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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도시,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작가의 집

루아크 르 그루멜레크, 이예림, 서도호

작가에게 집은 영감의 대상이자 작업의 주제다. 지극히 사적이고 절대적인 집에 대한 기억은 평생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예술가들의 삶과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본격적으로 ‘집’을 이야기하는 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집은 단순한 의식주 행위의 공간이 아닌, 한 인간의 세계를 완성하는 절대적 가치임을 느끼게 된다.




‘집’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 그 이상이다. 직간접적인 형태로 거의 모든 이들이 자신이 몸담은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업을 표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형태로 집을 작업의 중심축으로 삼는 작가들의 작업물은 우리에게 집의 의미와 문화, 시공간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건넨다.

“몸이 겪는 감각적 경험이 가장 많이 배어 있는 곳이 집이다.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현대성(modernity)’을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발터 벤야민은 그 조건을 ‘소외와 고립’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주체가 체감하는 공간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집에서조차 소외와 고립을 느낀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몸으로 체험하는 가장 친근한 공간인 집에 대한 기억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 거장들의 공간을 다룬 <코끼리의 방> 저자 전영백의 말처럼, 지금 우리에게 집에 대한 의미를 환기하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추려본다.




Loic Le Groumellec_Maison_2013_lacquer on canvas_120x110cm_courtesy Francoise Livinec Gallery


루아크 르 그루멜레크




“프랑스인에게는 집을 뜻하는 ‘홈home’보다 ‘메종maison’이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메종은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자급자족의 공간이 아닌, 한 가족의 역사를 집대성한 시적 공간과도 같다.” 지난 KIAF 기간에 방한한 프랑수아즈 리비네크François Livinec 갤러리 큐레이터의 말은 프랑스인에게 집은 단순한 삶의 공간 이상의 공간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35년간 붓을 들어온 프랑스 중견 화가 루아크 르 그루멜레크Loic Le Groumellec의 작업에서 이는 더욱 확고해진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간결한 모노크롬 화풍을 선보여온 작가는 콘크리트로 제작한 캔버스 에 옻칠을 더한 ‘메종’ 시리즈를 선보여왔다. 삼각꼴 지붕과 그 밑을 떠받치는 사각 도형은 극도의 미리멀리즘을 표출하는데, 이 완벽한 정형이 평평한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안정적인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뉴욕과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루아크 르 그루멜레크에게 집은 선과 면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하루 중 산책하기 위해 작업실을 나와 내면의 질문과 맞닥뜨리는 명상은 그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수직과 수평이 만나 이룬 정형, 직선으로 완성한 집은 누구에게나 가장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오브제다. 나는 단순히 집이라는 구조물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영혼을 채색하고자 노력해왔다.” - 루아크 르 그루멜레크 -




한편 일상 속 건물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젊은 아티스트 이예림에게 집은 사람들의 흔적과 감정을 담은 공간이다. 그는 누구나 살다 보면 잊지 않고 싶은 시간과 장소,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아련한 느낌을 화폭 위에 표현하고 있다. 집을 주제로 한 작업 가운데 작가가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긴 것은 .

몇 년 전 상하이에서 살았던 작가에게 산책은 하루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는데, 매일 집을 나서면 ‘오늘은 앞으로 갈까, 뒤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를 고민할 만큼 발길 닿는 모든 길이 특별했다. 상하이의 집들은 매우 다양했고, 그중 가장 눈에 들었던 것은 산책로 모퉁이에 자리한 1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상하이 아파트였다. 작가의 눈에는 아직도 ‘왼쪽 모퉁이에서 등장해 오른쪽 모퉁이로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시작한 시리즈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태어나 줄곧 아파트에서만 생활한 작가에게 우연히 바라본 한옥 지붕의 패턴은 마냥 신선했다. “뒤에서 한옥 지붕을 내려다보면 기와 패턴이 이어지는 모습에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가령 처음에는 작은 한옥이었던 것이 오른쪽으로 새로운 지붕을 연결하고, 다시 다른 쪽으로 지붕을 올린 흔적을 보면서 ‘이 집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나?’ 그려보는 거다.”

이예림 작가는 올바른 방향성을 유지하는 삶을 이상으로 꼽는다. 직장을 다니다 뒤늦게 전업 작가로 돌아선 그에게 ‘오히려 비교적 일찍부터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최근의 상황은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결국 삶의 속도와 방향, 나아가 이상적인 집의 형태와 라이프스타일 또한 상대적인 셈이다. “집은 어떤 건축물보다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보다 그동안 살아온 여러 집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더 애틋한 것도 그런 이유 같다. 현재의 집이 훗날 ‘과거의 집’이 될 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날 때야말로 ‘그 집’에 대한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라고 그는 말한다.




My Little Shanghai, ∞¢73x91_√— 3¡°, Acrylic on canvas, 2016, resize



이예림 작가




뉴욕과 런던에 거점을 두고 전 세계를 무대로 생활하는 작가 서도호에게도 집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2012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전시 <집 속의 집>을 열고 뉴욕과 서울, 서로 다른 공간에서의 집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기억의 충돌을 선보인 작가에게 집은 작업의 축을 이루는 주요 모티프다.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모델로 장인들의 손으로 지은 서울의 전통 한옥 기와집은 그가 대학 시절까지 머물던 기억의 공간. 그처럼 절대적이고 완벽한 서울에서의 집은 뉴욕 유학 시절 작가에게 문화적 이질감을 더하며 유년에 대한 향수를 더욱 증폭시켰다.

자신이 머물던 공간과 현재 머무는 공간을 잇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전시 ‘transportable home’부터 최근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연 전시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주요한 시발점으로 언급되어왔다. 예컨대 뉴욕에서 머물던 스튜디오, 서울에서 살던 한옥을 반투명 천으로 윤곽을 짜 선보인 작품들은 빛이 투영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마치 그가 머물던 집의 환영을 전시장으로 불러온 듯하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한옥의 특성을 경험으로 체화한 작가의 의도가 담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기억의 공간에 쉽게 다가갈 수 없으니 차라리 천으로 만들어 접고 이어 운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서도호 작가의 ‘집’들은 그렇게 천장에 매달린 채, 땅에 온전한 형태로 발을 디딘 채 기억의 공간들을 부유한다. 유년의 기억을 담은 서울의 집이 거꾸로 매달리고, 뉴욕 ‘현재’의 집이 대지에 내려앉은 지난 전시 작업물은 이를 상징적으로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질문하는 듯하다. 우리의 기억 속 집은 어떤 모습일까? 먼 훗날 추억할 수 있는 집에서 지금 살고 있는가?




“어쩌면 몇십 년 후에 내 모든 과거의 집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그들은 지상으로부터 멀어져 공기 중에 부유하게 된다.” - 서도호,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Do Ho Suh,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2013 Polyester fabric, ___metal frame. 602.36 x 505.12 x 510.63 inches / 1530 x 1283 x 1297 cm. Installation view,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November 12, 2013 – May 11, 2014. © Do Ho Suh. Courtesy of the artist and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Do Ho Suh,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2013 Polyester fabric, ___metal frame. 602.36 x 505.12 x 510.63 inches / 1530 x 1283 x 1297 cm. Installation view,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November 12, 2013 – May 11, 2014. © Do Ho Suh. Courtesy of the artist and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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