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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라이프스타일, 홈데코, 큐레이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

RH(Restoration Hardware)

Text | Nari Park
Photography | RH(Restoration Hardware)

미국 내에서는 “상류층의 럭셔리 주거 문화를 엿보려면 RH를 둘러보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만큼 미국 사회에서 가구 & 인테리어 브랜드 RH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인테리어 브랜드 쇼룸은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응축한 하나의 ‘주거 박물관’이다. 영국 중산층의 주택 구조와 삶의 방향성을 담은 해비타트 Habitat, 스웨덴을 넘어 북유럽의 기후와 주거 환경까지 해석 가능한 이케아 IKEA를 통해 우리가 먼 나라의 삶을 둘러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브랜드는 이제 기능과 디자인이 뛰어난 합리적 가격의 가구를 만드는 본연의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시대 삶의 스타일과 방향성까지 제안해야 하는 시대와 마주했다.

‘장비를 복원하다’라는 뜻의 ‘Restoration Hardware’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 RH는 미국 럭셔리 주거 문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브랜드다. 40년의 긴 역사를 이어온,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이는 RH의 지난 몇 년간 행보는 제법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뉴욕 미드패킹 지역을 시작으로 롱아일랜드 부촌 햄튼스, 팜비치, 소노마 와이너리, 최근 10월에는 미국 중부 도시 미니애폴리스에 쇼룸을 확장하며 미국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략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현대사회에는 '베이비 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두 가지 주요 소비자 집단이 있습니다. RH는 현대적인 가구로 교체함으로써 젊음을 유지하려는 베이비 붐 세대의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련되고 합리적인 디자인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또한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게리 프리드먼(RH 최고 경영자) -




RH는 일반적인 쇼룸 형태의 가구 브랜드와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 전략을 취한다. 거대한 저택이 연상되는 4~5층 규모 건물 전체를 쇼룸으로 사용하는데, 방문객은 누군가의 응접실, 루프톱, 야외 테라스, 침실과 욕실을 옮겨온 듯한 실제 주거 공간에서 ‘나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직접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기대앉을 수 있고 어느 곳에서건 자유롭게 차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RH에서는 매장을 가리키는 단어조차 이색적이다. 매장을 ‘숍 shop’이 아닌 ‘갤러리 gallery’라 부르며,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가 되기를 자처한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RH 뉴욕 갤러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쉽다. 19세기 부동산 재벌 존 제이콥 애스터 John Jacob Astor가 소유했던 랜드마크 건물을 리모델링한 약 8,000m2 6층 규모의 방대한 공간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 뒤로 화려한 샹들리에, 최고층까지 연결된 투명한 유리창이 인상적인 엘리베이터가 실내 중앙을 관통한다. 이곳은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는 전략 아래 방문객의 집 크기와 생활 패턴을 고려한 큐레이팅으로 공간을 섬세하게 세분화했다. 전 세계 60곳이 넘는 RH 갤러리에서 근무하는 라이프스타일 전문 컨설턴트만 3,000여 명. 각 층마다 데스크에 배치된 전문가들은 방문객과 일대일 대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사용하면 좋을 가구와 마감재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어떤 공간을 마련할지, 어울릴 가구 라인은 무엇이 있을지, 작품을 건다면 회화와 공예 중 무엇이 좋을지 등 방대하고 전문적인 컨설턴트의 역량이 요구된다. 그 같은 차별화된 비즈니스 전략으로 인해 미국의 대표적인 하우스 경제 매거진 는 최근 ‘미래 주거 공간의 로드맵을 그릴 대표 브랜드’로 RH를 꼽은 바 있다.








소노마 밸리에서 와이너리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게리 프리드먼 Gary Friedman이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르며 RH는 사업의 전환기를 맞았다. 2011년부터 연간 가입비 100달러의 멤버십 제도를 도입해 전 제품을 25% 할인 판매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RH의 쇼룸은 모두에게 개방하지만 실질적인 정보와 혜택은 철저히 회원에게만 제공한다는 셈이었다. 그 결과 RH는 충성도가 높은 미국 상류층 외에 섬세하게 관리받고 프라이빗 컨설팅을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안는 데 성공했다. “어느 곳에 살지, 집은 어느 정도 규모여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에게 RH는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컨설팅을 겸한다”라고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Forbes>가 평했다.




체험과 경험, 전문가의 조언을 앞세워 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공공의 산물’로 이끌어낸 RH는 지금 가장 흥미로운 ‘모두의 모델하우스’이자 라이프 큐레이터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RH의 베스트셀러 ‘클라우드 소파 Cloud Sofa’의 탄생 배경이 이와 닿아 있다. 아파트 거실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모듈을 변형해 사용할 수 있는 이 제품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동시대 젊은 도시인들의 생활 패턴의 결정체다. 스타일리시한 휴양지 건축물을 주로 지은 건축가 마몰 래지너 Marmol Radziner가 디자인한 ‘바르데나스 라운지 체어 Bardenas Lounge Chair’는 어떠한가. 모던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며 고안한 이 1인용 라운지 체어는 2015년 RH가 ‘미국 젊은 층의 모던 라이프스타일을 이끌겠다’며 유리 샹들리에, 모듈러 소파, 조각미가 돋보이는 욕실 제품, 소가죽 러그와 함께 출시한 ‘모던 라이프스타일 라인’의 대명사다.

또 하나 RH의 흥미로운 점은 그 흔한 소셜 미디어 계정 하나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1년에 2,500페이지에 달하는 카탈로그를 찍어내며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소스 북 Source Book’이라 부르는 인쇄물을 통해 RH는 브랜드 소식과 이벤트, 뉴스를 전달한다. ‘얼마만큼 많은 제품을 판매하는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는 제대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RH의 영민한 비즈니스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일까. 2018년 <포브스>에 따르면 RH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2%나 증가했으며, 내년에는 RH 게스트 하우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체험과 경험, 전문가의 조언을 앞세워 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공공의 산물’로 이끌어낸 RH는 지금 가장 흥미로운 ‘모두의 모델하우스’이자 라이프 큐레이터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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