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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로컬, 친환경, 프리미엄

숲으로 가는 영국의 아이들

리틀 포레스트 포크 외

오후 네 시가 되면 영국의 어린아이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채 숲으로 향한다. 모닥불 옆에서 흙을 만지고, 젖은 나뭇잎 위를 달리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한다. 추위를 피하기보다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 2세 유아부터 가능한 영국 포레스트 스쿨은 이것이 바로 기후변화 시대의 자연 교육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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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한 가정에 크나큰 축복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개인만이 아닌 가족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빌리브매거진은 매월 1회에 걸쳐 아이와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발자취를 찾아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비는 잦아지고, 바람은 예고 없이 분다. 여름의 태양은 뜨겁다 못해 잔인하다. 변덕스러운 하늘은 아이들의 하루를 짧게 자르고, 놀이터의 웃음은 빗속으로 흩어진다. 부모들은 점점 실내로 향한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통제 가능한 공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외선과 폭염, 예측할 수 없는 계절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가야 할까?” 영국 교육자들은 단호히 말한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후의 역습 시대, 중요한 것은 햇빛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햇빛 아래서 안전하게 사는 방법이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자연을 교사로 삼는 전통을 지닌 나라다. 산업혁명 이후 이어진 인간 회복 운동 와중에 자연 학습은 유아교육 기본 단계(EYFS)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 속에서 견디는 법은 곧 삶의 기술이었다. 영국 부모들은나쁜 날씨란 없어요. 잘못된 옷차림만 있을 뿐이죠라고 말한다. 이는 숲과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놀이와 탐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영국식 야외 교육 방식을 추구하는 유치원, 학교, 포레스트 스쿨이 영국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 사계절 내내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숲속 유치원과 학교가 런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영국 최초의 완전 야외형 유치원 리틀 포레스트 포크Little Forest Folk는 두 살짜리 딸을 둔 엄마 리에나 배럿Leanna Barrett이 창립했다. 작은 숲속, 실내 교실은 없지만 모닥불이 피어 있고, 오를 나무와 머드파이 싱크대가 있다. 버드나무 터널 속엔 인형의 집이, 장작 난로가 있는 보랏빛 텐트 안엔 아이들의 낮잠 공간이 있다. 아이들은 숲에서 계절의 냄새를 배우고, 바람의 방향을 기억한다. 치즈윅Chiswick 캠퍼스 원장 오티스 린드블롬스미스Otis Lindblom-Smith이것은 위험은 교육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매일 아침 밧줄 상태와 활동 구역을 점검하며 덧붙인다. “도구가 위험해 보이지만 오히려 가장 안전한 학습 도구입니다.” 아이들은 톱을 잡기 전 무릎을 꿇고 손 위치를 익히며, 위험을 인식하고 다루는 법을 배운다. 두려움 대신 자신감을 얻고, 불확실한 자연 속에서 모험의 감각을 키운다. 아이들은 나무를 오르거나, 은신처를 짓거나, 자전거로 빠르게 달리고, 물 위에 띄울 뗏목을 만들거나 숲을 탐험할 때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피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이러한 결정 과정은 자율성과 판단력을 길러주며, 중등학교로 진학하는 시기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어른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할 힘을 키워준다.














아웃도어 아울스Outdoor Owls 또한 자녀의 유아교육을 우려했던 부모 헬레네Helene와 찰리Charlie가 만든 곳이다. “나의 가장 좋은 어린 시절 기억은 언제나 자연 속에 있었습니다. 언덕을 굴러 내려가고, 나무에 오르고, 벌레를 잡고, 은신처를 만들던 그 시간들. 나는 내 아이가 그런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부부는 팬데믹 기간 동안 실내에서만 머물면서 스크린이 친구가 되어버린 어린 세대의 미래를 걱정했다. 아이가 추위에 적응할 수 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안과 정신적 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불확실성을 다루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일상의 야외 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자연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배우는 일은 모든 청소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회복과 성장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부는 유치원에 이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초등학교까지 설립했다.


유아교육학자 캐스린 솔리Kathryn Solly는 단호히 지적한다. “아이의 야외 활동을 막는 건 대부분 부모입니다. ‘더러워지면 안 돼’, ‘젖으면 감기 걸려같은 말이 아이의 학습을 막죠. 아이는 젖음과 추위를 견디며 신체적·정서적으로 성장합니다.” 아이는 얼어붙은 웅덩이를 깨고 싶어 하고, 빗방울이 맺힌 거미줄을 바라보며 세상을 탐험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종종 그 마법을 깨뜨린다. 불안한 시선, 통제의 습관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이 존재하는 야외 놀이야말로 아이의 호기심과 탐구심, 협동심을 키워준다. 자연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는 부모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비 오는 날, “오늘은 형편없는 날씨야대신오늘은 따뜻하게 입는 날이야. 핫 초코 챙겨서 공원 가자라고 말해보자. 그 순간 날씨는 장벽이 아니라 이유가 된다. 자연은 도시 한복판에도 있다. 아이는 보도블록 사이의 민들레와 젖은 길 위의 지렁이, 구름 속의 거인을 발견한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아이가 변화를 견디는 힘은 이런 일상의 야외 경험에서 자란다.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 바람 한 줄기가 전하는 변화를 통해 영국 아이들은 환경 속 존재로 자라나고 있다.”



오늘날 영국  포레스트 스쿨은 기후 위기 시대의리와일딩rewilding’ 교육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기후를 몸으로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배우는 생태적 교육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영국의 모험·체험 교육 기관 PGL모험을 넘어 더 나은(Better Beyond Adventure)’ 전략 아래 야생 구역 지정, 재생에너지 도입, 리사이클 확대 등 지속 가능성을 교육 모델에 통합했다. 아이들은 숲에서 나무와 흙을 경험하며 기후변화가 나뭇잎의 색, 강물의 흐름, 곤충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감한다. 폭우와 폭염, 미세먼지 같은 환경 속에서도 적응력과 회복 탄력성을 배우며 자란다. 교사들은 자연을 교과서 삼아 날씨의 변화를 이야기로 풀어내고, 아이들은 빗물을 모으고, 나뭇잎의 성장 속도를 기록하며, 플라스틱을 줄이는 생활 실험을 한다. 태양열과 바람을 느끼고, 텃밭 돌보기, 곤충 호텔 만들기 같은 활동을 경험하며, 기후 위기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일상의 감각으로 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안전한 노출(safe exposure)’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자외선이 강한 날에는 그늘 놀이를 하고, 선크림과 모자, 수분 섭취를 놀이처럼 익히게 한다. 햇빛의 세기, 온도의 변화, 그림자의 길이 같은 개념을 몸으로 배우며, 짧은 햇빛 노출로 아이의 생리 리듬을 조절하는생태적 백신을 키운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관한 교육은 실내에서는 할 수 없다. 비 오는 날 물의 순환을 보고, 더운 날 식물의 잎이 마르는 이유를 관찰하는 것, 그것이 진짜 환경 교육이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아동에게 일주일간의 야외 체험을 보장하는 제도가 논의 중이며, 잉글랜드에서는모든 아이에게 자연 속 시간을이라는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주관한 프로젝트(Natural Connections Demonstration Project)에 의하면 125곳 이상의 초·중등학교에서 야외 수업을 도입했고, 그중 95%의 아이들이수업이 더 즐거워졌다고 응답했다. 영국의 많은 공립학교도 교실 밖에서 날씨와 계절을 수업 소재로 삼고 있으며,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 바람 한 줄기가 전하는 변화를 통해 영국 아이들은 환경 속 존재로 자라나고 있다.


변화하는 기후, 예측할 수 없는 날씨, 이런 환경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존 감각과 적응의 힘이 아닐까? 영국은 이 길 위에 서 있다. 스크린 앞이 아니라 숲속에서, 계산식이 아니라 관찰과 체험 속에서 아이들은 미래를 배울 수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영국 교실은 여전히 바깥에 있다.



Text | Anna Gye

Photos | Little Forest Folk, Outdoor Owls, PG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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