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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란 비로소 나로 살기 위한 모험

작가·클립 대표 정성갑

Text | Nari Park
Photos | Siyoung Song

아파트, 한옥, 빌라를 거쳐 8평 남짓한 협소주택까지···. 갤러리 클립 정성갑 대표는 15년간 총 여섯 번 이사하며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주거 스타일을 경험했다. 최근 출간한 은 '재미있는 공간에서 재미있는 시간도 만들어진다'고 믿는 그의 신념을 담은 본격 집 에세이다.







<집을 쫓는 모험>이란 제호에서 위안을 얻어요. 모두가 집 하나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모습을 ‘모험’이라 부르면 조금이나마 덜 서글퍼진달까요.

CGV와 함께 ‘정성갑의 하우스토크’를 열 때였어요. 때로 돈을 좇아, 낭만을 좇아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 마디마디의 소동과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집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지요. 행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제 인스타그램에 홍보 글을 올렸어요. 3억 5000만 원에 판 아파트가 지금 10억 원이라 한동안 얼굴에 열꽃이 펴 잠을 못 잔 이야기, 한옥에 살며 온갖 고생을 한 이야기 등을 요약했는데, 그걸 본 출판사 대표로부터 “집을 쫓는 여정이 너무 재미있는데, 책으로 한번 써볼래요?” 하는 제안을 받았죠. 돈은 못 벌었지만 책이라도 얻을 수 있겠구나 싶어 기뻤어요.(웃음)



아파트, 한옥, 빌라에서, 그리고 협소주택을 직접 지어 살기까지 파란만장한 15년을 담았어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보편적 주거 형태 가운데 가장 합이 잘 맞았던 집은 어디인가?

아파트는 가격이 오를 때는 참 좋았어요.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뿌듯하고 금세 뜨거워지곤 했죠. 그런데 가격이 오르질 않으니(2010~2014년 아파트 가격은 긴 조정기를 거쳤다) 정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돈 때문에 아파트가 좋았던 거죠. 빌라도 마음에 들었지만 공동주택에서 오는 답답함과 번거로움이 있었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은 역시 한옥입니다. 한옥에 살 때는 머리에 열이 차올랐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일단 춥고 몸 쓸 일도 많으니까요. 생생한 순간도 많았어요. 마당에서 라면 끓여 먹고, 벌러덩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고, 빗물받이에 토도독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몸이 충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재의 단독주택 생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 일상이 윗집, 아랫집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좋아요. 단독의 풍경을 갖는다는 것도 근사하고요.





(위 사진 모두) 두 차례 경험했던 한옥집의 기억은 아직도 큰 추억으로 남아있다. / 정성갑 제공




요즘 밀레니얼 세대는 한옥살이에 대한 로망이 큰데요, 그들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요?

막연한 로망을 품고 덜컥 매매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막상 살다 보면 추위며 벌레, 주차 문제를 감당 못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한옥살이를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2~3년 한시적으로 사는 집이니 비가 새고 수도관이 얼어도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겠죠. 저희가 비용을 지불해 수리한 적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부동산법 개정으로 전셋집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지만 일단 한번 살아본다 생각하고 열심히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공간을 효율로만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효율은 낭만적인 시간 혹은 재미있는 시간을 사장시키죠.”




책에서도 언급했듯 한국인의 68%는 여전히 아파트로 대변되는 공동주택 생활을 하죠. 단조로운 아파트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인테리어 팁이 있을까요?

아파트에 살 때 한 번도 베란다를 확장한 적이 없어요. 바깥과 연결되는 그 공간이라도 있어야 덜 답답할 것 같았거든요. 차가운 타일을 밟을 때 발로 전해지는 냉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영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시간도 좋고요. 모든 공간을 효율로만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효율은 낭만적인 시간 혹은 재미있는 시간을 사장시키죠



“시간과 공간은 한 몸. 공간이 재미있지 않으면 재미있는 시간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에는 각자 공간의 역할이 있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에요.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늘 전망이었던 것 같아요. 아파트에 살 때 거실 창문 너머로 맞은편 아파트의 입면이 빼곡하게 보였는데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숨구멍이 없었다고 할까요? 빌라에 살 때도 오로지 전망 하나만 보고 매매를 결정했어요. 오르막길인 데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집이었지만 ‘전망만 나오는 집이면 된다’ 하는 생각이었지요. 한옥에 살 때는 마당과 더불어 행복했어요. 거기서 아이와 춤도 추고 고기도 구워 먹고, 여름에는 모기장을 펴놓고 잤지요. 답답하지 않은 집, 바깥 공기와 계절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집, 그래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집을 늘 쫓았던 것 같습니다.







유행이 돌고 돌 듯 과거 집 구조가 현재 공간에 다시 적용되기도 해요. 최근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는 사례처럼요. 예전 집의 어떤 부분 현대 우리 삶에 적용면 좋을까요?

옛날 단독주택을 구경하다 보면 장독대 위 작은 옥상 같은 공간이 꼭 있더라고요. 창고가 있는 집도 많이 봤고요. 옥상은 혹시라도 방수 문제로 속을 썩을까 봐, 창고는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없애는 경우를 보는데, 전 이런 공간을 최대한 살렸으면 좋겠어요. 옥상이 있으면 새로운 시선으로 집과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요. 캠핑 의자 하나 갖다 놓고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새 구경만 해도 좋지요. 창고 역시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넣어둘 수 있어 편하고요. 모든 공간을 방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오래된 것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길 권해요. 빨간 벽돌, 색 바랜 외벽, 정교한 무늬의 타일과 창문 같은 것은 돈 주고도 사기 힘들잖아요. 한옥의 창문만 봐도 옛날에 만든 건 유리에 자잘한 꽃을 수놓은 듯 정교하고 아름다운데 요즘 것은 밋밋하고 단조로워요. 멋이 있는 사물, 쓸모가 있는 공간을 최대한 살려냈으면 좋겠어요.



1년 전 서촌에 작은 땅을 구입해 3층짜리 협소주택을 지었어요.

한옥에서 더없이 행복했지만 전세였어요.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 방을 빼야 하는. 첫 번째 한옥에서 크게 당한 경험이 있어선지 두 번째 한옥에서도 안심이 안 되더라고요. 아파트는 내게 맞지 않는 거주 형태임이 확실했고 작은 마당만 있다면 굳이 한옥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집을 지으며 이런저런 소동과 난리를 겪었지만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위 사진 모두) 현재 생활 중인 서촌에 마련한 8평짜리 협소주택




집을 쫓는 긴 모험 끝에 안착한 지금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정말로 아주 아담하고 귀여워요. 대지면적이 18평, 실거주 면적은 1층이 8평, 2층이 6평, 3층이 8평인 집이죠. 언론에서 협소주택이라고 소개하는 집을 많이 봤는데 다 저희 집보단 크더라고요.(웃음) 아마 진정한 의미의 협소주택이 아닐까 싶어요. 집이 작은 만큼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창을 많이 내는 데 신경 썼어요. 다행히 창문 전망이 다 좋습니다. 1, 2층에서는 배화여자대학교 옹벽이 보이고 3층에서는 인왕산과 300년 된 회화나무, 멀리 청와대도 보이죠.




1층의 한 점 갤러리 ‘클립’




1층에는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고 있어요. 실평수는 작지만 주거와 업무 공간이 결합된 크고 알찬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을 짓는 순간 평면이 입체가 됩니다. 계단 밑을 포함해 이런저런 재미있는 공간이 생기지요. 1층의 한 평 정도를 떼어 한 점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고 있어요. 캐치프레이즈는 ‘좋은 것 하나씩’이지요. 잡지 에디터 생활을 20년 가까이 해 실력 있는 디자이너, 공예가, 건축가를 많이 알게 됐고 그분들과 일상에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류연희 작가의 황동판 쓰레받기, 구본창 사진가의 비누 시리즈 등을 소개했는데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았어요. 퇴사하고 걱정이 많았는데 아주 다행이죠.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 문득 마주할 때마다 행복해지는 집에서의 풍경이 있다면요?

집이 작아 세면대를 화장실에 설치하지 못하고 2층 계단참에 두었는데 마음에 들어요. 배화여자대학교 옹벽을 바라보며 양치하고 있으면 성공한 기분이 든달까요. 3층 주방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아요. 주변으로 걸리는 것 없이 멀리 인왕산까지 보이지요. 깨끗하게 개인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식사를 최대한 천천히 하고 싶어져요.




“살아보고 싶은 집이 있다면 기꺼이 모험을 감행하라 말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집을 쫓는 모험은 비로소 나로 살기 위한 모험이니까요.”




매매든 전세든 이사 마다 리모델링을 한 것도 인상적이에요. 내 집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떠나야 할 집에 돈을 들인다는 것은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돈에 눈이 멀어 아파트 분양권을 사놓고 완공될 때까지 어머니 댁에 들어가 산 적이 있어요. 아내는 고부 갈등으로 힘들어했고 부부 관계도 차츰 건조해졌지요. 그때 저희 부부가 깨달은 것이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오늘을 망치는 것, 망치는 오늘이 쌓이는 것, 그건 미래를 잃는 것이더라고요. 그 후로 전셋집이더라도 반드시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갔어요. 2000만~3000만 원이 목돈으로 쑥쑥 들어갔지만 사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에 아깝지 않았어요. 만약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다면 그 집에서의 시간이 즐겁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에게 인테리어는 오늘을 잘 사는 가장 확실하고도 든든한 방법인 것 같아요.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얻게 된 것 같아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언제나 제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어요. 며칠 전 강연을 하며 회사 생활이 너무 바쁘다 보니 살맛도 안 나 직장을 그만뒀다 했더니 청중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 못 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맞는 말이에요. 언제나 집과 가족이 가장 중요했거든요.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요즘에는 생각도 조금 바뀌었어요. 집은 넓어야 하는 것 같아요. 등교 제한으로 집에서 애들과 뒤섞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분리될 수 있는 제 공간이 절실하더라고요. 아이들 방도 큼직큼직하면 서로 덜 싸울 것 같고. 집을 지으면 집을 쫓는 모험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오히려 시작을 하는 기분입니다. 불편한 것, 아쉬운 것을 반영해 더 최적화된 집을 짓고 싶은 거예요. 집을 쫓는 모험 시즌 2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입니다.







집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많을 텐데 본인만의 공간 사용 방법이 있을까요?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많이 두려고 합니다. 제 책상 위에 있는 것은 대부분 공예가나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에요. 한 점 한 점 즐거운 마음으로 산 것이라 책상 앞에 앉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루하루 일하다 보면 금방 지저분해지지만, 한 번씩 대청소를 하면 다시 반짝반짝 윤이 나고 일에 대한 의욕도 샘솟아요. 좋아하는 것들로 책상을 정성껏 꾸미고 비교적 자주 청소하는 것, 그것이 집에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꿈꾸는 집을 얻기 위해 오늘도 모험의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넨다면요?

헤르만 헤세가 그랬어요.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추억이라고. 가장 진하고 풍성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집이에요. 한 번뿐인 인생, 살아보고 싶은 집이 있다면 기꺼이 모험을 감행하라 말하고 싶어요. 아파트, 빌라, 한옥, 단독주택를 옮겨 다니며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이야기 하나만큼은 많이 쌓였어요. 그걸 생각하면 아파트를 잘못 판 것이 실은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까지 듭니다. 무엇보다 집을 쫓는 모험은 비로소 나로 살기 위한 모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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