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현은 작은 아파트에서 고양이 ‘가지’와 함께 산다. 2015년 전북 완주로 귀촌했지만 대자연에서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프리랜서 작가로 콘텐츠를 만드는 기획자로서 다양한 일을 하는데 도시에서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지 않는다. 그는 마냥 성공적인 귀촌 생활도, 그렇다고 험난하기만 한 귀촌 생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귀촌 생활을 전한다.
요즘 재미 붙인 취미는 무엇인가요?
지난달에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매일 아침 짧게 요가를 하고 단체 대화방에 인증하는 거라 답했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촌철살인의 네 컷 만화, 혹은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사 보면서 그리는데 자주는 못 합니다. 또 친구들과 차 마시고 향을 사르는 취미를 공유하고 있어요.
어떤 이유로 귀촌을 결심했나요?
서울에 살 때 회사는 다니기 싫고 만원 지하철은 답답하고,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갑갑한 마음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좋은 동료들과 어떤 일을 성취해낼 때의 보람이나 사랑하는 친구들과 보내는 휴식 시간으로 그런 괴로움이 상쇄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인지 회사를 자주 그만두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어요. 하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을 때도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았죠. 4년 동안 돈을 아껴 쓰며 여행자 같은 생활을 하고 나니 다시 도시의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지역에서 새 삶을 꾸린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 완주에서의 직장 생활, 그사이 4년여 시간 동안 대안적인 방식으로 ‘여행자로 살아도 굶어 죽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쉴 때는 어떻게 생계를 해결해야 할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노매드처럼 살 때는 왠지 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어느 정도 계획이 서야 안심이 되잖아요. 돈을 벌기 위해서 스스로 타협이 필요했고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됐어요. 짐을 싸 들고 가서 면접을 보고 출근하니, 귀촌한 것이 되어버렸죠. 어쩌면 4년간의 긴 여행이 다음 삶을 선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귀촌 이후의 삶을 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바뀐 점, 또 예상했던 것보다 크게 바뀌지 않은 점을 꼽자면 무엇인가요?
자연이 가깝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느 곳을 가든 사람이 적어요. 서울에서 살 때와 달리 생활 전반에 여유와 여백이 생겼어요. 지금은 전주에 작업실이 있어서 자동차를 운전해서 다니지만, 귀촌 초기에 완주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코스모스 핀 강둑길을 걸어서 출퇴근했어요. 반면 크게 바뀌지 않은 점은 역시 저라는 인간이겠죠. 귀촌 후에도 무엇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때가 있고 불안과 외로움도 이따금 느껴요.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귀촌하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의연한 인간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소위 잘나가는 사람을 질투하고 나만 바라보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하고 비싼 것 사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속상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것일지도 몰라’ 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볕이 잘 들어오는 방향에 맞춰 방 한가운데 소파를 덩그러니 놓아둘 정도니까요. 작업실로 쓰는 방에는 큰 창이 있어요. 바로 옆에는 제가 폐목재로 만든 캣타워가 있고요. 창문으로 큰 나무가 보이고 고양이 '가지'가 캣타워에 올라가 앉아 있는 풍경을 좋아해요. 귀촌 후 첫 번째 집보다 덜 좋은 풍경이지만, 도시에 살 때의 집에 비해서는 훨씬 좋아요. 집 밖의 나무가 보이고 내부도 훨씬 넓고요. 해가 지고 밤이 되는 순간도 좋아합니다. 자연과 가까이에서 그 흐름에 맞게,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가끔 아파트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층계참에 앉아 한참 밖을 보다가 들어와요. 빌딩 숲이 아닌 강, 나무, 논밭, 낮은 집들이 보여서 좋아요.
새로운 지역에 집을 꾸리면서 머릿속에 그린 청사진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요.
마루가 있는 한옥, 지붕이 낮은 시골 집에서 마당에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었죠. 상추, 고추, 가지 같은 것을 직접 키워 끼니때마다 따 먹고 싶었어요. 옆집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면서 핸드폰 문자도 읽어드리고 바구니 짜는 법도 배우고, 동네에서 밭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면 하루 품을 팔아 용돈도 벌고요. 혼자서 귀촌한 비혼 여성이 마을에 집을 구한 사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당시의 저는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어느 마을에 집이 나왔다는 소식이 저에게 전해지려면 인맥이 필요한데, 그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귀촌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팟캐스트 <귀촌녀의 세계란>을 진행했어요. 제가 귀촌을 적극적으로 준비하지는 않았더라도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기는 했거든요. 이후에는 귀촌인으로서 경험이나 사례를 말하는 자리도 종종 생겼고요. 어느 분야든 여성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잖아요. 역시나 귀농·귀촌 관련해서도 여성, 특히 비혼 여성의 이야기는 귀했어요. 청년 귀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여성 참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여성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이나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느낌은 적었죠. 그래서 귀촌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직접 팟캐스트를 시작했어요. 귀촌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는 귀촌에 대한 시각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제가 보고 느낀 것을 언젠가의 저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나누려는 거예요.
“귀촌에 대한 시각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나누려는 거예요.”
최근 펴낸 책 <귀촌하는 법>을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읽기를 희망하나요?
막연히 귀촌을 떠올리는 사람에게는 좋은 이야기도, 현실적인 이야기도 다 도움이 됩니다. 도시 생활이 답답한 분에게는 ‘꼭 도시가 아니어도 되더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고요. 세상에는 성공적이고 만족스러운 귀촌 이야기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뭔가 잘못된 건가’ 고민하는 귀촌인에게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특히 비혼 여성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절대 여자 혼자 시골에 가서 살 수 없다는 말은 ‘절대’ 틀리죠. 이미 시골에는 많은 여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고 있어요. 농사를 짓지도 않고, 대자연의 품에 살지도 않고, 전원생활을 하지도 않지만, 씩씩하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얻게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한 로망, 대자연의 품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는 곳, 가슴이 뻥 뚫리는 산이 코앞에 있는 곳이요. 저는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환상을 품는 일에는 언제든 찬성입니다. 그리고 가지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다양한 계단과 통로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