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쿄 국립 신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LIVING Modernity: 1920~1970년대의 주거 실험’은 세계적 건축가들이 지은 집 14채를 통해 그들의 창의적인 실험이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주택과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음 세대에 어떻게 계승될 것인지를 살펴본다.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 ©Kazuo Fukunaga
‘도쿄 국립 신 미술관(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층, 특별 전시 갤러리에서는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가 1931년에 작업한 ‘로우 하우스Row House’가 실물 크기로 구현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일반적인 건축 전시가 설계도와 사진, 모형으로만 이뤄지는 것에 반해 ‘LIVING Modernity: 1920~1970년대의 주거 실험’은 미스 반데어로에의 간결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을 실제 경험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모던한 공간에 담긴 건축가의 정신, 주택의 기능과 역할은 100년이 지난 2025년 현재까지 확장과 변화를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 구조도 다양해졌다고 말하지만, 현대 주거의 기본 구조는 100년 전부터 이어져왔고 당대의 실험적인 건축에서 확장된 결과다. 지금의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족 형태가 핵가족으로 변하면서 정착한 구조로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단독주택의 경우 공동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주자의 생활 방식과 이상을 담아낼 수 있어 1920~1970년대에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고, 이는 현대 주택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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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LIVING Modernity: 1920~1970년대의 주거 실험’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 알바르 알토, 장 프루베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14채의 주택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전시는 사회적 시각과 건축·디자인적 시각을 혼합했다.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시대다. 1920~1970년대는 소재와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건축과 디자인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다. 지금도 활용하는 건축 재료인 강철, 콘크리트가 등장했고 유리가 대량생산되면서 건축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전시에서 소개하는 르코르뷔지에가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건축한 ‘빌라 르 라크Villa Le Lac’(1923)는 가로형의 대형 창문을 통해 집 안에서 자연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철골 기술의 등장으로 지형에 상관없이, 때로는 지형을 이용해 튼튼한 집을 짓는 게 가능해졌다. ‘누가 누가 더 높나’ 경쟁하는 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는 현재에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1920~1930년대에는 혁신적인 변화였으며, 이러한 기술 발전으로 건축가들은 지형을 자유롭게 활용할 기회를 얻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건축한 ‘빌라 르 라크Villa Le Lac’(1923) / ©FLC ProLitteris
리나 보 바르디가 건축한 자신의 집 ‘카사 데 비드로Casa de Vidro’(1951) / ©NelsonKon
전시는 창문에도 집중한다.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면서 연결하기도 하는 창문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와 유리 생산 방식의 발전으로 더 큰 발전을 이뤘다. 대형 창문을 통해 자연광이 집 안으로 가득 들어와 낮에 불을 켤 필요가 없었으며, 창문의 개폐 방식도 다양해져 환기도 이전보다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이러한 창문의 특징을 살펴본 전시는 창문의 발전은 곧 빛, 공기(대기)와도 관련되어 거주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연결됨을 알려준다. 한편 창문은 외부와 내부를 연결함으로써 집 안에서도 자연을 품을 수 있게 하여 도시 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하도록 도와준다.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는 자신의 집 ‘카사 데 비드로Casa de Vidro’(1951)를 지을 때, 외벽을 큰 창문으로 감싸고 주변에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나무가 우거진 사진이 유명해 원래 산속에 지은 집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시공을 막 마쳤을 당시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건축가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5 / ©Kazuo Fukunaga
언제부턴가 휴식과 안정이 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사회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지켜줄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집은 대표적인 웰니스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과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환경 문제를 겪으면서 위생 역시 집이 수행해야 할 주요 기능이 되었다. 이는 전시가 주목한 1920~1970년대에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해도 인류는 감염병에 맞서 싸워야 했고, 집은 이러한 싸움에서 버텨주는 공간이었다. 특히 급속한 도시화, 인구 증가가 이루어진 20세기 초에는 결핵 퇴치를 위해 자연광과 환기를 중요하게 여겼고, 욕실과 화장실은 끊임없이 더욱더 위생적인 공간으로 발전했다. 전시는 이와 같은 창문과 욕실, 주방 등의 변화를 통해 주택의 발전은 곧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자 수단임을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건축 모형과 사진, 설계도가 진열된 전시장 한쪽에는 의자와 테이블, 조명이 자리하고 있다. 빈티지 가구 유행으로 눈에 익숙한 제품도 만나볼 수 있어 반갑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는 집에 들이기 위해 가구와 조명을 직접 디자인했는데, 이는 곧 대량생산되어 다른 집에도 놓이게 되었다.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가구와 조명은 집 안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한 끗이 되기도 하고, 거주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특히 가구는 지금까지도 제작, 판매되어 건축가들이 추구한 삶의 방식과 미적 감각이 100년 넘게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이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주는 동시에 그들이 진짜로 살고 싶은 집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전파한 미디어의 역할을 다뤘다는 점이다. 건축가들은 자신이 설계한 집을 사진으로 남겨 신문과 잡지에 실리도록 했으며, 이는 곧 현대적인 건축과 삶이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20년대 후반부터 열린 주택 전시회는 건축가, 기업이 설계한 새로운 형식의 주택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홍보하는 곳이었다. 책, 신문, 잡지, 더 나아가 박람회까지, 다양한 미디어는 대중에게 ‘이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주는 동시에 그들이 진짜로 살고 싶은 집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AI가 생성한 신기한 주택이 등장하는 현재, 전시에서 집중한 14채의 집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에 익숙한 우리에게 건축가의 이상과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잘 결합된 단독주택은 동떨어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전시가 주목한 집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고 변화, 발전하면서 10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시는 이러한 보편성을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의 삶을 존중한 건축가들의 실험이 미래에 어떻게 이어지고, 더 발전할 것인지를 탐구해보자고 제안한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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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커먼하우스 정명희, 정영은, 강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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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 윤광준
28
문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