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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라이프스타일, 오가닉, 재생

여전히 쓸모가 있답니다

집에 가득한 쓸모의 물건들

물건은 어느 순간 집 안을 채운다. 물건은 쓸모 때문에 구입하지만, 그런 쓸모 있는 물건이 다른 쓸모를 좀먹는다. 바로 공간이라는 쓸모다. 집 크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물건이 쌓이게 되면 집 안에서 쓸모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비워야 한다. 특히 부피가 큰 물건 말이다. 부피가 큰 물건 중에서도 잘 버려지지 않는 것은 주로 가구다.






침대, 책상, 식탁, 의자, 소파, 수납장 등은 언제나 자기 할 일을 한다. 그런 물건은 교체할 수는 있어도 버리지는 않는다. 새것으로, 또는 더 좋은 것으로 대체할 뿐이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TV, 오디오, 컴퓨터 등도 버리지 않는다. 그런 전자 제품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끊임없이 일한다. 부피가 작은 물건은 어떨까? 일에 필요한 도구, 필기구, 커터 칼, 테이프, 스테이플러, 종이, 클립 같은 것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늘 일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드라이버 같은 물건은 어떤가. 일자 드라이버, 십자 드라이버 따위는 일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런 게 없으면 아주 곤란해진다. 옆집에서 빌리기도 뭐하다. 그래서 공구통에 언제나 곱게 모셔놓는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데 필요한 도구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늘면 늘었지 버리거나 줄이는 법은 없다.


이런 물건을 살림살이라고 한다. 살림살이란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장만하는 것이다. 즉 반영구적으로 집 안에 늘 갖추고 있어야 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부피가 작은 물건은 그 작다는 이유로 쓸모가 별로 없어도 잘 버리지 않는다. 서랍 안은 언제 쓸지 모를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수납장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물건들은 버리지 않는 대신 잊힌다. 그런 물건은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쫓겨나지 않고 구원을 받은 셈이다.








버려지는 물건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런 것은 쓸모가 줄어든, 부피가 큰 물건이다. 대표적인 것이 운동기구다. 내 아들이 고등학생 때 턱걸이를 하려고 운동기구를 샀다. 요즘 아이들은 운동, 특히 근육 만드는 운동에 열심이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운동기구란 아령 정도였다. 물론 그것도 나중에는 안 쓰게 되지만, 역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주 오랫동안 집 안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 하지만 턱걸이 운동기구는 부피가 너무 커서 사용하지 않으면 바로 애물단지가 된다. 물론 처음에 집 안에 들였을 때는 쓸모 있는 도구로 사랑받는다. 아들은 초기에는 꽤 열심히 턱걸이를 했다. 그러다 마침내 턱걸이는 중단되고야 만다. 턱걸이가 중단되는 순간 턱걸이 운동기구는 퇴출될 위기를 맞는다.


왜 턱걸이가 중단되었을까? 턱걸이는 등근육을 단련시킨다. 등이 아주 넓어진다. 등이 넓어지는 것에 더 이상 매력을 못 느낀 걸까? 아니면 충분히 넓어졌다고 만족해한 것일까?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 바뀌었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내 아들이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은 아마추어로서의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돈이 목적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랑은 언젠가 열정이 식어버리고, 그 사랑을 추구하는 데 쓸모 있었던 도구는 버림을 받는다. 현대인은 누구나 충동적인 열정으로 구입한 물건들로 집 안을 채운다. 내 아내는 한때 쿠키 만들기, 테디 베어 만들기 따위의 아마추어였고, 나는 한때 프라모델 만들기를 사랑했다. 그런 일시적인 열정과 사랑은 언제나 집 안에 흔적을 남긴다. 내 서랍을 뒤져보면 프라모델 조립과 도색을 위한 니퍼, 스프레이, 접착제 따위가 10년 넘게 쓰이지 않은 채 쉬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부피가 있는 에어브러시는 결국 퇴출되었다.


에어브러시만 한 크기의 물건도 퇴출되는데 하물며 캣 타워만큼이나 커다란 턱걸이 운동기구의 운명은 자명하다. 아마추어로서 턱걸이를 사랑했던 아들의 열정이 마침내 사그라들자 그 운동기구는 바로 공간을 낭비하는 죄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 퇴출은 시간문제다. 이때 운동기구는 자신의 생존을 연장할 궁리를 한다. 운동기구는 옷걸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아들의 사랑이 식은 뒤 턱걸이 운동기구는 옷걸이가 되었다. 이 세상의 많은 물건이 이렇게 변신을 한다. 변신의 목적은 생명의 연장이다. “나는 다른 일도 할 수 있어요. 아직도 쓸모가 있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버려질 가능성이

높은 물건일수록

다른 쓸모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버려질 가능성이 높은 물건일수록 다른 쓸모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이것을 임시변통이라고 한다. 임시변통이란 갑자기 어떤 필요가 생겼는데 그것을 당장 처리할 도구가 없을 때 임시로 다른 용도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다. 책을 냄비 받침으로 쓰는 일이 대표적이다. 그러고 보니 책이나 잡지 따위가 그 집 안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일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냄비 받침이나 모기 채 따위로 임시변통된 것은 아닐까? 옷걸이로 쓸모를 바꾼 턱걸이 운동기구는 생존을 위해 진화한 셈이다. 집 안에 남으려는 운동기구의 변신은 절박하다. 운동기구의 절박함이 하늘에 가닿았다. 아들은 옷걸이로 진화했지만 자기 방을 비좁게 만드는 이 애물단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기로 했다. 중고시장에 내놓았더니 다행히 팔려서 턱걸이 운동기구는 쓰레기장으로 가지 않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턱걸이 운동기구로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원래 쓸모를 다하게 되었으니 행복한 일이다. 집 안의 모든 물건은 이렇게 주인이 자신을 버리지 않고 써주기를 숨죽이며 바라고 있다.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이 아이들이 자신을 갖고 놀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Text | Shin Kim, design journalist

Photos | HMMB by Open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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