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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노마드, 다양성, 라이프스타일

아티스트 커플이 집 말고 밴에 사는 이유

회화 작가 그레이스 엘런 그린

Text | Nari Park
Photos | Grace Ellen Green, Sam Lawrey

자연의 푸른 단면을 화폭에 담아온 그레이스 엘런 그린은 오래된 작업실을 정리하고 남자 친구 샘 로리와 함께 길 위에 올랐다. 원색의 목재로 디자인한 그들만의 ‘바퀴 달린 집’에 몸을 싣고 스코틀랜드 대자연을 달린 지 어느덧 반년. 길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목재 스푼을 조각하고, 자연의 찰나를 캔버스에 그리는 아티스트 커플의 삶을 따라가봤다.








회화 작가 그레이스 엘런 그린Grace Ellen Green을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그러니까사회적 거리 두기온라인 아트 페어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팬데믹 이전의 평범한 어느 여름이었다.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사치 아트Saatchi Art 페어의 영국 브리스틀 행사에서 그녀의 부스는 다른 어느 곳보다 붐볐다. 자연 속에 푸른 실루엣의 여인을 담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작품들은 원시적이고 아름다웠다. “보태니컬을 주제로 작업하다 보니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아요.” 작품에 관해 설명하던 작가를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저장한 뒤 몇 년이 흘렀다.








팬데믹에 지친 어느 날, 문득 들른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담겼다. 오래된 전원 도시의 작업실을 정리하고 캐비닛을 제작하는 파트너 샘 로리Sam Lawrey와 함께 소형 밴을 타고 길 위의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초록색과 노란색이 화사함을 더하는 싱크대와 캐비닛, 꽃무늬 패턴의 퀼트 담요 등으로 아티스트 커플이 직접 인테리어한 실내는 기존 밴과는 사뭇 달랐다. 주운 나뭇가지로 목재 스푼을 만들어 판매하고, 길에서 마주친 농부에게서 채소를 구입해 요리하는 삶은 모험과 낭만으로 가득해 보였다. 이 아티스트 커플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어디인지, 노마드 삶은 얼마나 더 계속될지, 보편적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써나가는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밴의 협소한 공간에 산다는 것은 일상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 종일 부스를 지키며 본인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몇 년 전 브리스틀 사치 아트 페어 때의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작가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영국 서머싯의 전원 마을에서 자라 콘월에 자리한 팰머스 예술 대학(Falmouth School of Art)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했어요. 졸업 뒤 일반 전시에 참여하기보다 작가들이 직접 나서는 사치 아트 페어, 그리고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젝트와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워크숍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만났어요. 또 여행을 자주 다니며 새로운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죠.



어떠한 계기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그림은 항상 저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낙서와 그리기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언제나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죠. 부모님 모두 미술대학을 나왔는데, 제게 부모님들의 작업과 창의적인 주제에 관해 토론하는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제 인식이나 관심사가 변화함에 따라 그림도 조금씩 발전하고 변화했던 것 같아요.










당신의 그림에는 자연, 특히보태닉 그린을 주제로 한 작업이 많아요.

자연의 성장과 씨앗이라는 새 생명을 피워내는 일이 언제나 경이로웠어요. 제 작품에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 일종의 유기적 성장과 만물의 풍요로움과 다산성 같은 에너지를 담아내려고 하죠. 정원사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우리 가족은 늘 온실 식물에 물을 줬어요. 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으로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장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은 물론, 식물의 취약성과 자연이 직면한 위협을 상기시키는 메시지도 담기 시작했어요.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푸른 실루엣의 여성들에게서 마티스의 간결하고도 추상적인 드로잉이 연상되곤 해요.

마티스의 작품은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의 열대 풍경과 함께 제 작업에 끊임없이 영감을 줍니다. 동시대에 작업하는 전 세계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영감의 대상이죠.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로 소통하는데 갤러리가 문을 닫은 팬데믹 기간에 정말 유용했어요.








반년 전부터 파트너이자 캐비닛 제작자인 샘 로리와 함께 밴을 타고 다니며 길 위의 생활을 하고 있어요. 노마드 삶을 기록한 인스타그램 계정도 잘 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들을 길 위로 이끌었을까요?

비행기를 타고 시간을 절약해 빨리 어느 도시에 도착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우리는 무엇이든 느리게 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요. 둘 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비행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유럽을 누빌 계획이었는데 밴을 제작하는 동안 영국이 EU를 떠났고 팬데믹이 닥쳤어요.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다양한 공예품을 배우고 창작 활동의 영감을 얻기 위해 영국에서 둘 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결정했죠.



밴 라이프의 일상을 소개해주세요. 땅을 딛고 있는 주택에서의 삶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책에 소개한 250개의 공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는 다면요?

밴의 협소한 공간에 산다는 것은 일상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밥솥과 보일러의 가스를 다시 채우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탱크를 채우는 것이에요. 물은 가장 필수품이니까요. 밴 아래에 60리터짜리 물탱크가 있는데 3~5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밴에 살면서 작은 것의 가치를 알게 됐습니다. 이번 여름에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 순간은 천연 비누를 사용해 폭포와 강에서 목욕을 한 것입니다. 자연과 가까워지고 날씨의 리듬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티스트 커플의 이동식 차량답게 직접 인테리어한 내부가 돋보입니다. 특히 캐비닛 제작자 샘이 만든 맞춤형 주방은 모던하고 세련된 색감이 인상적이에요.

샘은 지난 5년 동안 서머싯에서 캐비닛 제작자로 일했어요. 차내에 적당한 가벼운 목재를 엄선해 밴에 최적화한 캐비닛을 제작했죠. 단단한 콘크리트 효과를 주는 포플러 플라이poplar ply를 통해 제작한 작업대, 마이크로 시멘트로 만든 싱크대가 있어요. 싱크대 가림판은 모자이크를 디자인하는 어머니가 만들어 선물해준 것이고요.



밴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능은 전기 사용과 수도꼭지에서 온수 선택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샘이 이러한 장치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죠. 태양 전지판과 240V 플러그를 사용하는 전기회로를 설계해 해결했습니다. 태양열을 충전하는 동안 엔진도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분할 충전' 백업을 통해 길 위에서 완벽한 자급자족이 가능하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을 보유한 밴을 타고 도로 위에서 생활하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어요.








지난 6개월간 어떤 곳을 거쳐왔고 앞으로 어디를 여행할 계획인가요?

2021 5월부터 밴에서 생활했어요. 우리가 즐겨 찾던 영국 동부 해안가에서 여정을 시작했죠. 대부분의 여름을 스코틀랜드 서부에서 보냈는데, 이 지역을 우리가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현재는 스코틀랜드에서 생활하고 있죠. 산을 오르고 해변을 산책하고, 그러다 한 번씩 우리가 그 자연 속의 유일한 방문자임을 발견할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맛보기도 해요. 극적인 풍경과 외딴 곳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엄청나죠. 식사 또한 최소한의 재료로 간단히 먹게 됐어요. 비프 스튜나 타코에 넣어 먹는 카르니타스carnitas, 크레페 같은 요리가 대표적이에요. 요즘에는 요리가 제게 굉장한 수양이자 내면을 채우는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정착하지 않는 이동식 삶이 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되면서 그림에 사용하는 색감이 훨씬 다채로워졌어요. 특히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의 전통문화나 특색이 묻어나는 풍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죠. 샘은 종종 산책 중 주운 나뭇가지로 나무 숟가락을 조각해 만들기도 해요. 자연은 살면서 점점 더 중요한, 절대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삶의 순간순간 영감을 얻으니까요. 팬데믹 이후 집이 업무 영역이 되면서 집의 고유 기능인 아늑함이 사라지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집에서도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밴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에요.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죠.”




길 위의 삶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달리 밴은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에요.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돌아보고 꼭 필요한 것만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밴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 삶에서 반드시 지참해야 할 필수품이 줄었는데, 이 점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길 위에서 생활하려면 최대한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가급적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최대한 삶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죠.









길 위의 이동식 삶을 살면서도 왕성한 작업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영국 서머싯 아트 위크Somerset Arts Week 등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근에 서머싯 아트 위크의 일환으로 배링턴 코트Barrington Court에서 7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그룹 쇼를 열었어요. 현재는 런던에서 열리는 에코 페미니즘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여성을 연결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축제예요. 리버티 런던 온라인 매장에서 작품 판매를 시작했고, 자선단체 아트 포 채러티 컬렉티브Art for Charity Collective에도 그림을 출품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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