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강박을 지운 아이 가구

VILLIV



CULTURE|라이프스타일, 프리미엄, 홈데코

안전 강박을 지운 아이 가구

아동 가구 컬렉션 하우스 오브 로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부모의 마음은 아동 가구 소비 패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인테리어 트렌드에 맞춘 감각적이면서도 인체 공학적인 아동 가구가 등장하고, ‘친환경’과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가 붙을수록 그 가격이 치솟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아이에게 필요한 가구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앤소피 로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이가 자라면서 원하는 대로 변신시킬 수 있는 어린이 가구 컬렉션을 제안했다.



Little VILLIV

육아는 한 가정에 크나큰 축복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개인만이 아닌, 가족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빌리브> 매거진은 매월 1회에 걸쳐 아이와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발자취를 찾아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iggy chair + riva stool



가정에 아이가 있다고 해서 멋진 집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두꺼운 매트와 큼직한 수납 박스, 장난감으로 가득 찬 MDF 선반에 선택지가 머무를 필요도 없다. 물론 레고 조각을 밟기도 하고 아찔한 순간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의 진정한 묘미는 아이에게 부모의 인테리어 비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그 공간을 함께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벨기에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앤소피 로셀Anne-Sophie Rosseel은 아들 이기Iggy를 위한 가구를 찾다가 문득 깨달았다. ‘왜 모든 아동 가구는 지나치게 귀여울까? 그래서 놀이 방에 숨겨둬야만 할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 방에서든, 침실에서든, 놀이 방에서든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어른도 탐낼 만한 디자인. 밝은 색상, 고급스러운 재료, 친환경적이면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가구가 필요했다. “아이 의자에 토끼 귀가 달려 있어야 할까요?” 로셀은 웃으며 묻는다. “1살부터 20살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윤리적인 가구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렇다면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고, 제가 아닌 아들 이기가 주인공인 가구를 만들기로 했죠.”




하우스 오브 로로 디렉터 앤소피 로셀과 아들 이기Iggy



riva table + iggy chair



book tower



대부분 어린이 가구는 몇 년 지나면 버려지지만, 로셀의 첫 어린이 컬렉션 하우스 오브 로로House of RoRo’는 그런 운명을 거부한다. 독성 없는 식물 기반 염료로 만든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해, 아이가 자라면서 몇 가지 요소만 바꿔주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염색 예술가 오드리 루이스 레이놀즈Audrey Louise Reynolds가 버섯, , 이끼 등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로 색을 입혔다. 도구도, 접착제도 필요 없다. 아이들이 보호자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조립할 수 있다. 수납장 박스 테이블은 상단 패널을 분리하면 나이트 스탠드나 사이드 테이블로 변신하고, 쌓으면 책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의자 역시 아이가 자라면 좌석과 등받이를 더 큰 사이즈로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로셀은 모든 가구에 필수로 수납 기능을 더해 최소한 수납장 역할을 하고, 성인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의자조차 단순한 좌석 이상의 기능을 하고, 책장에는 비밀 수납공간이 숨겨져 있다. 다리는 분리해 사이드 테이블이나 받침대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모든 가구는 스티커나 페인트로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책상의 제품명은숨바꼭질을 좋아하는 테이블이에요. 아이 눈높이에서 이름을 지었죠. 아동 가구는 단순히 물건을 놓는 용도가 아니라, 놀이와 학습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튼튼하고 안전한 것은 기본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해요.” 올해 메종 오브제 페어에서어린이 가구: 디자이너를 위한 놀이터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디자이너들은 아이들을 위한 가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놀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나친 안전 강박이 아이들이 놀면서 얻을 수 있는 감각과 경험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지나친 안전 강박이

아이들이 놀면서

얻을 수 있는 감각과

경험을 빼앗아간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시간이 걸린다. 어린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그 이후의 성장은 더디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실패를 경험하고, 위험을 깨닫는다. 로셀은 아이들의 손과 눈에 닿는 모든 것이 놀이와 학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하우스 오브 로로는 가구보다 도구에 가깝다. “아이들은 이 가구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요. 찰스&레이 임스Charles&Ray Eames나 엔초 마리Enzo Mari 같은 디자인 거장들의 어린이 가구에도 이런 철학이 깃들어 있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습을 찾아가면서 실용성, 기능성이 더해지는 거죠.” 고정된 역할을 강요하는 가구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고르고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한 가구가 필요한 것이다. 명확한 사용법이 정해져 있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며 두뇌와 신체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자신의 손때 묻은 가구로 이루어진 열린 결말의 방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아이 방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깃드는 곳이자 아이의 꿈이 펼쳐지는 공간이다.이곳이 장난감 가게처럼 어수선해서는 안 된다. 로셀은 잘 디자인된 공간보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정리된 공간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5세 이하의 아이에게는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공간이 존재하고, 이곳이 안전하다고 느낄수록 집 밖 세상을 탐험할 의지가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물건은 더 열린 결말을 지향해야 하며, 아이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탐험하고 창조하는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 방은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빠르게 변하지만 가구는 변화를 함께하며 오랜 시간 지속되어야 한다. 선반은 한때 동화책과 인형을 수납했다가 나중에는 소설과 기념품을 보관하게 된다. 아기 침대가 성인 침대로 변하더라도 방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잘 디자인된 아이 방은 자연스럽게 변신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구는 시간이 지나도 튼튼해야 하고, 방 분위기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진화해야 하죠. 장난감과 소품은 바뀔 수 있지만, 그 방의 느낌과 가치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Text | Anna Gye

Photos | House of RoRo(houseofroro.com), Adele Makulova



RELATED POSTS

PREVIOUS

집이란 어떤 마음가짐
더 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