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가 150주년을 맞았다. 150주년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리버티가 과거를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직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리버티는 단순한 백화점의 경계를 넘어 ‘리버티’라는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확장하며 고유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장기화된 경기 침체 속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백화점이었다. 온라인 유통 강화, 팝업 스토어, 문화 체험 이벤트 등 다양한 대응책이 이어졌지만 흐름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150주년을 맞은 ‘리버티Liberty’의 선택이 주목할 만하다. 몇 년 전부터 진행해온 로고와 상품군의 대대적인 리뉴얼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리버티는 단순한 백화점의 틀을 넘어 ‘리버티’라는 이름을 하나의 독립적 브랜드로 확장시키고 고유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전문가들은 브랜드를 흔히 디자인, 상품, 유통 전략을 기준으로 분석하지만, 진정한 브랜드는 전략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드는 미세한 인상, 어쩌면 감촉에 가까운 무언가다. 그것은 치밀하게 만들어진 계획보다 오래 살아남고, 유려하게 꾸며진 논리보다 빠르게 확장된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오랜 시간 상품과 서비스, 심지어 침묵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울림을 유지해야 한다. 리버티는 이 본질을 직관적으로 꿰뚫고 있다.
150주년을 맞은 리버티의 행보가 그 증거다. 리버티는 단순히 유산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150년의 시간과 미래를 한꺼번에 직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150주년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과거를 복제하는 대신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리버티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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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는 ‘더 패치워크 컬렉티브The Patchwork Collective’를 공개했다. 이는 리버티가 이어온 긴 역사 위에 전 세계의 장인, 디자이너, 직물 애호가들이 손끝으로 엮어낸 1500개 이상의 핸드메이드 조각을 하나의 거대한 퀼트로 완성하는 프로젝트다. 각각의 조각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집 안의 작은 방에서 바늘을 잡은 이부터 세계적 디자이너의 작업대까지, 패턴 속에 담긴 기억은 다르지만 모두 리버티라는 이름과 공간 아래 모인다. 브랜드의 과거를 기념하고, 현재를 갱신하며,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전통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필요한 태도임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일반 고객도 참여해 리버티가 추구해온 ‘열린 창작’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데 있다.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고객, 장인, 디자이너가 함께 직조하는 ‘공동 창작의 장’을 열어야 한다.
“I Am. We Are. Liberty.”라는 이름의 대규모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한 시대를 관통한 디자인과 예술, 그리고 아직 대중에 거의 공개되지 않은 리버티 아카이브의 일부를 공개한다. 이 전시는 2025년 일본 오사카 엑스포로 무대를 옮겨 다양한 문화 기관, 미술관,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확장된다. 이는 리버티가 특정 장소를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하나의 문화 운동처럼 이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150주년 행사에는 출판사 템스&허드슨Thames&Hudson과 협업해 출간하는 책 “리버티 : 디자인. 패턴. 컬러”도 포함된다. 이 책에서는 문화사학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Kassia St. Clair가 200여 가지 대표적 패턴을 통해 리버티의 미학을 다시 조명한다. 잘 알려진 플로럴 패턴부터 대담한 추상 디자인, 현대적 협업의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룬다. 리버티는 과거의 아카이브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언어로 다시 말하고, 내일의 상상력으로 확장한다.
The Patchwork Collective
The House of Liberty
리버티는 오랫동안 소매업계의 관성에 반기를 들며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왔다. 대부분의 소매업체가 디지털 전환에 몰두하며 온라인 시장으로 몰려갈 때, 리버티는 기술을 좇는 대신 로고와 디자인을 전면 쇄신하고 ‘피지털phygital’ 모델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선택했다. 물리적(physical)인 것과 디지털digital 경험을 하나의 매끄러운 고객 여정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고객은 온라인 채널, 이메일, 채팅 등을 통해 브랜드와 대화를 시작하고 이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연스럽게 경험을 이어간다. 운영 및 고객 서비스 디렉터 이안 헌트Ian Hunt는 팟캐스트 시리즈 ‘Conversations with Zendesk’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브랜드를 어떻게 인식할지에 집착하지 말고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기술 덕분에 효율은 좋아질 수 있지만 기본은 변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면 반드시 사람과 연결해줘야 합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운영 지침이 아니라 리버티가 체득한 철학에 가깝다.
이 철학은 내부 운영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일반적인 회사가 고객 서비스 전문가를 채용한 후 교육을 진행하는 반면, 리버티는 타고난 에너지와 따뜻함을 지닌 인재를 먼저 선발하고, 이후 고객 응대 기술을 더한다.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부문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고, 모든 직원을 ‘리버티’라는 정신 아래 모은다. 관리자가 직원에게 요구하는 것은 판매 실적이 아니라 ‘리버티다움’을 이해하고 이를 고객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다. 상징적인 튜더 양식 건물, 독보적인 매장 경험, 150년 전통은 이 같은 철학 아래 비로소 살아난다. 리버티의 공간은 단순히 시간을 견뎌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과 눈빛, 대화와 감정으로 다시 빚어진다. 이러한 인간 중심 전략은 리버티의 로열티 프로그램 ‘리버티 컬렉티브Liberty Collective’와 구독 기반 모델 ‘뷰티 드롭Beauty Drop’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할인이나 적립 대신, 독점 콘텐츠와 맞춤형 추천을 통해 브랜드의 세계관을 고객과 공유하고 브랜드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한다.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시대는 끝났다. 고객, 장인, 디자이너가 함께 직조하는 ‘공동 창작의 장’을 열어야 한다."
올해 리버티 매장은 전시장이자 연극 무대로 변신한다. 지난 150년간 브랜드를 빛낸 디자이너, 협업자, 음악가, 모델, 작가, 배우 등 다양한 리버티 팬들이 참여한다. 리버티가 처음 명성을 얻게 해준 가정용 패브릭과 벽지의 전통을 계승하는 ‘더 하우스 오브 리버티The House of Liberty’ 컬렉션뿐 아니라 리빙웨어, 의류,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인다. 영국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세븐티 파이브Seventy Five’도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의 벽지와 가구를 포함한 모든 인테리어는 리버티 제품으로 꾸몄다. 매장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이며, 고객이 그 안에서 직접 참여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리버티라는 이름의 브랜드는 그렇게 공간과 사람, 그리고 시간 위에 살아 숨 쉰다.
Text | Anna Gye
Photos | Liberty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