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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이 편안한 진짜 이유

집의 편안함과 통제력의 관계

무더운 여름, 아들이 트렁크만 걸친 채 소파에 누워 있다. 부모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통제의 힘이 주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통제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압적이지 않은 수단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엄격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래간다. 그러면 집이 더욱 편안해지는 것이다.




20234“VILLIV” 매거진스페인 발렌시아의 비어 있는 집에서 발췌



아들이 초등학생 때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허물 벗듯이 옷을 벗었다. 그러고는 거실에 있는 부모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그 습관이 바뀌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에는 트렁크만 걸친 채 소파에 누워 있다. 부모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통제의 힘이 주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아들은 어느 정도 부모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통제가 가능한 대상에게는 눈치를 보지 않는 법이다. 독자 여러분은통제라는 단어가 좀 부적절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말 못하는 아이도 부모를 통제한다.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가 와서 젖을 주거나 달랜다. 우리 집 고양이도 아침에 짧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아이나 애완동물도 자기보다 힘이 세고 나이 많고 권위가 있는 대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부드럽게 통제할 수 있다. 여기서 통제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압적이지 않은 수단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엄격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래간다. 그러면 집이 더욱 편안해지는 것이다.


내 아버지는 엄격한 편이어서 늘 어려웠다. 그래서 집에 아버지가 있으면 살짝 불편했다.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면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TV 채널에 대한 통제권이 아버지한테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프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절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그건 아주 어렸을 적부터였던 거 같다. 나는 몰래 장난감을 사서 장롱 밑에 숨겨두곤 했다. 반면에 나는 아빠가 되어 내 아들이 뭘 사달라고 하면 거의 다 사주었다. 그렇게 웬만한 요구는 다 들어주면 아들은 아빠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아들은 나이가 들면서 장난감보다 비싼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패드, , 운동화, 여행 같은 값이 좀 나가는 것들이다. 나는 돈을 아끼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자 그런 요구는 주로 엄마한테 했다. 아들은 아빠에 대한 통제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편안함도 서로에게 통제의 힘이 있을 때 지속된다.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다른 한쪽이 통제의 힘을 잃게 되면 그 사람은 집이 조금씩 불편해질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 아내들은 대개 집이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제력이 남편에게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가족 속에서 시부모의 통제까지 받는다면 편안한 것이 아니라 늘 긴장되고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핵가족이 된 것은 젊은 부부가 좀 더 편안해지려는 욕망을 실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내들은 나이가 들어 남편이 은퇴한 뒤에 통제력이 점점 더 늘어난다. 남편이 가진 통제력의 근원이었던 경제력이 대폭 축소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남편이 부엌에 대한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아내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것이 여성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이다.




집 안에서 부엌만큼 많은 종류의 물건으로 채워진 곳은 없다. 요리 도구와 식기, 식자재를 통제함으로써 부엌이 편안한 공간이 된다. / ⓒJean van der Meulen



내 집이란 내가 주체적으로 모든 물건을 분류하고 조직화함으로써 각 물건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곳이다. / ⓒJames Steakley



아무리 좋은 가구로 예쁘게 실내를 꾸며도 그것과 함께한 시간이 없어서 낯설다면 내 집이라고 할 수 없다. / 202312“VILLIV” 매거진크리스찬 루부탱의스틸레토 힐같은 호텔에서 발췌



부엌의 통제력이란 음식을 자기 마음대로 능수능란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최근에는 남자들도 음식 만드는 능력을 많이 키웠고, 게다가 간편식과 배달 문화가 발달해 요리하는 능력이 없어도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내 아버지 세대에는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 따라서 직장을 잃고 출근하지 않게 되면 밥에 관한 한 아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부엌을 통제한다는 것은 부엌에 비치된 모든 요리 도구와 식기 그리고 식자재까지, 식사를 위한 모든 재료의 성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숙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아내가 나한테 냉장고에서 어떤 재료를 가져오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아무리 찾아도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았고 결국 찾지 못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있다니까. 잘 좀 찾아봐그런다. 그래서 다시 찾아봤지만 분명히 없었다. 그랬더니 아내가 주방으로 와서 냉장고 문을 열더니 금방 찾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부엌 물건에 관한 한 아내는 나보다 훨씬 큰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건에 대한 통제력이란 그 물건의 성격과 사용법은 물론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물건을 각각의 수납장에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조직화해서 관리하는 사람이 그것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법이다. 나는 책장이 많은 편이다. 수천 권의 책이 있다. 아내가 냉장고나 수납장에 있는 특정한 물건의 위치를 금방 찾는 것처럼 나도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다. 책장에 관한 통제력만큼은 아내보다 내가 더 크다. 그렇게 특정한 물건을 분류하고 질서 있게 정리하면 겉으로는 복잡해 보여도 그것을 주체적으로 조직화한 사람에게만큼은 단순한 것이다. 집이 편안한 것은 그 집이 단순하기때문이다. 단순함은 겉보기에 단순한 것만이 아니다. 내가 이해한 것은 복잡해 보여도 나한테는 단순한 것, 더 정확히 말해 단순해진 것이다. 내 집이 단순해 보이는 이유는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물건에 대한 통제력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집을 떠났을 때 덜 편안하고, 낯선 공간에서는 불편함을 넘어 긴장까지 느끼는 이유도 이 통제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 우선 그곳을 파악하여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공간에 있는 물건, 그 공간에 속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해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다. 그 공간을 내가 조직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의 가족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의 가족은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이 긴장을 만들어내고 나를 위축시킨다. 불편한 것이다. 그때 대개 집주인이 이렇게 말한다. “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요.” 이 말은 다른 집을 방문한 사람은 반드시 불편해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결국 낯선 공간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날 것이다.



모든 것, 가구와 음식, 사람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때 비로소 그곳이 내 집이 되는 것이다.”



직장의 사무실을 생각해보라. 1년 이상 다녀서 그곳이 편안해지면, 처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과 편안해진 뒤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는 1년 정도 지나면 그 공간에 대한 통제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똑같은 공간과 사물,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하는 것과 통제력이 생긴 뒤에 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어떤 사람에 대한 첫인상과 그를 오래 사귄 뒤의 인상이 다른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약간의 통제력, 약간의 영향력이 생기면 그 사람의 인상도 바뀌는 법이다. 똑같은 얼굴에 대한 인상이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편안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니 집이란 잡지나 모델하우스에 나온 것처럼 화려한 인테리어나 가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집에 있는 모든 것, 다시 말해 가구와 가전제품,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때 비로소 그곳이 내 집이 되는 것이다. 그런 통제력이 없다면 임스 가구와 폴 헤닝센 조명으로 한껏 멋을 부려도 그 집에는 편안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한 통제력이 줄어들면 그 집이 불편하고 떠나고 싶어진다. 자식은 어린 시절에 오히려 큰 통제력을 갖지만 자라나는 과정에서 통제 압박을 느낀다. 자식이 독립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더 큰 통제력을 갖고자 하는 욕구다.



Text | Sh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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