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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가 ‘홈’이 되려면

책 <집의 감각>

Text | Young Eun Heo
Photos | 그책, 김민선

<집의 감각>은 공간 디자이너인 저자가 네덜란드와 한국의 200명이 넘는 사람들과 나눈 집에 대한 이야기를 30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책이다. 집 구조는 물론, 그 안에 놓인 사물과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룬 책은 집이란 개인의 역사와 취향, 애정이 담긴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누구나 이사 첫날 밤의 낯선 느낌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도 옆에 있고 물건도 예전 그대로인데 왠지 먼 세상에 뚝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단지 공간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낯설 수 있다니. 새삼 공간의 힘에 놀라면서 언제 익숙해질까라는 고민에 잠이 안 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의 힘은 강력해서 어느새 그런 고민을 했다는 사실마저 잊을 정도로 새로운 집과 동네에 적응한다.



<집의 감각>의 저자인 김민선 디자이너는 네덜란드 유학 시절 4년 동안 다섯 번 이사했다. 책에 쓰여 있지 않지만 낯선 타지에서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집과 동네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지는 그 시간을 집의 감각이라 명명했다. 집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저자는 추억이 깃든 사물을 가까이 두고, 습관을 유지하며, 주변 동네를 산책했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집에 있다

느낌을 만드는 과정은 개인의 삶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정착하느냐의 문제다.”

- 김민선, <집의 감각> 저자 -




몇 번의 이사를 마쳤을 때, 김민선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타인의 집에 방문해 삶의 방식을 관찰하고 집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이는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는 200여 명이 참여했고 140가지 이야기가 모였다. <집의 감각>은 프로젝트 내용을 30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것이다.








가족, 일상, 현관, 부엌, 의자, 침대, 채광, 창문 밖 풍경저자가 정리한 집에 대한 키워드는 집을 이루는 건축 요소는 물론, 집 안에 놓인 가구와 조명,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까지 다루는 범위가 넓다. 공간 디자이너의 전문적인 시각은 집을 이루는 요소의 기능과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게 도와주며,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삶에 대입하도록 이끈다. 만약 이 책을 통해 인테리어 팁을 얻는 것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집의 감각>은 인테리어보다는 집을 통해 우리 삶의 형식과 태도를 바라보는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집의 본질 중 하나는 거주자의 취향이 반영된 곳이다. 이 공식을 충족시키려면 애정을 가지고 집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집을 예쁘게 꾸미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부엌 한편에 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이 있거나, 쨍한 형광등보다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선호하며, 읽다 만 책이 쌓여 있는 등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분이 하나씩 모이면 취향이 담긴 집이 된다.



취향이 담긴 하루하루가 쌓이면 집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매일 반복되는 습관은 낯선 공간을 익숙하게 만들어 집의 감각을 일깨운다. 과거와 현재를 품은 집의 감각은 때가 되면 보금자리를 옮겨야 하는 우리를 외롭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집 안에서 시작해 현관을 지나 집 밖의 도시 공동체까지 시선을 확장한다. 이사를 가면 주변을 산책하며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어떤 분위기인지를 살펴보는 저자는 집이란 주변 환경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집은 타인의 삶을 공유하는 공간이 된다. 부엌에서 밥을 먹으면서,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베란다에서 작은 파티를 하면서 가족 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역사를 공유한다. 이러한 집의 본질은 아파트 복도, 집 앞 공원과 놀이터 등 일상에서 마주하고 사용하는 지역의 공공 공간까지 연결된다.








국적, 나이, 성별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집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 저자는 집은 평생을 완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슷한 형태와 구조로 된 집이 나만의 공간이 되는 과정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 시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채워가야 한다. 개인의 삶의 방식과 역사를 품은 집은 분명 물질적 가치로만 집을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을 극복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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