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CULTURE|큐레이션, 홈데코

소반, 집을 돌아다니는 식탁

소반

Text | Shin Kim

소반은 우리 전통 가옥인 한옥의 필연적 산물이다. 한옥에서 부엌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장소다. 부엌에는 쌀 같은 식재료, 솥 같은 조리 도구 그리고 그릇, 수저 같은 식사 도구가 있다. 또 하나, 소반이 있다. 소반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벽에 걸어둔다. 소반이 부엌에 있는 이유는 음식을 올려 식사하는 방으로 옮기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12각호족반. 이 소반은 천판(상판) 12각으로 되어 있고 호족(호랑이 다리) 다리있다.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현대인은 밥을 먹으려면 주방으로 간다. 아파트를 포함해 현대 주택 대개 주방 바로 앞에 식탁이 으니 그곳이 곧 식당이다. 방에든 거실에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식탁이다. 식탁이 있는 주방에서 뭘 먹는다는 건 참으로 편리하다. 주방에 가스레인지와 전기 오븐, 커피 머신, 냉장고, 수기가 있기 때문이다. 즉 요리를 한 뒤 바로 옆 식탁에 올려놓고 먹으면 된다. 이 편리함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긴 투쟁의 결과다. 음식을 만드는 곳이 곧 먹는 장소가 된 주방 문화가 대부분의 가정에 정착한 것은 불과 50년도 안 된다. 그 전에는 음식을 저장하고 만드는 장소 음식을 먹는 장소가 서로 떨어져 있었다. 이 두 공간을 매개하는 가구가 바로 소반이다.



소반은 우리 전통 가옥인 한옥의 필연적 산물이다. 한옥에서 부엌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장소다. 부엌에는 쌀 같은 식, 솥 같은 조리 구 그리고 그릇, 수저 같은 식사 도구가 있다. 또 하나, 소반 있다. 소반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벽에 걸어둔다. 소반이 부엌에 있는 이유는 음식올려 식사는 방으로 옮기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화 <>(1958), <자매의 화원>(1959)의 한 장면. 좌식 문화가 보편적이1950년대는 방이나 마루에서 밥을 먹.




근대 이전에는 양이든 한옥이든 부엌은 방과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다고 여겼다. 부엌에서는 언제나 불을 다루기 때문이다. 불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열기와 연기를 발생시키므로 가능부엌은 방과 멀리 떨어뜨렸. 서양 대저택의 경우는 부엌을 아예 집 밖에 만들고 통로로 연결하기도 했다. 부엌에서 불이 나더라도 주택에는 피해가 없도록 한 것이다. 한옥은 부엌의 연료를 난방으로도 이용하기 때문에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다만 부엌 방보다 더 낮게 설계.



이렇게 음식을 하는 장소와 음식을 먹는 장소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 필연적으로 ‘운반’이라는 과정이 발생한다. 서양 저택에서는 음식을 나르는 바퀴 달린 도구인 트롤리를 이용한다. 대저택의 경우는 부엌과 식당 사이의 거리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요리사들 음식 맛보다 음식 온도에 더 신경을 쓰곤 했다. 어떤 귀족은 자기가 원하는 온가 아니면 음식을 되돌려보냈는데, 결국 자기가 원하는 온도지만 시커먼 숯이 된 고기를 먹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다.




침실이었던 방이 아침이 되면 식당이 된다. 운반 도구가 곧바로 상이 되어야 한다. 소반은 트롤리이자 식탁인 셈이다.”




이에 반해 부엌과 식당, 즉 방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한옥에서는 트롤리까지는 필요 없다. 한옥에서 음식 배달의 난제는 길이가 아니라 높낮이다. 음식을 운반하는 과정이 평탄하지 않다. 부엌 문턱을 넘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더 높은 대청마루 올라가야 하 마지막으로 방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 운반 과정이 위험하다. 그러니 음식이 식을 염려보다 음식을 옮기다 넘어지거나 해서 쏟을 걱정이 훨씬 크다. 이에 따라 상은 소반小盤, 즉 작은 밥상이 되었다. 서양의 경우는 식탁이 . 따라서 음식을 운반하는 도구 트롤리가 적당하. 하지만 한국에는 식탁이 따로 없다. 침실이었던 방이 아침이 되면 식당이 된다. 그러니 운반 도구가 방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상이 되어야 한다. 소반은 서양으로 치면 트롤리이자 식탁인 셈이다.





이원기로회계첩’(1730). 궁궐의 잔치를 묘사한 그림. / ©국립중앙박물관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소반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공고상. 머리에 이고 나르는 용도의 소반. ©대관령박물관




밥상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유교 문화에서 비롯되었. 유교 문화는 남녀유별, 장유유서 같은 엄격한 법도에 따라 겸상을 하지 않. 18세기 그림 이원기로회계첩 21명의 노인을 궁궐에 초대해 친목을 다지는 모습을 묘사했다. 21명의 노인은 각자 소반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식구가 많은 사대부 집안에서는 끼니때마다 하인들이 수많은 소반을 옮기는 일이 여간 큰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인이 ‘배달의 민족’이 되지 않았을까? 소반 중에는 공고상이라는 아주 예쁜 상이 있다. 이 상은 운반에 최적화된 인체 공학적 디자인이다.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때 상을 머리에 이고 나르기 좋은 형태다. 상이 다리 구조가 아닌 면으로 되어 있, 상을 머리에 인 사람의 시야 확보되도록 일부가 개방되어 있다. 받침대 양 측면에는 손잡이 뚫려 있다.



하인이 많은 집이 아니라면 상 나르는 일은 며느리의 몫이었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 소반에 올 뒤 부엌의 큰 문턱을 넘는다. 겨울이라면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훑고 지나갔을 테다. 추위를 견디며 마당을 가로질러 기단을 오른 뒤 신을 벗고 대청마루 오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게다. 방으로 들어가면 엄한 시부모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일을 하루에 세 번씩 해야 하는 거다. 밥 짓고 상 나르고 설거지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는 일상이다. 소반에는 조선 시대 여인들이 겪은 노동의 고통이 담겨 있다.





영화 <강원도의 힘>(1998), <전국노래자랑>(2012). 바닷가 횟집과 시골 마루에서 소반을 이용하고 있다. 양은 등 금속 재질로 소반의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영화 <독전>(2018), <기적>(2021). 소반은 야외와 실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 소반을 이용한 식사 장면은 한국 영화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파트와 양옥이 보급되면서 부엌과 밥상이 일체화된 주방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음식 만드는 일이 간편해졌다. 무엇보다 상을 나르는 수고로움에서 해방되었다. 그에 따라 소반 점차 사라. 하지만 소반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 좌식 문화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어서 방바닥이나 거실 바닥에 앉아 TV를 보며 간단한 식사를 할 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소반만큼 유용한 도구 없다. 소반은 야외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소반의 기동성 때문이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굳이 소반을 찾아 거실 바닥에 앉아 창밖의 비를 구경하며 간단한 안주에 막걸리를 마신다. 그때 한옥의 대청마루나 툇마루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적당한 높이 아담한 소반이 없다면 그런 호사를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게다가 현대의 소반은 여성을 착취하는 일도 없으니 진정으로 순박해진 가구가 아니겠는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




RELATED POSTS

PREVIOUS

집이란 어떤 마음가짐
더 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