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사과 농장에 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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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사과 농장에 가야 하는 이유

미네소타 사과 과수원

어떤 이들에게 과수원(orchard)은 과일을 수확하는 농경지 이상의 확장된 커뮤니티 공간이다. 옥수수밭 미로와 헤이라이드, 놀이터, 밴드 음악이 공존하는 미국의 사과 농장. 계절을 수확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삶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가지 끝에 영근 한 입 크기의 빨간 사과를 수확하는 일은 단순한 체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초록 잎이 빨갛고 노란 물결로 바뀌어 흩날리는, 바야흐로 가을이다. “인간에게 가을은 수확의 시간, 모두 함께 모이는 시간이다.” 미국의 자연주의자 에드윈 웨이 틸Edwin Way Teale의 말처럼 모두 즐겁게 모일 수 있는 이 계절의 이상적인 커뮤니티 공간은 어디일까. 흔히들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공간으로 카페나 레스토랑을 떠올리지만, 미네소타 사람들은 사과 농장을 찾는다. 가지 끝에 영근 한 입 크기의 빨간 사과를 수확하는 일은 단순한 체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110여 개의 크고 작은 사과 농장이 자리한 미국 미네소타의 가을은 사과로 시작해 사과로 끝을 맺는다. 미네소타의 사과 품종 가운데서도 인기가 높은 제스터Zestar는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제빵용 사과로 손색이 없다. 손으로 말아 만든 크러스트 파이와 캐러멜 사과 파이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미네소타 내 애플 잭Apple Jack 농장에서 매 시즌 생산하는 도넛의 양은 무려 11만 개. , 젤리, 소스와 독특한 수제 제품 등 사과로 창출하는 수익은 천문학적이라 할 만하다.
















미네소타의 여러 과수원에서는 사과 수확 외에도 각기 다른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트랙터가 건초 더미를 끄는 헤이라이드Hayrides, 영화 <인터스텔라>의 광활한 옥수수밭 미로가 연상되는 콘메이즈Corn Mazes, 운동장 크기의 대규모 트램폴린점핑 필로Jumping Pillow’, ·염소·돼지 등을 키우는 가축 농장까지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미네소타 스틸워터 지역에 자리한 100년 전통의 유서 깊은 사과 농장아모트 애플 팜Aamodt’s Apple Farm은 트랙터가 끄는 어린이 열차와 염소 농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계절을 즐기는 이들의 커뮤니티 공간을 겸하는 농장인 만큼 오너들의 필모그래피도 다양하다.


2007년에 문을 연루스라인 과수원(LuceLine Orchard)'은 미네소타의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30년 이상 담당한 베테랑 방송인 테리 트랜Terri Traen이 일군 과수원으로 유명하다. 300여 그루의 사과나무를 직접 심어 농장을 일군 그녀는 과수원에 밴드를 기용해 라이브 뮤직을 들려주는 커뮤니티 행사를 열어 사과 농장을 콘서트장으로 바꾸기도 한다. 수십 년, 길게는 100년 넘는 전통을 이어가다 보니, 매년 사과 농장을 방문해 특별한 가을을 추억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근 루스라인 과수원에서 95번째 생일을 보낸 한 노인의 사연이 미디어에 소개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레이크 미네통가 라이프스타일Lake Minnetonka Lifestyle> 매거진 에디터 그랜햄 존슨Granham Johnson은 사과 농장을 찾는 전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 시절 과수원에서 추억을 쌓은 이들은 부모가 된 뒤 자녀들과 전통을 지속해나간다. 누구나 농장을 좋아하고, ‘사과 농장은 자연을 즐기고 사교의 공간으로 삼는 미네소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한다.”



매년 찾아오는 계절을

기념하는 전통이

과수원이라는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러운

일이다.



사과가 영글기 시작하는 9월 초부터 추수감사절로 마무리되는 11월까지, 과수원을 운영하는 석 달 가까이 농장은 지역 커뮤니티의 구직 활동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즐거운 농장을 만들기 위해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농장에서는 자그마치 150여 명의 인력을 고용한다. 이번 가을 처음으로 문을 연 미네통카 과수원(Minnetonka Orchard)이 대표적이다. 지역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거 채용해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고용할 예정이다. 농장 매니저 크리스털Crystal은 말한다. “역사와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농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한 가정이 매해 가을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농장만큼 접근성이 좋은 곳도 없거든요.” 홈메이드 애플 사이다나 맛 좋은 도넛보다 사과밭 한쪽에 자리한 키 재기 판에 시선이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가을에는 얼마나 클까(How Tall This Fall)?”라는 문구가 적힌 오래된 나무판에 머리를 대고 선 아이들은 매년 자신의 키를 측정하며 가을을 맞는다. 유서 깊은 과수원이든 새롭게 문을 연 곳이든, 매년 찾아오는 계절을 기념하는 전통이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이프스타일이란 결국 각자의 삶에서 이어가고 싶은 패턴과 공간, 자세가 만들어내는 고유의 궤적이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함께 계절의 변화를 느낄 나만의 커뮤니티 공간은 어디일까.



Text | Nari Park

Photos | Fl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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