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같은 구호를 끊임없이 들었고, 초등학교 시절 ‘불조심’은 포스터의 단골 소재였다. 이렇게 경계의 대상이었던 불은 사실 인류가 처음으로 물리적인 집을 짓고 살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집의 중심이자 집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였다. 집은 곧 살아 움직이는 불을 모시는 공간이었다. 불꽃이 보이지 않는 집에서는 안전과 쾌적함을 얻었지만 잃은 것도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덴마크 주방 가구 브랜드 리폼Reform의 부엌 디자인 / Photos : Reform
불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집은 얼마나 안전한가? 불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집에서 사는 현대인은 집 안에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오히려 불꽃이 보이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불장난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던 추억거리다. 불장난의 결말은 어른들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것으로 끝을 맺기 마련이다. 불은 늘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장난으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인류 최초의 집은 벽도 지붕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집을 규정하는 것일까? 바로 불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불을 통제하기 시작한 시기는 150만 년 전쯤으로 추측한다. 그 시절 인류는 집을 만들 만한 기술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가족 또는 무리가 함께 모이는 장소가 있었다. 고고학자 글린 아이작은 무리가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해서 음식을 가져오는 장소, 그곳을 ‘보금자리(home__________base)’라고 이름 붙였다. 보금자리는 물리적인 집의 원조다. 보금자리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불이다. 왜일까?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구분되는 성질 중 하나는 먹이 사냥이 공동체의 협동 작업이라는 점이다. 인류에게 사냥은 위험한 일이므로 여럿이 함께 했다. 하나의 무리가 열너덧 명 정도 되고, 그 무리는 작은 팀으로 나뉘어 각자 다른 곳에서 사냥을 한다. 사냥에 성공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정한 장소로 가져온다. 이것이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사냥 나간 여러 팀이 한 장소로 돌아올 때 어떤 팀은 사냥감을 가져오지만 어떤 팀은 빈손이기도 하다. 불을 피운 뒤 사냥감을 익혀 먹는데, 그때 빈손으로 돌아온 팀도 공평하게 똑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전체 무리는 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몸을 녹이며 함께 음식을 나눈다. 불을 가운데 두고 음식을 먹는 그 장소가 보금자리이며, 그곳이 바로 집의 원조라는 것이다.
불의 통제는 인류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딱딱한 음식을 부드럽게 익혀 먹을 수 있다는 것, 난방, 조명, 사나운 맹수로부터 보호, 흔히 이렇게 네 가지를 꼽는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익이 바로 무리에게 강한 유대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따뜻한 불은 그들의 몸을 녹이고, 함께 같은 장소에서 배를 채운 무리의 구성원들은 대단히 편안했을 것이다. 이 편안함, 그리고 함께하는 데에서 오는 안정감, 이런 느낌은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호화로운 집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편안함 그리고 안정감과 똑같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족이 함께 기거하는 집의 본질이다. 집을 만드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집 안 살림살이가 아무리 편리하고 호사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원시인류가 벽도 지붕도 없는, 자연에 노출된 보금자리에서 느꼈던 그 편안함과 안정감보다 더 나아진 것은 없다.
스코틀랜드 스캐러 브레이는 신석기 시대 집의 형태와 가구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지 중 하나다. 집 중심에 난로가 있었다.
아드리안 브라우어르, <소작농의 합창>, 1636~1638년. 개방된 화덕 앞에서 농부 가족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화덕이 있는 부엌은 가난한 소작농의 부엌이자 생활 공간이었다.
불 앞에 모인 현대의 가족.
그렇다면 집의 본질이란 불을 중심에 두고,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함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근대에 들어와 집을 정의한 건축가들도 불을 집의 핵심적 요소로 본다. 독일의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고트프리트 젬퍼는 집의 4요소로 불, 벽, 지붕, 바닥을 든다. 벽과 지붕으로 자연과의 경계를 만들면 거친 자연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한정된 공간과 바닥이 생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현대인은 집의 조건을 충족한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더구나 불꽃이 없는 현대의 주택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이 불이 왜 집의 본질인지 의아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자.
가스나 전기가 없던 시절, 음식은 반드시 나무나 석탄 같은 재료를 태워 불꽃을 일으켜 익혀야 했다. 근대 이전에는 집 안에 늘 불을 두고 관리하며 살았다. 불은 한번 꺼지면 다시 피우기 쉽지 않으므로 더더욱 늘 불꽃이 눈에 보여야 했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 쌀, 밀, 보리, 조, 수수 같은 곡물은 날것으로 먹기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물에 담아 불로 익혀 먹었다. 그때 불을 피워 음식을 익히는 장소를 부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시인류의 집은 부엌이라는 기능적인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한 공간에서 음식을 익히고, 익힌 음식을 먹고, 먹고 난 뒤에는 같은 장소에서 놀이도 하고 잠도 잤다. 즉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다 했는데 그곳에 반드시 불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불을 중심에 두고 음식을 나누고 추위에 언 몸을 녹이면서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형성되고 강화되었다. 그들 곁에는 언제나 불이 존재했다. 그곳을 부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중세까지 서민이 살던 집은 말하자면 놀이와 일과 잠자리의 기능을 모두 갖춘 커다란 부엌인 셈이다.
‘가족’을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어낸
일은 불이 왜 벽과
지붕 같은 물리적
요소와 함께 집의
본질적 요소인지를
증명한다.
부엌이라는 기능적 공간이 독립한 건 불의 위험성과 불편함 때문이었다. 불은 겨울철에는 온기를 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여름철에는 무척 성가시다. 또 연기와 그을음을 발생시켜 실내 공기를 탁하게 만든다. 불이 옮겨붙어 집 안 살림은 물론 사람까지 태울 수도 있다. 그리하여 커다란 저택을 세울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은 부엌을 독립시켰는데, 이것은 독립이라기보다 고립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주부들이 전에는 같은 공간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렇게 음식 만드는 과정이 가족들에게 노출되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음식 만드는 것을 보며 자랐다. 엄마의 수고를 느끼고 도움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립된 부엌은 그런 정서를 나누기 힘들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가스와 전기의 보급으로 집 안에서 더 이상 타오르는 불꽃을 볼 일이 없다. 이렇게 수만 년 동안 음식을 익히고 집 안을 따뜻하게 하고, 결정적으로 가족의 유대감을 강화했던 불의 역할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가족’을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어낸 일은 불이 왜 벽과 지붕 같은 물리적 요소와 함께 집의 본질적 요소인지를 증명한다. 안전과 쾌적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주택에서 가스와 전기는 위험하고 더럽고 냄새 나는 불을 대체했다. 그렇다면 불 주위로 모이게 하는 기능은 무엇이 대체했을까? TV가 잠시 그 기능을 하다가 컴퓨터와 스마트폰 같은 개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더 이상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유대감 강화 역할로서 불의 기능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족 구성원의 수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원시인류의 가족은 10명 이상의 무리였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대가족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3인 가족, 2인 가족, 심지어는 혼자 사는 세대의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가스나 전기가 불을 대체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불은 과거와 같은 위대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구성원이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집 안에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유대감의 상실 또는 부족을 뜻하기도 한다.
Text | Shi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