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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큐레이션, 홈데코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타인의 초상화

매컬리 & 크레인

Text | Hey.P
Photos | Davy Pittoors

런던 근교 라이에는 19세기 유서 깊은 건물을 예술 작품으로 꾸민 흥미로운 갤러리가 있다. ‘아트 & 인테리어 쇼룸’을 표방하는 10년 내공의 매컬리 & 크레인은 지난달 온라인 숍을 오픈하며 유럽에 홈 갤러리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한쪽 벽면을 그림과 사진으로 빼곡하게 채우는 '아트월' 큐레이션에 능한데 그중 초상화 판매율이 압도적이다.








고갱, 렘브란트, 고흐, 피카소 등 천재 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남긴 자화상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흡입력이 엄청나다. 풍경화나 추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 인물의 찰나의 표정은 그 자체로 호소력을 갖기 때문이다. 21세기 미술계에서도 이름만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스타 작가들이 사람을 관찰하고 그 이면의 관계를 그리는 인물화의 독자적 영역을 이어가고 있다. 조지 콘도, 알렉스 카츠 등 미술 경매 시장에서 최고 작품가를 갱신 중인 이들의 주제는 인물이다.








영국 서식스 지방에서 10년간 아트 & 인테리어 제품을 판매해온 인테리어 쇼룸 매컬리 & 크레인McCully & Crane은 초상화를 가장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이다. 런던 동부 아트 신에서 활동하던 마커스 크레인Marcus Crane과 개러스 매컬리Gareth McCully 두 공동 대표가 이끄는 매컬리 & 크레인은 번잡한 런던을 떠나 전원도시에서 인테리어 소품 같은 미술 작품을 판매한다는 신조를 실현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최근 유행하는, 집을 테마로 꾸민 홈 갤러리는 어느 평범한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이 아늑한 공간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쪽 벽면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작품으로 가득 채운 아트월artwall이다.








A4 크기 남짓한 그림들이 다양한 층위를 이루는 갤러리 벽면 곳곳에서 초상화가 유독 눈길을 끈다. 얼굴을 절반가량 뒤덮은 턱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 반항기와 우수에 젖은 눈빛이 제임스 딘을 떠오르게 하는 청년, 베레모를 뒤집어쓴 빨간 외투 차림의 여인, 유카타를 입고 긴 생머리를 빗질하는 아시아계 여인 등 작품 속 인물들의 인종과 성별, 나이, 표정과 행위가 다양하다. 매컬리 & 크레인이 선별한 인물화는 정물, 추상, 풍경 등 다양한 분야의 회화와 어우러지며 한층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국의 유서 깊은 백화점 리버티 온라인 몰에도 작품을 독점 판매하는 포피 엘리스Poppy Ellis, 건축을 전공한 뒤 타인의 일상 속 찰나의 모습을 아크릴로 그려내는 데이비드 호건David Horgan 등의 작품이 특히 인기다. 매컬리 & 크레인이 작품을 선정할 때 방점을 두는 것은 바로 라이프스타일. 누군가의 사적 공간에 걸릴 작품을 제안하기 위해 공간을 환기하고 긴장감을 줄 만한 다양한 인물화에 집중한다. 비대면 시대를 맞아 지난달 온라인 숍을 오픈한 이 갤러리는 도자, 조명, 20세기 모던 가구 등을 함께 판매하며 글로벌 무대로 시장을 확장했다. “예술과 인테리어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예술 작품, 특히 벽 한 면을 작품으로 가득 채우는 아트월에는 우리 갤러리가 지금껏 자생해온 철학이 담겼다라는 것이 매컬리 & 크레인 측의 설명이다.








인물화는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메이저 갤러리를 중심으로 하나의 독자적 테마로 자리 잡았다. 기괴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인간의 다각적 감정을 구현하는 동시대 인물화의 대가 조지 콘도는 지난해 ‘거리 두기 시대’의 인물화 시리즈 'Distanced Figures'를 선보였다. 서로 마주한 두 인물 사이에 얽힌 무수한 선의 중첩을 통해 혼란스럽고 복합적인 팬데믹 속 인간 군상을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올봄 세계 3대 상업 갤러리에 속하는 하우저 & 워스Hauser & Wirth에서 개인전을 연 에이미 셰럴드Amy Sherald는 흑인들의 얼굴을 통해 당대 미국 사회를 풍자한 초상화 신작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인물화가 지닌 특유의 에너지가 좋다.

초상화에 담긴 사람은 현실을 말하고, 이는 결국

삶에 대한 자세이자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 에이미 셰럴드, 화가 -




국내에서도 인물을 주제로 한 회화가 개인의 내밀한 공간과 만나 독특한 환기의 정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루이비통 등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와 일러스트 협업을 해온 작가 손정민은 최근 개인전 'Tenderness'를 통해 인물화가 우리의 공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풍경을 선보였다. 식물과 인물을 주제로 한 인물화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큰 공감을 일으켰다.








주얼리를 우아하게 착용한 중년 여성, 소파에 앉아 한 손에 디저트를 들고 음미하는 여성, 반려묘를 안고 있는 남성, 머리에 스카프를 멋스럽게 두르고 장미꽃을 손에 든 제주도의 노인 등 다양한 인물을 그린 작품들이 일찌감치 판매되며 높은 인기를 증명했다. 이쯤 되면 집 안을 한 번쯤 둘러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물화는 마치 공간에 사람이 있는 듯한 느낌,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공간에 긴장감을 준다. <정리만 했을 뿐인데, 마음이 편안해졌다>의 저자 다네이치 쇼가쿠는 인물화를 피해야 할 요소로 보았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공간에 그만한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는 그림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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