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자체가 식욕 해소를 넘어 나누고 소장할 수 있는 놀이로 진화하면서 요리와 예술을 접목시킨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요리와 예술의 조우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들은 아티스트다. 요리라는 만국 공통어를 이용해 미식 차원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전달하고 길들여진 삶의 방식에 딴지를 건다.
lailagohar.com
이집트 카이로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 예술가 라일라 고하르Laila Gohar.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초현실적이고 복고적인 분위기를 추종하는 그녀는 식사 공간에서 일어나는 시각적 효과, 행위, 습관, 풍습 등을 재치 있게 비튼 음식 작품을 만든다. 이는 사진, 그림, 가구일 수도 있고, 또는 연극처럼 벌어지는 식사 과정 전체가 될 수도 있다. 고하르는 에르메스, 꼼데가르송, 샤넬 등과 함께 퍼포먼스 아트 파티를 열기도 했다.
소시지로 만든 케이크, 두툼한 식빵으로 만든 푹신한 소파, 눈코입 형태로 굳힌 버터. 때론 누군가 먹다가 떠난 자리처럼 음식을 세팅하기도 하고 테이블만큼 큰 바게트 빵을 선보이는 등 고하르의 작품은 형식과 비례를 과감히 무너뜨린다.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도 있다. 소더비 행사장에 놓인 레드 컬러 의자와 똑같이 생긴, 크기도 형태도 그대로 닮은 케이크가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사람들은 의자를 조금씩 잘라 먹어야 했다. 같은 모양의 의자에 앉아서 말이다.
Instagram@lailacooks
고하르에게 음식은 진부한 일상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우리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 음식 재료의 성질과 형태, 식사 시간에 일어나는 전형적인 풍경을 완전히 다른 상태로 바꾸는 식으로 그녀는 일상을 전복시킨다. 사람들은 눈으로 형태를 인식하면서 상상하는 맛과 실제 느끼는 맛이 충돌하는 것을 경험하며 일종의 감각 해방을 느끼게 된다. 고하르는 매거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음식으로 장난친다고 야유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요”라고 우문현답을 했다. “저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그런 천연덕스러운 유머와 익살맞은 행동만이 세상의 인위와 관습을 무너뜨릴 수 있잖아요.” 일상의 틀을 풍자하는 그녀만의 유쾌한 음식을 접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보고 느끼고 먹는 방식을 강요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현타’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gohar.world
그녀의 ‘장난질’은 테이블웨어, 디자인 가구 영역까지 번져가고 있다. 조각가인 여동생 나디아 고하르Nadia Gohar와 함께 론칭한 고하르 월드Gohar World는 초현실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아티스틱한 테이블웨어와 실제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드레스처럼 새틴 리본으로 장식한 바게트 백, 진주로 만든 커틀러리, 프라이드치킨 조각 모양의 캔들, 달걀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샹들리에 등 모든 제품이 유쾌하다. 초대한 손님 상에 슬쩍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하르 월드는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을,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입니다. 저희 자매는 물론 고하르 가족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죠.” 고하르 월드는 뉴욕뿐 아니라 고향 이집트에서 공수한 제품과 고하르 가족을 위해 음식을 차리던 할머니가 직접 만든 수공예 작품을 판매한다.
한편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셰프가 되고자 요리 학교에 진학한 이머전 곽Imogen Kwok은 자신을 푸드 아티스트 또는 푸드 디자이너로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정물화처럼 정적이고 아름다운 요리를 연출하는 그녀는 <더 뉴욕 타임스 스타일> <보그> 등의 매거진에서 화보 스타일링을 선보였고,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과 함께 로에베 브랜드 파티를 주최하고 아트 오브제를 소개하기도 했다. “제 부엌에는 주방 도구보다 다른 도구가 더 많아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실, 원단 샘플, 리본 롤, 핀이 들어 있는 재봉 키트예요. 제가 만드는 음식은 미학적 요소가 강한데, 원재료를 분해해 음식 같지 않은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음식이 패션, 공예,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Matches Fashion
Instagram@imogenkwok
그녀의 곱고 아름다운 플레이팅은 비주얼만으로 평가하기엔 아쉽다. 음식 재료에서부터 레시피 개발까지 모든 과정이 그녀가 고심하고 관찰한 사회 현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음식이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그녀는 음식을 먹는 행위까지 맛의 일부로 녹여낸다. 올해 4월 로에베 2023 S/S 시즌에 열린 런던 로에베 카페 팝업 프로젝트. 앤더슨의 2023 S/S 로에베 여성복 쇼에 등장했던 앤슈리엄꽃이 식사 테이블에도 등장했다. 붉은 하트 모양의 잎과 선명한 노란색 꽃받침이 특징인 이 매력적인 꽃은 부드러운 디저트로, 붉은색 음료로 변신하면서 실제 꽃을 먹고 마시는 듯한 생경한 경험을 선사했다. 순백의 공간에 앉아 무릎 위에 냅킨을 깔고 꽃잎을 하나씩 떼어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은 마치 명상이나 요가를 하는 것 같다.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다.
정갈한 식사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요리 자체만이 아니라 주변 풍경까지 함께 소화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맛은 혀가 아니라 온몸의 감각이 반응한 결과물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테이블 분위기, 사람들과의 대화 등 식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어우러져 풍미를 만든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순간의 모든 현상을 체험하는 일이고 음식은 사회, 문화, 철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어쩌면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어떻게, 어디서,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아닐는지.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순간의 모든 현상을 체험하는 일이고 음식은 사회, 문화, 철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 또한 책 <철학자의 뱃속>에서 “식생활은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방식, 더 나은 몸을 갈망하는 방식, 미래를 꿈꾸고 장래에도 음식과 현실을 조화시키려는 방식입니다. 순수한 의미의 식생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하죠”라고 짚었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먹는다는 건 매일 매 순간 일어나는 반복적 행위이자 일상을 지배한다. 먹는 것을 변화시키는 일은 결국 삶을 바꾸는 일이다. 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장난과 유머, 패션과 디자인 사이를 오가는 예술가들의 음식은 나란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유도한다.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삶에 대해 음미하게 만들고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아티스트가 만든 음식의 맛은 긴 여운을 남긴다.
170
한정인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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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코 유이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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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리자 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