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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그가 예술이 될 때

씨씨-타피스

Text | Anna Gye
Photos | cc-tapis

러그를 바닥에 깔아 공간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소품으로만 알고 있다면, 이탈리아 브랜드 씨씨-타피스의 러그 컬렉션을 눈여겨보라. 러그는 바닥에만 까는 것이 아니라 그림처럼 벽에 걸 수도 있고 벽이나 창을 대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각 또는 원형 디자인에서 탈피한 조각 같은 러그는 우리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앵글이 되어준다.





© Alejandro Ramirez Orozco




안타깝게도 한국 시장에서는 러그가 홀대받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 중 가장 저평가된 아이템이라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온돌 바닥을 기본으로 하기에 열을 빠르게 전달하고 바닥과 밀착력이 좋은 바닥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좌식 생활로 인해 변색, 오염되기 쉽지 않고, 청소하기 간편하며, 벽지와 창틀 색상을 고려해 ‘무난한’ 제품을 선택한다. ‘밋밋한 인테리어에 포인트로 작은 러그 하나 깔아볼까’ 생각하다가도 반려동물이 있을 경우 또 망설이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러그는 인테리어 감도가 높은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 액세서리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설립한 후 이탈리아로 거점을 옮긴 씨씨-타피스의 러그 컬렉션은 러그가 벽에 걸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되고, 인테리어 소품을 넘어 기능적, 예술적, 심리적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년 다른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러그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제조법에서는 네팔 수공예 장인들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씨씨-타피스CC-Tapis.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신제품은 러그의 본래 역할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사물로써 어떻게 우리 삶과 사회를 직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Michele Foti_Art Direction by Motel 409




오브젝트 오 커먼 인터레스트Objects of Common Interest의 더 무아레 컬렉션The Moiré Collection은 네모난 러그 형태를 거부한다. ‘뾰쪽뾰쪽하다’, ‘찍찍거리다’, ‘살랑살랑하다’ 등 의태어가 떠오를 만큼 움직임이 느껴지는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하는 오브젝트 오프 커먼 인터레스트는 단풍나무, 체리나무 등에서 찾아낸 무늬를 변형해 러그 형태를 만들었다. 그들의 설명대로 풍경을 가위로 쓱쓱 오려낸 듯한, 자연의 한 조각 같은 러그는 창문 역할을 한다. 삭막한 풍경 대신 자연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창문으로 손색없는 러그는 창문에 걸거나 소파에 느슨하게 걸쳐둘 수 있다.





© Simon171




© Michele Foti_Art Direction by Motel 409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Patricia Urquiola의 더 파이프라인 컬렉션The Pipeline Collection은 계속 바라보면 패턴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매직 아이 작품을 보는 듯하다. 러그 위에는 실 덩어리들이 뭉쳐 있다. 마치 고흐의 그림처럼 붓 터치와 물감의 마티에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 제품은 벽에 걸어두고 감상하고 싶어진다. 작가가 작업을 하듯이 정확한 방향이란 것도 없으니 시즌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걸어도 된다. 우르키올라는 또 러그로 벽을 감싸는 방식도 제안한다. 포인트 벽지처럼 거실 한 면을 벽으로 감싸면 다소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모던한 공간이 안락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역사, 정치, 사회적 상황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제품을 소개하는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의 텔레그램 컬렉션Telegram Collection은 예술 작품처럼 콘셉트와 스토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인테리어 제품을 구입할 때 생산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장인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익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르마판타스마는 네팔의 씨씨-타피스 러그 제작자들이 러그에 단어를 적어 넣고 러그 조각을 원하는 방식으로 연결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창의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 Alejandro Ramirez Orozco.jpg




러그가 디자인 가구처럼 수집 대상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질 수 있을까? 50년 만에 부활한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레 아르크 컬렉션The Les Arcs Collection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샤를로트 페리앙은 르코르뷔지에, 장 프루베 등과 협업하면서 그만큼 다양한 창작물을 발표했고 근대사회의 흐름을 꿰뚫어본 아티스트였다. 90대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건축, 도시계획, 순수 미술을 넘나들면서 경계 없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러그도 있었다. 레 아르크 컬렉션은 1972년 프랑스 알프스산맥의 레 아르크 스키장을 위해 디자인한 것이었다. 씨씨-타피스는 이탈리아 밀라노 산첼소San Celso 교회의 낡고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컬렉션을 펼쳐놓았다. 러그가 집에 대한 영감이 되고, 세대를 거스르며, 사시사철 가까이 두는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러그 한 장에서 얻는 기쁨을 알게 되면 우리 삶에 많은 물건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씨씨-타피스 공동 대표이자 디자이너 협업을 진두지휘하는 아트 디렉터 다니엘레 로라Daniele Lora는 보통 바닥, , 가구를 다 고른 다음 마지막으로 러그를 선택하는데, 사실 순서가 반대여야 한다고 말한다. 러그를 먼저 고르면 굳이 다른 소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러그는 여백과 채움을 연결하고, 공간과 사물을 이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공간의 분위기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분리된 가구들의 개성을 라디오 주파수처럼 맞춰주지요. 러그 한 장에서 얻는 기쁨을 알게 되면 우리 삶에 많은 물건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그는 러그는 더 이상 장식품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능, 생산, 아름다움이라는 디자인 언어가 빠져나가고 다정, 포근, 안락 등 심리 언어가 고개를 들 때, 러그는 화려한 벽지, 따뜻한 조명, 자연을 보여주는 창문, 기대어 쉴 수 있는 라운지체어를 대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씨씨-타피스는 러그 브랜드가 아니다. 러그라는 언어로 집을 채우는 물건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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