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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대에 종이 포스터 전시라니

이함캠퍼스 폴란드 포스터전

포스터 전시는 종종 열리지만 미국, 서유럽, 일본 같은 선진 사회가 아닌 동유럽의 포스터 전시는 매우 드물다. 그것도 무려 2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뒤늦게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동유럽 국가 중 폴란드는 경제성장에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기에 우리에겐 그곳의 문화와 생활이 낯설지만, 당시 폴란드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포스터를 통해 그들의 삶과 생각을 어렴풋이 유추해볼 수 있다.






경기도 양평의 남한강을 따라 1만 평(3 3000) 부지에 들어선 이함캠퍼스에서 조금 독특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세기 중반 폴란드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제작한 종이 포스터에 대한 이야기다.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라는 이름의 이 전시는 내년 6 22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포스터는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알리는 데 쓰인다. 흔히 영화, 전시, 행사 등과 어울린다. ‘극장 시절의 영화 포스터는 팸플릿과 함께 소장 대상이었다. 인기가 많은 포스터는 영화 속 인물뿐 아니라 주요 장면도 등장했는데, 무엇보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웠다. 요즘은 영화를 포함한 영상 콘텐츠 대부분을 OTT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접한다. 콘텐츠 수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음에도포스터 시대가 저문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정치, 사회 이슈 또한 포스터의 역할이 크다. 선거철이면 벽을 가득 채우는 것도 포스터다. SNS가 발달하기 이전, 사람들은 어떤 주요 상황을 TV, 라디오, 신문 등 고정형 매체와 포스터, 전단지 등 비고정형 매체로 주로 접했다. 그렇다 보니 자유도가 낮은 사회이거나 미디어 통제 상황 시 포스터 같은 비고정형 매체가 메시지를 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며 해외에서 40여 차례 전시된 폴란드 포스터 전시회포스터. 당대 추상표현주의를 포스터에 접목했다. / <폴란드 포스터 전시회>, 헨리크 토마셰프스키, 1956.



흔한 인물 사진 위주 포스터와 달리 회화적으로, 특히 영화 내용을 암시하는 성격으로 표현했다. / ‘선셋대로’, 발데마르 시비에르지, 1957.



폴란드 포스터 중 해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민중이 겪는 고통을 통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알반 베르크 보체크’, 얀 레니차



전기기타의 전설 지미 헨드릭스를 푸른색과 짧은 전기 파장 같은 곱슬머리로 표현했다. / ‘지미 헨드릭스’, 발데마르 시비에르지, 1974.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 포스터부터 냉전 시대 사회 이슈를 다룬 포스터까지 200여 점의 폴란드 포스터를 여섯 가지 주제로 구분해 보여준다. 잘 구성된 전시 순서에 따라 전시장을 둘러보면 마치 폴란드 현대사가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포스터의 특성 때문인데, 이함캠퍼스는 포스터를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표현 결과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통해 맥락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라고 밝힌다. 여기에 더해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는 억압적인 상황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혼란스러운 상황, 폭력적인 상황에서 메시지를 노골적이지 않게, 은근하게, 부드럽게 전하기 때문이죠. 폴란드 포스터 학파는 일종의 시로 포스터를 디자인했던 것입니다라고 전시의 감상 포인트를 더한다.



자신의 시선만으로

온전히 표현하려는 시도는

모든 예술가의

꿈이 아닌가 합니다.



이함캠퍼스는 순수예술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활 속 도구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알리는 미술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오황택 이함캠퍼스 관장(겸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은 가구 컬렉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폴란드 포스터 전시 또한 그의 컬렉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모은 폴란드 포스터는 무려 8000여 점에 이른다. 그는 전시 서문에서 이번 전시의 의의를 이렇게 말한다. “이함캠퍼스가 폴란드 포스터전을 기획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농축된 표현, 메타포로 표현되는 독창성, 대중에 영합하지 않아서 성공한 사례가 폴란드 포스터일 것입니다. 소비자의 비판에 괘념치 않고, 더욱이 암울한 통제 사회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누구의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시선만으로 온전히 표현하려는 시도는 모든 예술가의 꿈이 아닌가 합니다.디자인의 역할, 포스터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는 대목이다.


오황택 이함캠퍼스 관장은 사재로 인문 학교 건명원을 설립하고, 현 이함캠퍼스 건물을 1999년에 완공했지만 스스로 납득할 명확한 용도를 찾지 못해 20여 년을 묵혀두었다. 그것이 마치 강한 메시지를 유려한 시각 요소로 표현한 폴란드 포스터처럼 느껴진다면 과한 표현일까. 무심코 찾은 이함캠퍼스에서 전시를 통해 관장이 궁금해졌고, 관장의 행보가 이곳의 다음 전시를 기대하게 한다. 건축가 김개천이 디자인한 건물 곳곳을 둘러보는 것도 전시 외의 재미다.



Text | HMMB

Photos | ehamcam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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