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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도시, 로컬, 오가닉, 친환경

카페가 된 혜화동 허니 소믈리에의 작업실

아뻬서울 대표 이재훈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국내 최초 허니 소믈리에이자 바리스타인 10년 차 도시 양봉가 이재훈. 그에게 벌이란 동료이자 친구이며 둘도 없는 조언자다. 카페 상호를 ‘꿀 서울’이 아닌 ‘벌 서울’이라고 지은 이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다 보니 그 일의 이면을 이해하게 됐다는 그에게 ‘친환경’ 같은 대의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 거기에 모든 답이 있었다.








아뻬서울은 어떤 곳인가요?

손님들에게는 카페이지만 제게는, 말하자면 연구실 같은 공간이에요. 벌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벌을 키우는지 알아야 새로운 접근을 위한 시각이 생기고 양봉 노하우 꿀을 활용한 레시피 같은 아이디어 계속 떠오를 테니까요. 건너편 건물 옥상에 소규모로 양봉도 하고, 좋은 꿀을 수확하면 팔기도 해요.



아뻬서울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

2018 2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5 차네요. 아뻬서울이 저에게 첫 카페는 아니고, 앞서 종로에서 비씨커피 스테이션BICI Coffee Station을 운영했어요. 그때도 가게 근처 건물 옥상에 조그맣게 양봉을 하고 꿀을 활용한 메뉴를 소개했어요. '서울허니 카페라'가 그때 개발한 거.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본격적으로 벌과 꿀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상호를 ‘아뻬서울’이라고 지었어요. 아뻬ape는 이탈리아어로 ‘벌’이란 뜻이. 아뻬서울은 벌이 중심에 있고 그 이야기가 확장되는 공간이에요.








주인공이라니 콘셉트가 독특하네요.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오래 고민했는데 최근 콘텍스트 디자이너라고 스스로를 정의했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벌은 낯잖아요. 저와 제 동료가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 도시 사람과 벌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허니 소믈리에는 무슨 역할을 하나?

허니 소믈리에는 쉽게 말해 꿀맛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에요. 나아가서는 꿀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꿀의 매력을 설명하고 제안해역할을 하죠. 와인 소믈리에나 커피 바리스타의 역할이 그 세계로의 안내자인 것처럼 저도 꿀이 어떻게 생성되고 색깔이 왜 그렇고 어떤 맛인지를 설명 조금 더 즐겁게 꿀을 접하도록 다고 생각해요. 아뻬서울에서는 허니 테이스팅 클래스도 자주 열어요.




타이밍이 잘 맞으면 멋진 개척자이고, 아니면 괴짜겠죠. 근데 괴짜가 되면 또 어때요.”




도심 양봉을 한 지 10년이 된 셈이네요. 처음 양봉했 때를 기억하?

2012년경이었는데 그때는 ‘도심 양봉’이란 어도 없었어요. 양봉을 배우고 싶은데 어디서 배워야 할지 몰라 인터넷을 한 뒤졌어요. 마침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작게 협동조합을 만들어 배우기 시작했죠. 쉽지는 않았어요. 온라인 양봉 커뮤니티가 있다해도 주로 전문적으로 양봉업을 하는 어르신들 모임 젊은이들이 서울 한복판에 서너 통으로 양봉하겠다는 걸 ‘쓸데없는 일’로 생각하셨으니까요.



그런데도 네요?

유럽이나 미국에서 먼저 도시 양봉하는 걸 봤어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청년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동네 공원이나 커뮤니티 가든, 도심의 랜드마크 빌딩 옥상에서 클럽을 만들어서, 아니면 개인적으로 벌을 키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여기서 해보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아빠의 도심 양봉을 신기해하지는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아빠가 양봉하는 걸 으니까요. “그걸 왜 해?”라는 질문은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죠.



그렇죠. 어른들은 꽤나 집요하게 그 이유를 캐려고 할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제가 양봉한다고 하면 반응이 세 가지 정도 돼요. 첫째, “쏘이지 않아요?”라고 걱정부터 하는 사람. 둘째, 그냥 웃는 사람. 셋째,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칭찬하는 사람. 양봉하면서 노하우가 쌓이면 심하게 쏘이지는 않고요, 또 좋은 일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저를 위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니까.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란 말씀이군요?

논리적 근거를 찾자면 솔직히 할 이유가 없어요. 고작 양봉 통 서너 개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뿐더러 ‘자연’이란 단어를 다 붙이기에는 너무나 미미한 규모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작게라도 시작해보면 알아요. , 이렇게 하면 벌이 잘 크는구나, 밀원 식물에는 이런 것이 있구나, 결국 건강한 숲이 필요하구나. 자연스레 생각이 커져요.



그런데 그저 좋아서 무언가 도전하기가 참 어렵잖아요.

쉽지 않죠. 나이가 들수록 이것을 했을 때 돌아올 상황이 예상되잖아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무것도 못 하죠. 아무것도 못 하니까 아무것도 안 되죠. 그에 비해 저는 비교적 해본 거겠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사실 어느 정도 맞다 생각해요. 결국 잘됐다, 안됐다는 한 차이더라고요. 타이밍이 잘 맞으면 멋진 개척자이고, 아니면 괴짜겠죠. 근데 괴짜가 되면 또 어때요.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제가 걸어온 길이 그래요. 어릴 때 커피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마시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이 됐어요. 한때 자전거에 완전히 빠져서 자전거 뒤에 커피 bar를 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드립 커피를 판 거예요. 도심 양봉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이 재미있는 게 왜 국내에 없지, 나도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에서 배우기 시작했고요. 그러다 꿀맛이 저마다 다르다는 걸 알았고, 찾아보니 런던에 허니 소믈리에 수료 과정이 있어 우게 된 거예요. 나다운 선택이 무엇좇다 보니까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 것 같아요.








서울은 벌이 살기 좋은 도시일까요?

벌의 활동 반경이 2~4km 정도 되거든요. 서울 지도를 펴놓고 어느 곳을 찍어봐도 이 활동 반경 안에 녹지대가 있어요. 산이나 작은 공원이라도요. 또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도로 화단이나 화분도 벌에게는 좋은 놀이터죠. 사람은 비게이션 따라 정비된 길을 다니니 잘 모르지만 하늘길을 다니는 벌은 이런 곳을 유영하죠.



꿀마다 맛이 다르다고요.

커피도 원산지와 종에 따라 특징이 서로 다른 것처럼 꿀도 꽃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요. 잡화꿀은 커피로 따지면 블딩한 거죠. 다만 꿀벌이 무작위로 서로 다른 꽃의 꿀을 섞은 거. 권도혁 허니 소믈리에와 함께 운영하는 ‘잇츠허니!’란 브랜드에서 소개하는 꿀 선물 세트 이름이 그래서 '포트레이트 오브 더 랜드'예요. ‘대지의 자화상’이란 뜻이죠. 이 땅의 맛을 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요.










꿀을 더 맛있게 즐기는 팁이 있다면?

우유나 버터, 치즈 같은 유제품이랑 진짜 잘 어울려요. 저는 빵 먹을 때 잼 대신 꿀을 발라 먹거든요. 노릇한 빵에 버터와 꿀을 얹어 꼭 드셔보세요. 종류에 따라 다른 소스를 얹어 먹는 것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본인에게 좋은 도시란 어떤 곳인가요?

롯데월드 같은 데 가면 많은 것이 한데 섞여 있잖아요. 나무 같은 자연, 어트션 같은 인공물, 거기다 사람들까지. 저는 그런 곳이 좋은 도시 같아요. 자연과 인공물과 사람이 막 섞여 있는 가운데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있는 . 한편으로는 제멋대로인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얼마 전에 개미를 키우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어. 보통 사람들이 저한테 “벌을 왜 키우세요?”라고 묻거든요. 저도 그한테 “개미를 왜 키우세요? 하고 물으며 한참을 대화했죠.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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