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마르니에서 오랫동안 일한 주얼리 디자이너 엘레오노라 피오리는 구석구석 손이 닿는 아담한 집이 좋다. 자투리 공간에 수납장이 자리하고, 창가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명당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신체 비율과 집 규모에 어울리는 크기와 구조로 가구도 직접 제작했다. 자신의 주얼리 작품처럼 유쾌한 컬러와 초현실적 이미지로 집을 꾸몄다.
이곳에 10년째 산다고 들었어요.
원래 남자 친구 가족의 집인데 제가 들어온 후 저만의 공간으로 변했죠. 친구들도 “문만 봐도 딱 네 집인 걸 알겠다”라고 해요.
거의 매달 내부를 바꾼다고요.
코로나19로 외출이 힘들었을 때는 거의 매일 가구 배치를 바꾸고 페인트칠을 새롭게 했죠.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원래 이 건물은 1900년대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예요. 커다란 창문, 넓은 야외 테라스, 높은 천장고 등 그 시대의 양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내부 또한 원룸 형태가 아닌 사방이 벽으로 나뉘고 방이 상당히 작아요. 저는 오히려 작아서, 적당해서 좋았어요. 손봐야 할 곳이 선명히 보였고, 효율적으로 공간을 재정비하기 위해 자투리 공간 하나도 낭비하지 않아야 했죠. 이런 작은 집은 테이블과 의자 위치만 바꿔도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손대면 티 나는 재미’로 거의 매달 공간에 변화를 주었던 것 같아요.
“집은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삶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이 작아서 좋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대부분 넓은 집에 살고 싶어 하잖아요.
집은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삶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편리함은 집 내부뿐만 아니라 동네 위치, 분위기, 교통 시설 등을 모두 포함하죠.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공간이 어느 규모를 넘으면 불편함으로 바뀌어요. 사는 사람의 신체 비율에 따라 적당한 내부 크기, 높이, 구조일 때 편리함을 느끼죠. 1인 또는 2인 가구의 경우 최대한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집 형태는 약 20평(66.12㎡)짜리 소형 아파트라고 봅니다. 이런 한계치 공식은 아파트 단지와 동네 크기에도 적용돼요. 아파트 단지가 너무 크고 복잡할수록 공동체 의식이 없어요. 이런 이유로 1~2인 가구가 선호하는 건물이나 동네가 생겨나고요. 전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았어요. 독립한 이후에도 카페,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에 있는,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를 선택했죠. 전 아담한 공간이 편해요. 쓸데없는 물건으로 공간을 낭비하지 않고 직접 손보고 오래도록 매만지고 아끼면서 애착을 쌓을 수 있는 공간. 집다운 모습을 갖추는 데 평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살았던 프랑스 카바농 집도 4평(13.22㎡)밖에 안 돼요. 르코르뷔지에는 이 작은 면적을 ‘인생의 본질을 만날 수 있는 충분한 크기’라 했죠.
2층 다락으로 연결되는 핑크색 사다리 등 직접 만든 가구가 눈에 띄어요. 가구와 사물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아요.
주얼리 작업을 할 때 가장 처음 하는 작업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이에요. 배경, 등장인물, 사물 등을 생각하고 어울리는 컬러와 이미지를 찾죠. 마치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처럼요. 집도 이런 식이에요. 방마다 각기 다른 세상 이야기가 있어요. 전형적인 공간이 없고, 공간에 어울리는 평범한 기능과 물건도 없어요. 예를 들어 거실에 TV와 소파가 없고, 대신 작업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일을 할 수 있죠. 부엌에는 주방 기구를 넣어둔 수납장 대신 책장이 놓여 있어요. 부엌의 테이블은 식사보다 독서를 하는 자리예요(식사는 주로 창가 테이블이나 야외 테라스에서 해결한다).
다락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더 궁금하네요.
핑크색 계단 위에는 다락 공간이 있어요. 거기 숨어서 다른 세상을 꿈꿀 수도 있고 잠을 자기도 해요. 각 공간을 딱히 부엌, 거실 등으로 정의할 수 없어요. 모든 공간을 그냥 방이라 불러요. 가구는 대부분 직접 만들었어요. 제 스타일, 비율, 수치에 맞는 기성품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죠. 이케아 같은 제품을 구입해 제 취향에 따라 변형시키기도 해요. 주얼리 목걸이 작품을 진열해놓은 테이블은 1950년대 부엌 가구의 패널을 재조립해 만든 것이고, 의자 또한 각기 스타일이 다른 다양한 시대의 빈티지 제품이에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제 몸과 기호에 맞춘 사물에서 느껴지는, 쓸모 이상의 기쁨이 있어요. 의자 높이 차이로 집중력과 일의 효율성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시선과 관점이 변하기도 합니다. 집이 작으면 그런 차이가 보여요. 가구와 사물로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죠.
아끼는 소품 몇 가지 소개해주세요.
주얼리 작품을 보관하는 다양한 크기의 컬러 트레이, 벽에 걸린 일러스트 작품, 투명 아크릴로 직접 제작한 테이블이요.
좁은 집이 답답하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많은 사람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공간이 좁아서라고 생각하는데,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답답함은 규모 때문이 아니라 신체 비율에 맞지 않는 가구 크기, 배치, 구조, 페인트 색의 영향이 커요. 무엇보다 한 가지 인테리어 스타일로 통일한 경우 금세 질리기 마련이에요. 집을 좀 더 개방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통일’보다 ‘조화’를 따지세요. 작은 집일수록 여러 가지 스타일, 질감, 컬러를 활용하면 분위기가 풍부해집니다. 이 집에도 바우하우스 디자인, 기숙사 인테리어 스타일, 영국 코티지 컨추리 스타일, 1960~1970년대 컬러 패턴 등이 혼합되어 있어요.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이케아 온라인 숍에서 책상과 테이블을 주문해 이곳저곳에 작업 테이블을 배치하고 페인트칠을 했어요.
컬러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당신의 주얼리 작품도,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컬러가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요.
저에게 컬러는 저를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제 작품을 보고 ‘꿈과 환상을 오가는 듯하다’, ‘동화적이다’, ‘여성스럽다’고 느끼는 것 또한 동물, 오브제, 식물 등의 이미지가 주는 느낌보다 그린, 핑크, 블루 등 오묘한 컬러가 주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좋아하는 컬러는 분명해요. 음영이 짙은 쿨 톤 컬러를 선호하죠. 특히 페일 핑크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위로 사용하지는 않아요. 수학 공식처럼 섬세한 연결 고리에 따라 컬러들이 연결되어 있어야 멋지고 아름답게 보여요. 집을 꾸밀 때도 마찬가지예요. 공간과 가구, 공간과 공간 간에 컬러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어져야 해요. 페인트는 주로 펜톤 제품을 이용했고 컬러는 대부분 직접 만들었어요.
이런 컬러 감각은 선천적인 것이겠죠?
아니요, 경험인 것 같아요. 16살 때부터 거의 매달 방을 새롭게 꾸몄는데, 나폴레옹 시대에서 영감을 얻어 방을 온통 블랙과 골드 컬러로 칠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1950~198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 등 역사를 공부하면서 컬러에 눈을 뜬 것 같아요. 컬러의 힘은 컬러 자체가 아니라 혼합에서 나와요. 여러 가지 컬러가 서로 충돌했을 때 균열과 조화에서 탄성이 나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컬러 감각을 기르고 싶다면 어울리지 않는 컬러들을 많이 경험해봐야 해요. 소위 막춤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발견해야 해요.
답답함은 규모 때문이 아니라
신체 비율에 맞지 않는 가구 크기, 배치,
구조, 페인트 색의 영향이 커요.
개조하고 싶었지만 손대지 못한 부분도 있나요?
부엌과 야외 테라스, 거실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고 싶었는데 건물 기둥을 건드려야 해서 포기했어요. 대신 같은 컬러로 칠해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게 했죠.
집 안 곳곳에 작업 테이블이 있어요. 휴식과 일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외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처럼 알람 설정을 해요.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업무, 2시부터 6시까지 오후 업무를 하죠. 아침에 집중에 잘되는 편이라 일어나 바로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매번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니 효율이 안 나더라고요. 보통 회사에 가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잖아요. 집에서 일하면 이런 변화가 없으니 대안으로 공간을 바꿔서 일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든 방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어요. 작업하지 않을 때는 테이블과 의자가 오브제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솔직히 패션 브랜드 마르니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이 일해요. 직접 제작도 하고요. 휴식 시간을 정확하게 챙기는 데 신경 쓰고 있어요. 휴가도 착실히 챙기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0년 정도 패션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다음 10년이 눈에 보여요. 경력을 쌓고 인맥을 만들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저는 현실보다 다시 꿈을 좇고 싶더라고요. 성공보다 성장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무런 계산 없이 회사를 나와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꿈꾸었던 주얼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벽에 걸면 회화가 되고, 테이블 위에서는 조각품이고, 일상에서는 패션 제품이 되는 물건. 저의 상상에서 출발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상을 자극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해요. 최근 집에서 작업하는 모습과 작품 이미지를 영상으로 담았는데, 집을 아틀리에이자 쇼룸 삼아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셀프 인테리어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페인트를 직접 칠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전문가에게 맡겨도 좋지만 컬러만큼은 반드시 자신이 고르세요. 자신이 직접 컬러를 제조할 수도 있고요. 컬러가 필요한 곳은 벽뿐이 아니에요. 바닥에도 컬러 러그를 깔아 분위기를 변화시켜보세요. 집 전체를 꾸미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자신만의 ‘마이크로 방’을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침대 옆, 욕실 한쪽 등 자투리 공간에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죠. 편리와 실용을 앞세우는 아파트 공간이라 할지라도 내 몸에, 감정에, 주파수에 맞춘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