼 밀러에서 생산했다. 허먼 밀러는 1990년대 들어 사무용 의자의 끝판왕과도 같은 제품인 에어론Aeron 체어를 개발했다. 이 의자를 개발하기 위해 정형외과 의사와 혈관학 전문가들까지 참여했다. 알루미늄 그룹 체어는 부피감이 육중한 권위적인 외관을 탈피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지만허리 보호라는 건강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에어론 체어는 이 문제를 집중 연구했다. 그 결과 좌석과 등받이에 펠리클pellicle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펠리클은 등받이에 골고루 체중을 분산시키고, 그물처럼 뚫린 구멍으로 공기가 순환해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쾌적함을 유지해준다. 또한 스프링 같은 완충 작용을 해 하중에 짓눌리는 허리를 보호한다.





에어론 체어, 디자인 : 돈 채드윅 & 윌리엄 스텀프, 제조 : 허먼 밀러, 1994 / ⓒBrooklyn Museum




에어론 체어가 탄생한 1994년은 바야흐로 닷컴 붐이 일어났을 때다. 닷컴 기업 경영자들은 대개 젊은 세대로 위계가 없는 사무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에게 건강에 좋은 에어론 체어가 눈에 들어왔고, 중역이든 일반 사무원이든 공평하게 에어론 체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로써 에어론 체어는닷컴의 왕좌(The Dot-com Throne)’라는 명성을 얻었다. 에어론 체어가 사무실의 민주화를 실현시키는 데 공헌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장님이나 이사님 같은 중역의 표시를 원하는 곳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조직에서는 목 받침대를 옵션으로 선택하면 된다. 의자란 역시 권력의 상징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의자와 권력의 상관관계는 영원할 것이다. 그나마 건강에 대한 이슈가 의자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오늘날 사무용 의자는 사무실은 물론 가정에서도 보편화되어 있다. 집에서 공부하는 자녀의 허리 역시 똑같이 보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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