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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도시, 라이프스타일, 노마드

작지만 거대한 나의 집

요가 강사 겸 모델 루이지 프라토

Text | Anna Gye
Photography | Lyle

한국의 작은 평형 아파트의 안방 크기는 4평(약13.22㎡) 정도. 홍콩에 사는 이탈리아인 루이지 프라토는 한국의 안방보다 작은 집에서 산다. 사회에서 갓 독립한 젊은 홍콩인 대부분이 이런 나노 플랫에 살며 음식은 레스토랑에서, 빨래는 세탁소에서 해결한다.








현재 사는 곳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출신으로 4년 전 홍콩에 와서 댄서, 요가 강사,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요. 홍콩의 젊은이들이 주로 사는 나노 플랫에 살고 있고요. 홍콩섬에서 원룸 12평 아파트의 월세 평균이 18만 2000홍콩 달러(약 270만 원)이니, 나노 플랫이라고 해도 이탈리아 밀라노 원룸 월세와 비슷한 렌트비를 내요. 건물 자체는 아마 50년이 휠씬 넘었을 거예요. 렌트비가 유독 비싼 것은 홍콩섬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멀지 않은 완차이 동네라서 그렇죠. 이 주변에는 하나의 집에서 4개의 방을 4개의 집으로 나눈 나노 플랫이 많아요. 안방 크기의 공간에 부엌, 화장실, 침실이 있고요. 침실 아래, 부엌 옆, 천장 위에도 선반이 있어서 짐을 보이지 않게 정리할 수 있어요. 바닥은 앉기에도 불편할 정도로 좁아 주로 침대 위에서 생활해요. 냉장고는 있지만 요리를 할 수 없어 레스토랑에서 세끼를 해결하고, 세탁은 보통 세탁소에서 무게에 따라 돈을 내고 해결하고요.



홍콩은 GDP가 4만 8000달러에 달하지만 평균 집값이 123만 달러(약 14억 원)로 세계 1위를 차지할 만큼 주거비가 상당히 비싸요.

그래서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은 집값을 아끼기 위해 이런 나노 플랫에서 살죠. 보통 렌트 비용을 1년마다 올리는 탓에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잦아요. 젊은 친구들에게는 집을 꾸밀 여유조차 없죠. 홍콩인들은 이런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불평 대신 위안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아요.



나노 플랫에 어떻게 입주하게 되었나요?

이곳에 산 지는 4개월 정도 되었어요. 다른 거처를 마련하기 전에 임시로 사는 거예요. 4개월 전에는 파트너와 함께 다른 곳에 살았는데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돼 살 집이 필요했어요. 일하는 곳이 센트럴 지역이라 가까운 완차이 동네를 택했고, 단기 계약이 가능해 이곳에서 살게 되었죠. 같은 현관문을 사용하는 이웃은 4가구인데, 주로 혼자 사는 젊은 홍콩 친구들이고 바로 옆집에는 이탈리아 여인이 살아요.








홍콩에 산 지 4년 되었는데 짐이 별로 없네요.

저처럼 몸이 무기인 사람은 몸이 전부예요. 여러 나라로 여행이나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이라 최대한 짐을 줄이려 노력하고요. 옷은 블랙과 화이트 컬러만 입고 헤어스타일도 간편하게 정리했죠. 운동은 주로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는데, 홍콩에는 호텔 같은 시설을 갖춘 훌륭한 피트니스 센터가 많아요. 사우나 시설도 갖춰줘 있죠. 또 집 밖에서 여가를 보내기 좋아하는 홍콩인을 위해 공공 레저 시설 센터도 다양해요. 하루에 반나절 정도 운동하면서 몸을 가꾸는 데 시간을 보내요.



침대에 누우면 발이 닿을 것 같은 이런 작은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외국인에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엔 힘들었죠. 이런 규모의 집은 제 생애 처음이거든요.(웃음) 하지만 집에 대한 개념을 조금만 달리 생각하니 편해지더라고요. 홍콩인에게 집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것 같아요. 집 안이든 밖이든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이 바로 집인 것이죠. 집을 소유하기보다 사용한다고 생각해요. 슬픈 이야기지만 홍콩 젊은이들은 집 사는 것을 포기했어요. 평생 일해서 돈을 모아도 살 수 없는 가격이거든요. 대신 그 비용을 집 밖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을 경험하는 데 사용해요. 홍콩은 집 안보다 밖이 더욱 다이내믹한 도시예요. 도시 내에 쇼핑할 곳도, 먹을 곳도 많죠. 스카이라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대우림에 둘러싸인 숲도, 동남아시아에 온 듯한 바다도, 인적이 드문 섬도 있고, 이런 것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따뜻한 날씨도 보장되죠. 아시아 여행을 하기에도 최적의 위치고요. 물론 저의 집은 물리적인 규모는 작지만 홍콩이라는 거대한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홍콩에 사는 다른 외국인들은 이런 작은 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외국인에게 홍콩은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일 뿐이에요. 직업적 이유로 2~3년 살다 고향으로 돌아가죠. 가족과 함께 온 이들도 있지만 홀로 온 이들도 있고요. 대부분 장기 호텔 투숙을 하거나 호텔식 서비스가 갖춰진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터라 그들에게 홍콩의 집은 머무는 장소에 불과해요. 이런 이유로 집을 구입하거나 집을 꾸미는 일이 드문 것 같고요.




“홍콩인에게 집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것 같아요. 집 안이든 밖이든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이 바로 집이 되는 것이죠. 집을 소유하기보다 사용한다고 생각하죠.

(중략) 이탈리아에서 4평 규모의 집을 지으면 불법이에요. 삶을 위한 최소한의 규모가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이탈리아인에게 집은 어떤 개념인가요?

이탈리아 시칠리아 사람들은 불필요할 정도로 넓은 집에 살아요. 주로 밀라노나 로마 등 큰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많아 비어 있는 건물이 많죠. 얼마 전 이탈리아 주요 도시에 인구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단돈 1유로에 지중해의 태양 빛이 내리쬐는 시칠리아의 집을 소유할 수 있게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무너져가는 역사적인 건물을 보수하려는 목적도 있기에 구매자는 1유로 외에도 개보수 비용을 내야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기사만 봐도 현실적으로 홍콩과는 큰 차이가 있죠. 이탈리아에서 4평 규모의 집을 지으면 불법이에요. 삶을 위한 최소한의 규모가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이탈리아인에게 집은 삶 자체예요. 가족을 이루면 당연히 집을 구입해야 하고, 가족 구성원에 따라 집을 늘려야 하죠. 집을 가꾸는 일은 건강을 돌보는 일과 같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이죠. 시칠리아의 경우 낮잠 시간도 있어서 직장인의 경우 12시 정도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 뒤 4시에 다시 출근해요. 이탈리아인에게 집은 가족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해요. 사람들을 만날 때 레스토랑을 찾기보다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죠.



그만큼 집을 꾸미는 데 많은 투자를 하겠죠?

집을 사는 것보다 집을 개조하고 꾸미는 데 더 큰 비용을 쓰죠. 이탈리아인은 완벽주의 성격이 있어서 문고리 하나를 바꾸는 데에도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요. 완벽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미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죠.



애크러배틱을 전공한 후 현대무용, 발레를 배웠다고 들었어요. 고향 이탈리아를 떠난 것은 직업적인 이유였나요?

어릴 때부터 “나는 길 탐식가다. 세상의 모든 길을 맛보리라”라는 말을 남긴 배우 리버 피닉스처럼 살고 싶었어요. 신발 공장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카레이서였던 아버지 또한 다른 이탈리아인들과는 달리 여행을 즐기셨고,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하셨죠. 그런 가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저는 ‘생활 여행자’가 되었어요. 이탈리아 로마에서 학업을 끝낸 후 무용단 생활을 하면서 전 세계에서 살았죠. 서울에서도 4개월 정도 살았고요. 미국 크루즈 쇼 팀에서 일하면서 크루즈를 타고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멕시코, 쿠바, 자메이카 등을 여행했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간 후 중국 상하이로 갔어요. 이후 홍콩으로 왔고요.



홍콩으로 온 것은 어떤 계기였죠?

20대 초에 이탈리아 무용단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며 4개월 동안 서울에 살았어요. 제가 발을 딛은 첫 아시아 땅이 한국이었죠. 그래서 상하이에서 살고 나서 한국으로 가볼까 했는데 어머니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홍콩을 제안하셨어요. 홍콩은 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고 홍콩에서 저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 없이 홍콩으로 왔어요.



홍콩에서 무려 4년을 살았어요. 여행자로 머물렀다고 하기에는 무척 긴 시간이에요.

제가 말한 ‘생활 여행자’란 여행을 하듯 미지의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말이지 여행자와는 달라요. 전 한 번도 여행자로 살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에서든지 그곳의 한 일원으로 살았고 그곳의 삶과 밀접한 장소에서 잠을 잤죠. 만약 홍콩에서도 여행자로 살았다면 이런 나노 플랫에서 살지 않았겠죠. 제 직업 특성상 어느 나라에서든 직업을 찾을 수 있었기에 이런 삶이 가능했다고 봐요.









홍콩에서 아티스트로 생활하는 것은 어떤가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홍콩 사람들은 아직도 아티스트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그들에게 성공한 삶이란 은행원이나 공무원 같은 수입이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삶을 뜻하죠. 물론 홍콩의 생활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들에게 직업은 돈이고 집이고 음식이니까요. 댄스 활동을 하는 홍콩 친구들을 보면 부업으로 하거나 취미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홍콩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요?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홍콩 시위대의 충돌로 도시가 마비되고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가득했던 몇 달간 불안과 불편 때문에 홍콩을 떠나야 하나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홍콩이 주는 여러 자극이 저의 인생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홍콩은 심플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나라예요. 사는 환경과 분위기 때문에 휘둘리기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내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며 사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죠. 작은 집에 산다고 해도, 프리랜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해도, 소음과 소란이 가득하다고 해도 저의 몸과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사람들은 주변을 변화시키거나 훌쩍 다른 장소로 여행을 다녀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현재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하고 심플하게 살아야 해요.



어떻게 심플하게 살 수 있는 거죠?

우선 몸을 움직여야 해요. 인생을 자기 계획과 의지대로 살려고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서 몸으로 부딪치는 거죠. 아무래도 저는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발끝의 감각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오늘 제 몸이 어떤지, 마음의 온도는 어떤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알 수 있죠. 몸을 느끼게 되면 몸과 연결된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게 되고 나에게 집중하게 돼요. 그럼 직감과 본능에 예민해지고, 몸과 마음을 짜릿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집과 차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죠. 사소한 것에도 감정을 느껴요. 세속적으로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삶이라는 것이 언젠가 끝나게 될 것이니 잘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냉장고에 붙인 포스터 문구 중에 “비교해야 한다면 오직 어제의 자신뿐이다”란 글귀가 눈에 띄네요. 매일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이탈리아인이라서 치열하게 사는 법은 모르고요, 열심히는 살고 있죠.(웃음) 그런데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두렵고 외로울 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지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더라고요. 시간을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고 미지의 길을 걷는 다양한 사건과 접촉하면서 일분일초를 생생하게 보내는 것이에요. 그래서 전 홍콩이 좋아요.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매일 일어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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