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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도시, 재생, 힙스터

과거로 떠나는 뉴욕과 파리의 연말

홀리데이 노스탤지어 라이드 외

거리에 캐럴이 흐르고, 가로수엔 전구가 달리며, 곳곳에서 화려한 트리가 보이는 연말이다. 불황이라고 하지만 사람들 얼굴에는 연말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엿보인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지만 12월이 되면 괜히 마음이 들뜨고 새로운 이벤트를 찾게 된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제일 큰 명절이자 연휴인 문화권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많이 열린다.






뉴욕은 세계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가장 화려하게 보내는 도시다. 록펠러센터에 설치된 거대한 트리가 점등되면서 뉴욕의 연말이 시작된다. 거리를 가득 채운 화려한 조명과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꾸민 백화점과 쇼핑몰의 파사드, 윈도 디스플레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구경거리가 된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연말의 뉴욕에서 독특한 이벤트를 하나 꼽자면 뉴욕 교통박물관과 대중교통국이 주최하는홀리데이 노스탤지어 라이드Holiday Nostalgia Rides.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실제로 운행한 열차를 타볼 수 있는 이벤트로 뉴욕 시민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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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데이 노스탤지어 라이드는 12월 한 달 동안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8대의 차량이 다닌다. 운행하던 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해 승차하는 동안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아르데코 미학을 반영한 열차에는 내부에 라탄과 가죽으로 된 좌석이 있고 천장에는 패들형 선풍기가 달려 있다.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광고, 백열전구 조명으로 약간 어둡지만 따스한 느낌이 드는 내부, 영화에서나 들었을 법한 열차 브레이크 소리까지, 100년 전 시대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 일부러 기다렸다가 타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유명해져서 연말에 뉴욕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시간표를 찾아보고 탈 정도다.


무엇보다 홀리데이 노스탤지어 라이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탑승객들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부 탑승객은 열차가 운행되던 시절의 패션을 그대로 재현하고 시간 여행을 마음껏 누린다. 때로는 열차 안에서 라이브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플랫폼에선 열차를 기다리면서 스윙 댄스를 추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함께 어울리거나 사진을 찍으며 그 순간을 즐긴다. 연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편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le Grand Palais des Glaces는 연말 시즌이면 대형 아이스링크로 변신한다. 고풍스러운 건축 장식과 아름다운 유리 돔 천장이 어우러진 역사적인 장소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매력에 매해 많은 방문객의 발길을 이끈다. 올해는 천장에 닿는 높이의 에펠탑 모형을 아이스링크 중앙에 세워 방문객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그랑 팔레 아이스링크는 오전부터 밤까지 운영하는데 시간대별로 다른 매력을 전한다. 오전과 오후에는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고,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화려한 조명 아래 DJ 공연이 펼쳐져 마치 파티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춤을 추는 듯하다. 또한 아이스링크 주변에는 핫초코와 와플, 그리고 프랑스인이 겨울에 즐겨 먹는 라클렛 팝업 상점이 문을 열어 스케이트를 타다 허기진 배와 추운 몸을 달래준다.










2012년에 처음 문을 열어 지금까지 30만 명이 다녀간 그랑 팔레 아이스링크는 1900년대 최고의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장소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유럽의 화려한 건축양식과 철골과 유리가 조화롭게 설계된 천장을 바라보며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그랑 팔레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다. 그래서 매해 이곳은 연말을 즐기는 가족들과 한 해의 마지막을 다른 나라에서 색다르게 보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뉴욕과 파리는 서로 먼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연말 이벤트는 모두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연말을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크리스마스하면 많은 이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산타에게 원하는 선물을 받게 해달라고 빌던 기억,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풍경이 펼쳐진 장소에 가보고 싶어 했던 일, 가족 혹은 친구들과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걷던 순간 등. 추운 겨울임에도 우리의 기억 속 연말은 따뜻했다. 전문가들은 연말을 기다리는 심리적인 이유로향수를 꼽는다. 연말 시즌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과거와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향수란 삶이 더 단순하고 덜 삭막했다고 믿는 어느 한 시대에 대한 낭만과 동경일지 모른다.”



하지만 홀리데이 노스탤지어 라이드와 그랑 팔레 아이스링크가 추억하는 시간대는 지금 그 이벤트를 즐기는 사람들과 맞지 않는다. 2025년을 사는 우리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겪지 않았고, 1900년대의 파리 만국박람회를 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홀리데이 노스탤지어 라이드 현장을 촬영했던 사진가 마틴 잉버는사람들이 향수라는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드러내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향수란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삶이 더 단순하고 덜 삭막했다고 믿는 어느 한 시대에 대한 낭만과 동경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연말마다 따뜻했던 세상을 그리워하며 지난 한 해의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New York Transit Museum, Le Grand Pal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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