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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오가닉, 재생, 친환경

쓰레기 배출 제로에 도전하는 주방

제로 웨이스트 키친

Text | Nari Park
Photos | Ivana Steiner

“우리에게는 대안이 될 만한 또 하나의 지구가 없다”라고 적힌 스테인리스 싱크대가 있다. 수납공간을 최대화한 전통적 주방 구조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식기와 양념 통, 음식물 쓰레기를 거름으로 재활용하는 분쇄기가 탑재된 키친 유닛이 인상적이다. 쓰레기 배출 제로에 도전하는 디자이너 이파나 슈타이너의 주방은 집에서 주방이 갖는 의미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건넨다.








1926년 바우하우스 여성 건축가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Margarete Schütte-Lihotzky가 설계한프랑크푸르트 주방(Frankfurter Küche)’이 오늘날 보편적 주방 디자인으로 자리 잡은 지 1세기 가까이 흘렀다. 당시 주부들은 집을 벗어나 바깥 활동을 하며 맞벌이를 시작했고, 부엌은 매우 효율적으로 가사일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조리와 청소를 해야 했는데,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는 조리대와 싱크대 상부에 크고 높은 캐비닛 수납장을 설치해 시대의 요구를 반영했다. 이 키친 유닛은 지금까지도 많은 집에서 사용하는 주방 디자인의 표본으로 통용된다. 집의 중심이자 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주방이 기능하기 시작한 셈이다.


 

디자이너 이파나 슈타이너Ivana Steiner 100여 년 전 세상에 태어난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의 주방 유닛을 바탕으로 최근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제로 웨이스트 키친 유닛을 선보였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가정에서 영양과 요리를 다루는 방법까지 포함한다. 결국 낭비를 최소화하려면 가급적 포장이 적은 제품, 로컬 푸드 소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이파나 슈타이너가 전한 소회다. 현재의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디자이너 본인의 갈망은 이번 프로젝트의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먼저 제로 웨이스트 키친 유닛을 디자인하기 위해 긴 시간 다양한 조사 작업을 선행했다. 포장지 없이 물건을 판매하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제로 웨이스트 숍 6곳을 방문해 현지 판매원, 고객의 경험담을 종합했다. 또 제로 웨이스트를 삶의 기조로 삼는 이들의 모임인제로 웨이스트 포커스 그룹Zero Waste Focus Group’을 개설해 주방 디자인 작업에 대한 실질적 의견을 반영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쓰레기 배출 제로에 가까운 삶을 사는 여성들은 최소한의 생활 방식을 고집한다.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 외에는 거의 소유하지 않는 생활 패턴을 보인다.” 이 같은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는 결국 수납공간을 중시하는 오늘날, 주방 상부에 부착해온 캐비닛 디자인을 생략하는 파격적 시도를 이끌어냈다. “제로 웨이스트는 매일 사용하는 것만 보관하는 미니멀리스트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주방에는 벽 수납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싱크대 하단 수납장에는 와인 잔 8, 볼과 플레이트, 작은 접시, 유리잔 각 12개씩 보관할 수 있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가정에서 영양과 요리를 다루는 방법까지 포함한다.”

- 이파나 슈타이너, 디자이너 -




키친 유닛은 재활용이 가능한 철강 제품을 사용했다. 한때는 세탁기, 자전거, 음료수 캔으로 사용했던 스틸 제품을 수차례 공정해 재활용했다. 양념과 재료를 보관하는 유리 용기, 로컬 식자재를 담는 바구니, 리넨 가방과 파우치 수납함 등도 더했다. 특히 스틸 조리대는 식사를 위한 큰 테이블로도 두루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최대 60x60cm 크기의 스틸 패널을 부착하면 테이블을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다. 싱크대 한쪽에 마련된허브 가든에는 일조량이 부족할 것을 고려해 일광 램프를 설치했다. 허브 외에 특정 유형의 채소를 재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이들은 키친타월과 냅킨 같은 일회용품 대신 천을 사용하는 만큼 이를 정기적으로 세탁하고 말릴 수 있는 건조기를 설치했다. ‘제로 주방에 행주 같은 천을 말릴 수 있는 접이식 옷걸이도 부착했다. 퇴비 용기는 가장 중요한 시설이라 할 만하다. 싱크대 하부에벌레 상자(The Worm Box)’라는 이름의 퇴비 용기를 부착해 남은 음식물을 모아 퇴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허브 정원에 거름으로도 쓸 수 있다. 물 또한 허투루 쓸 수 없도록 설계했다. 싱크볼 두 곳에 물을 받아 설거지하면 물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세척 후 남은 물은 식물을 키우는 데 재활용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생산하는 연간 평균 폐기물량은 자그마치 580리터. 수치만 놓고 보자면 엄청난 양이지만 한편으로는 플라스틱, 알루미늄 및 종이 포장재 사용을 조금씩 줄인다면 모두가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적 수치이기도 하다. 디자이너 이파나 슈타이너는 냉장고 문과 직물 가방에우리에게는 대체할 만한 또 다른 지구가 없다”, “당신의 미래를 없애지 말라와 같은 강렬한 타이포그래피를 그려 넣어 다시 한번 우리 삶의 방향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 크고 넓은 주방을 가질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식자재로 조리하는 소박한 주방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의 주거 형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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