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CULTURE|홈데코

침대 인간이 되기까지

서양의 매트리스와 우리의 요

이전 상류층은 주로 캐노피 침대를 썼다. 잠을 자는 동안 커튼을 쳐서 한기와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커튼을 걷어 침대 안쪽을 노출시켰다. 그러면 매트리스와 베개가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매트리스와 베개의 표면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그 소유자의 금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매트리스의 표면은 청결 유지를 위해 흰 천이 일반화되었다.





@natsu u



대부분의 한국인이 이제는 입식 문화에 완전히 길들여진 것 같다. 나도 어쩌다 방바닥에서 잠을 자면 허리가 아프다. 그런데 한국에서 침대가 보편적인 잠자리가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아파트와 양옥 주택이 보편적 주거가 되기 전 한국인의 잠자리는 방바닥에 까는 요와 이불이었다. 나도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하는 일이 요와 이불을 개서 장롱 안에 넣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부지런함의 상징과도 같았다. 개지 않고 방바닥에 널브러진 요와 이불은 방 주인의 게으름을 판단하는 단서였다. 과거 좌식 문화가 일반적이던 시절, 방은 많은 일을 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밤 동안에는 잠을 자는 곳이지만 아침이 되면 일하는 곳으로 변한다. 따라서 일, 즉 생산적 작업을 위해 요와 이불은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되고 사라져야 했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요와 이불은 일종의 이동식 가구인 셈이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방바닥에 요와 이불이 펼쳐져 있다면 그 방의 주인은 비생산적인 게으름뱅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유럽인도 처음부터 침대에서 잠을 잔 것은 아니다. 모든 문명을 떠나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잠자리는 매트리스이고, 그것은 한국의 요에 해당한다. 매트리스는 인류의 전유물도 아니다. 침팬지를 비롯해 사람과 닮은 영장류가 침대, 정확히는 매트리스를 만들었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로 깔개를 만들고 그 위에 나뭇잎을 덮어서 매트리스를 만들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 침팬지 매트리스는 대개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는다. 땅에서 띄워놓으려는 것이다. 침팬지 매트리스의 목적은 벌레와 세균, 독이 있는 작은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 사람이 자연 환경에서는 해먹을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사진 출처 : wirestock



사진 출처 : istock



사진 출처 : www.metmuseum.org



사람이 매트리스를 만든 이유도 침팬지의 목적과 다르지 않다. 사람도 바닥을 기어다니는 해충이나 작은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자 침대를 만들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서양의 집은 매우 더러웠다. 바닥은 따로 마감하지 않은 그냥 흙바닥이어서 각종 벌레가 돌아다니고 오물로 뒤범벅이었으며, 쥐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바닥에 짚이나 천을 깔고 잠을 잤다. 중세의 가난한 유럽인에게 잠자리는 건초나 짚 같은 쿠션 역할을 하는 천연 재료를 집어넣은 커다란 자루였다. 건초(hay), 즉 마른 풀이 잠자리였으므로잠자리에 들다는 표현을 ‘hit the hay’라고 했다. 자루 속 건초가 고르게 분산되도록 손이나 발로 쳐주어야 했던 것이다. 돈이 좀 있는 집에서는 침대 틀을 만들어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았다. 오늘날 영어베드bed’는 침대를 의미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매트리스, 즉 요에 불과했고, 매트리스를 올려놓는 틀을베드스테드bedstead(침대 틀)’라고 했다.


매트리스와 별도인 침대 틀을 처음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이집트인이었다. 이집트 상류층의 침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으로 전파되었다. 침대 틀은 잠자리를 공중에 띄우므로 바닥의 각종 해충과 오물로부터 사람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보호해준다. 근대 이전 유럽의 집은 상당히 더러웠다. 당시 침대 틀은 오늘날 명품 자동차보다 고가였으므로 서민은 허술한 매트리스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매트리스가 있다면 말이다. 그냥 바닥에 누워 자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니 근대 이전 침대는 집안의 자랑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상류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현대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침대는 집 안의 하인이나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홀에 놓여 있었다. 침대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살롱 문화에서 살롱을 주최한 여주인은 흔히 은밀해야 할 자신의 침실을 행사장으로 이용했다.


따라서 침대는 그 어떤 가구보다 더 화려하게 치장했다. 덮개가 있는 캐노피 침대는 기둥이 필요하다. 이 기둥은 그리스 신전의 칼럼column(기둥)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 홈을 파는 플루팅fluting을 비롯한 다양한 양식의 기법으로 조각한다. 그 조각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매트리스와 이불, 그리고 침대 커튼의 천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 상류층은 주로 캐노피 침대를 썼다. 잠을 자는 동안 커튼을 쳐서 한기와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커튼을 걷어 침대 안쪽을 노출시켰다. 그러면 매트리스와 베개가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매트리스와 베개의 표면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그 소유자의 금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매트리스의 표면은 청결 유지를 위해 흰 천이 일반화되었다.



요가 유럽의

매트리스와 다른

독특한 특징 하나가

생겼다. 요의 바닥은

장식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요는 아침이

되면 포개어 가구 위에

올려둔다그때 비로소

요의 바닥이

사람들 눈에 노출된다.”



유럽의 경우는 거대한 홀에 침대를 두더라도 그것이 일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또는 은밀한 방에 침대를 두는 대저택에서 침실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방으로 쓴다. 반면 과거 한옥에는 그런 여유가 없다. ‘이라는 개념으로 구획되는 한옥의 방은 그리 크지 않다. 아흔아홉 칸을 소유한 대궐처럼 큰 집이라도 방은 대개 작다. 또 한옥은 서양의 대저택처럼 거실, 서재, 식당, 갤러리, 홀 등 기능별로 나뉘지 않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등 거주하는 사람에 따라 나뉜다. 한옥의 작은 방은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므로 침대나 의자처럼 줄곧 자리를 차지하는 가구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한옥은 방에서 신을 신지 않는다. 바닥은 온돌로 데우므로 그 열기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독특한 특징도 좌식 문화를 이끌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요와 이불을 두는 별도의 가구가 없었다. 반닫이처럼 낮은 수납 가구 위에 올려놓았다. 이에 따라 요가 유럽의 매트리스와 다른 독특한 특징 하나가 생겼다. 요의 바닥은 장식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요는 깔았을 때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장식하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요는 아침이 되면 포개어 가구 위에 올려둔다. 그때 비로소 요의 바닥이 사람들 눈에 노출된다. 그렇게 노출되는 시간이 훨씬 길다. 따라서 요는 유럽의 매트리스와 달리 깔았을 때 사람의 몸이 닿는 면은 장식이 없는 흰색이고, 바닥에 닿는 면은 염색을 하거나 수를 놓아 장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낮 시간 동안 그 부분이 사람들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1971년에 완공한 한강맨션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다. 당시 이 아파트 평면도를 보면 침실에 침대를 그려 넣었다. 한강맨션은 온돌이 아니었다. 온돌이 아닌 서구식 집에서 침대 생활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파트가 온돌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방에 침대를 놓고 산다. 이제는 요와 이불을 갤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산적인 일은 밖에서 한다. 한국인도 이제 완전한 침대 인간이 된 것이다.



Text | Shin Kim



RELATED POSTS

PREVIOUS

집이란 어떤 마음가짐
더 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