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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다양성, 도시, 라이프스타일

아티스트가 환영과 착시로 지은 건물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전시 <바티망>

Text | Dami Yoo
Photos | MS JACKSON

때때로 작품 자체를 감상하기보다 작품 곁에 존재하는 ‘나’를 의식하기 위해 미술관에 가는 경우가 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구현한 관객 참여형 설치 작품은 이런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화이트 큐브에 재현한 건축을 통해 가짜 공간과 진짜 공간을 경험하는 관람객은 오히려 환영과도 같은 가짜 공간에 몰두하게 된다.








지난 7 29일부터 12 28일까지 서울 노들섬에서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전시 <바티망Bâtiment>이 열린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수영장, 탈의실, 자동차극장, 정원 등 일상적인 공간과 도시에서 접하는 장소를 미술관 안에 구현하면서, 익숙하게 여겼던 공간에 새로운 시각적 인식과 생경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수영장’이 있다. 동시대 미술사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물속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착시 효과를 연출해 감각의 불안정함을 일깨웠다. 과감하고 저돌적인 스케일,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유쾌한 장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풀어낸 그의 작품은 예술계에서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열리는 전시마다 화제를 모았다.




<바티망>은 누구나 그 위에서 배우로서 작품을 완성시켜가는 특별한 무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대표작 ‘바티망’이 큰 볼거리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한 이후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대도시를 투어하고 서울에 도착한 작품이다. 거울, 유리, 스크린 등 시각적 효과를 주는 장치를 활용해 예측 불가한 공간 경험을 만들어온 그답게 실제 건물을 재현한 파사드와 초대형 거울로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작품 속 사람들은 4층 높이 건물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마치 3차원 공간에 여러 방향으로 중력이 가해지고 있는 듯 혼란스럽다. 오묘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이 풍경은 작가가 늘 제안해 왔던 ‘새로운 보기 방식’을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확장시켰다. 아울러 이 비틀어진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기존 질서를 거스르며 존재하는 관객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미술적 경험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 ‘교실The Classroom' 역시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을 연상시키는 낡은 교실 공간에 관람객들의 이미지를 중첩해 마치 환영이 펼쳐진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전시 공간에 들어온 관람객은 ‘여기' 있지만 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은 교실 속에 존재한다. 이곳 너머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경험이 새롭고 의아한 만큼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셀피를 찍어 자신의 모습을 기록한다. 교실 속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에 대한 생각보다는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 공간적 실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새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제 화이트 큐브를 걷는 관람객들은 전시된 작품의 아우라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했다. 작품을 눈과 마음에 담기보다는 작품과 함께 있는 나의 모습을 휴대폰 화면에 담는다. 관람하러 온 작품보다 관람하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듯한 태도다. 작가 역시 “<바티망>은 누구나 그 위에서 배우로서 작품을 완성시켜 가는 특별한 무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메시지와 다르게, 카메라로 본 것만이 전부인 것 같은 역설적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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