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크고 작은 상자 안에는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가 쓸모가 있을 만한, 또는 추억의 물건들이 담겨 있다. 이 상자들이 없다면 우리 집은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니 상자만큼 고마운 물건이 또 있을까? 상자에 보관된 물건은 쓸모가 잊힌 채로 무능하게 쉬고 있다. 반면에 그것을 분류해서 담고 있는 상자만큼은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니 상자는 더욱더 쓸모가 많고 능력 있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연필들은 일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을 보관하고 있는 나무 상자는 일하는 중이다. 상자는 쓸모가 많다.
나는 상자를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크고 작은 상자가 책꽂이와 수납장을 채우고 있다. 상자들은 각기 쓸모에 따라 분류된 물건을 담고 있다. 내 책상 아래 6단 서랍장의 첫 번째 서랍 안에만 작은 상자 4개와 트레이(트레이도 일종의 상자다) 2개가 다양한 용도의 필기구를 보관하고 있다. 책꽂이에도 상자가 있다. 꽂힌 책 위에 남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넓적한 양철 상자들이 있다. 이 상자 안에는 전시회와 관광지에서 받아 온 작은 인쇄물이 쌓여 있다. 그 밖에 종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크고 작은 상자 안에는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가 쓸모가 있을 만한, 또는 추억의 물건들이 담겨 있다.
상자들이 없다면 집은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니 상자만큼 고마운 물건이 또 있을까?
상자에 보관된 물건은 쓸모가 잊힌 채로 무능하게 쉬고 있다. 반면에 그것을 분류해서 담고 있는 상자만큼은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니 상자는 더욱더 쓸모가 많고 능력 있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보자. 내 서랍장 안에는 필통 크기보다 조금 큰 나무 상자가 있다. 예전에 어떤 행사의 프로모션으로 받은 것인데, 이런 단단한 상자는 절대 버리지 못한다. 이 상자 안에는 쓰임을 기다리는 연필들을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10년 이상 그 연필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 연필들은 일은 하지 않고 게으르게 놀고 있다. 아깝게 공간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게으른 연필들을 가지런하고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 상자는 ‘보관’이라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상자만큼이나 트레이도 좋아한다. 내 책상 위에는 트레이만 5개가 놓여 있다. 나무 트레이에는 가장 많이 쓰는 필기구와 지우개, 포스트잇을 담아둔다. 조금 작은 금속 트레이에는 동전과 귀이개, 손톱깎이가 있다. 검은색 유리 트레이에는 가끔 쓰는 펜들이 놓여 있다. 가죽 트레이에는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지만 외출할 때 지니고 다니는 안경과 지갑 등이 놓여 있다. 조금 커다란 원형 금속 트레이에는 커터칼, 페이퍼 나이프, 포스트잇, 집게, 소형 드라이버, USB 충전 플러그, 돋보기, 볼펜 지우개 화이트, 집게 등 잡동사니가 있다. 이런 것들이 분류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책상 위에 흩어져 있다면 작업 능률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것이다.
양철 상자는 원래 상품을 담는 용도가 끝나면 버려지기보다 잡동사니 물건을 담는 용기로 거듭난다. / ⓒAPI data
금속 트레이는 금속 물질을 담는 데 적합하다. 마치 스마트폰의 앱 아이콘처럼 트레이의 네모난 형태가 그 안의 불규칙한 형태를 가둠으로써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준다.
집 안에 이렇게 많은 상자(트레이 포함)가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사물을 기능에 따라 분류하려는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욕구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물을 분류한다는 것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류가 문명을 탄생시킨 태도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인류는 자연과 경계를 만들어 안전한 곳을 표시했다. 그것이 바로 집이다. 최초의 집은 불을 피우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든지 또는 돌 따위로 경계를 만든 것이다. 곧이어 흙을 다져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비와 바람과 해충과 맹수 같은 자연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은 대개 직육면체 형태였고, 불과 사람을 안전하게 가두는 커다란 상자였다.
그런 상자가 가득한 곳이 도시다. 집과 도시는 결국 자연으로부터 경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직육면체라는 그 대단히 질서정연한 기하학적 형태는 자연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형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만남’이라는 그림을 보면 그림이 절반으로 나뉘어 있다. 왼쪽은 자연이고 오른쪽은 문명이다. 자연은 불규칙적인 개방된 공간이고, 문명은 규칙적인 직선으로 구성된 상자 안 폐쇄된 공간으로 극단적 대비를 보여준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만남’(1452~1466). 불규칙한 자연과 규칙적인 상자의 대비가 잘 표현되어 있다.
롤톱 데스크 광고. 광고는 분류가 잘된 책상의 수납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집이라는 커다란 상자는 불과 사람을 보관했다. 세간살이가 늘어나자 다시 그것을 분류해서 담는 가구가 늘어났다. 한국의 장이나 서양의 캐비닛은 세간살이를 담는 집보다 작은 상자인 셈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욱 자잘한 물건이 늘어났고, 그것을 더 잘게 분류해서 담을 수 있는 수납 도구가 발전했다. 근대 이전 유럽의 롤톱roll-top 데스크를 보면 상판 밑으로 조금 큰 서랍들이 달려 있고, 상판 위에는 그보다 작은 공간으로 나뉜 여러 칸이 있다.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며 삶이 복잡해지면 분류라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그것을 돕는 도구가 탄생하기 마련이다. 서랍의 칸으로도 부족하면 작은 상자가 생긴다. 문명은 결국 상자로 이루어져 있다. 집이라는 커다란 상자부터 보석 따위의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작은 상자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가 수많은 폴더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같다. 파일을 분류한 폴더는 컴퓨터 속 상자인 셈이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에 등장하는 어린이의 보물 상자. 어린이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작은 보물 상자가 있다.
집 안에 그토록 많은 수납공간과 상자가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현대인에게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 필요해서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실제로 쓰는 시간은 대부분 잠시뿐이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는 얼마나 자주 쓸까? 한 달에 한 번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한 번을 쓸 때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것을 대체할 도구가 없다. 그러니 보관해둔다. 또 프라모델 만들기나 빵 만들기처럼 충동적 열정으로 구입했다가 열정이 사라진 뒤 방치된 물건도 많다. 그렇게 잠시의 쓸모를 위해, 또 한동안의 취미로 구입한 물건들로 집 안 공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기업 판촉물로 받은 필기구, 포스트잇, 노트 따위는 써도 써도 사라지지 않는다.
10년 넘게 쓰지 않은 물건이라면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든 쓸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쓸모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사람은 쓰지 않는 물건이라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이런 저장 강박증은 정도가 다를 뿐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집 안은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쓸 가능성이 있는 물건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바로 이때 그 무질서와 혼란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물건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트레이와 수납장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상자다.
몽당연필을 작은 상자에 보관하자 버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몽당연필을 버리지 못하다가 한번은 내가 이걸 또 언제 쓰겠냐 싶어서 죄다 버리기로 크게 마음먹었다. 그러다 다이소에서 금속으로 만든 작은 상자를 발견하고 사 와서 거기다 몽당연필을 죄다 집어넣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울러 몽당연필들은 구원을 받고 여전히 우리 집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 버리지 못한다면 분류해서 담으면 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물건이 너무 많다. 그것을 분류해서 담아둔 상자는 쉬지 않고 일하는 집 안의 진정한 일꾼이다. 그러니 내가 단단한 재질의 상자가 보이면 군침을 흘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하우스 월간 <디자인> 기자를 거쳐 최장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