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노마드, 다양성, 라이프스타일, 로컬

걱정 없이 쉬다 가는 문방구 같은 집

또오기 스토어 대표 손원상

Text | Solhee Yoon
Photos | Seungyong Jung
Film | Jaeyong Park

2m가 훌쩍 넘는 서핑보드와 양팔을 벌린 너비보다 더 두껍게 쌓인 LP를 채운 알록달록한 인센스 상자와 차 통까지. 또오기 스토어에 들어서자 눈이 바빠진다. 문방구에 들어선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저의 휴식 거리로 채운 공간입니다.” 손원상 대표는 20년 서울살이 끝에 돌아간 고향인 부산에서 새로운 삶의 노하우를 찾았다.









또오기란 이름이 참 귀여워요.

손님들도 이름을 까먹을 수가 없다며, 잘 지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처음엔 영어로 된 멋지고 쿨해 보이는 이름을 짓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디어도 없을뿐더러 억지스럽더라고요. 그러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운영하던, 나와 동생의 아지트였던 또오기 문방구가 생각났어요. 그러고 보니 또오기란 단어가 꽤 세련된 것 같으면서도 압도적으로 촌스러운 게 재미있더라고요.








언제 처음 문을 열었나요?

5년 정도 됐어요. 인센스 숍이자 티 하우스로 시작했는데 올해 7월부터 예약제 티 하우스 겸 작업실 용도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생활 다도(casual teaism)’라는 테마를 말하는 플랫폼으로 만들려고요. 인테리어 콘셉트는 또오기 스토어 크루들의 아지트예요. 저희가 좋아하는 서핑, 음악, , 커피, , 향으로 채웠죠. 손님들이 찾아오는 오프라인 매장이지만 굳이 저희의 개인 물건을 뒤로 감추지 않았어요. 마치 아는 사람 작업실에 차 마시러 온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게 생활 다도의 개념이니까요?

꼭 엄격한 격식을 갖춰야만 다도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그렇듯 일상에서도 편안하게 다도로 쉬어가는 경험을 주고 싶어요. 하루 중 잠깐 쉬는 틈에 잎차를 즐기는 방식을 안내하는 게 이곳의 미션이에요. 나아가서는 현대인에게 삶의 선물 가게가 되고 싶어요.









또오기 스토어 인사말에서 이 대목이 참 좋았어요. “, , 주를 넘어 휴()에서 웰 라이프의 힌트를 찾아보려 합니다.” ‘라는 테마가 그토록 중요하게 다가온 계기가 있나요?

어쩌면 생의 변곡점을 지나온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에 오기 전 가평에서 노지를 임대해 캠핑장 운영 사업을 5년 정도 했어요. 사업 자체는 흥행했지만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 무렵 내몰려 나와야 했어요. 임대인이 그 사업을 직접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외국계 기업 마케팅 팀에서 일하다가 번아웃이 와서 당시 제가 제일 좋아하던 캠핑으로 탈출한 거였는데, 그조차도 스트레스로 얼룩지니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그때 저의 다른 모습을 봤어요. 운전하면서 화를 내고 길을 걷다가 다투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나중에 크게 제대로 쉬겠다고 미루기보다 자주 일상의 빈틈을 휴식으로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지나오며 휴식이란 테마를 찾은 거네요.

맞아요. 제게 너무도 절실한 것이었어요.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고 나서야 내게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그게 휴식이었어요. 그때부터 더 잘 쉬어야겠다’, ‘내가 느끼는 이 압박감을 잘 해소할 줄 알아야 앞으로 건강하게 살겠다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좋은 것을 보면 더 알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만약 마음이 이미 평화로웠다면 이것이 그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돌이켜보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건 분명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이것에 왜 이렇게 힘들어하지?’, ‘나는 무엇을 해야 만족하지?’라고 질문하고 발견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지금 푹 빠져 있는 차도 그때 만난 건가요?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을 때 남포동에 있는 한 유명한 찻집에 갔어요. 그때 다도하는 모습을 처음 봤고, 보이차란 것을 처음 마셨어요. 사실 맛보다도 그 분위기가 좋더군요.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수증기, 차를 따르는 손짓, 지푸라기를 물에 불린 듯한 향 등이 힘들 때여서 그런지 다이내믹하게 느껴졌어요. 그때 차를 본격적으로 알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동업하는 동생도 바로 차의 매력에 빠졌나요?

처음에는 좋은 거야. 일단 마셔그랬죠.(웃음) 그러다 이건 어느 지방에서 난 백차이고 저것과는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매력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티 클래스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맛을 구별하고, 서로 비교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즐거움의 힘을 아니까. 모르고 마시면 풀 우린 물밖에 안 되죠.








휴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전에는 그런 이미지가 있었어요. 휴식이라고 하면 멀리 여행을 다녀오든지 어떤 대단한 도전을 해 일상을 흔들 만한 것이라고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서울 도심의 각박함과 긴장감이 싫어 가평 숲으로 갔지만 그곳에도 스트레스받는 일은 어김없이 있더라고요. 제주도 여행이나 해외여행을 한들 잠시 환기가 될 뿐 제자리로 돌아오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오늘 하루의 틈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가 휴식할 수 있는 것들로 항상 채우자. 나중에 크게 제대로 쉬겠다고 미루기보다 자주 일상의 빈틈을 휴식으로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루의 루틴이 있다면요?

요즘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고 있어요. 새벽 4 30분에 일어나서 차를 내리고 조깅하고 파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웹사이트에서 송정 해변의 파도를 체크해요. 파도가 좋으면 보디슈트를 챙겨 입고 나가죠. 씻고 나서는 또오기 스토어로 출근해요. 차로 15분 거리인데 해안가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 타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쉬는 날에는 가급적 야외로 나가려고 해요. 등산을 하거나 다른 동네에 놀러 가죠.










다도, 등산, 서핑, 자전거 라이딩까지 안 하는 게 없네요.

어렸을 때는 한 가지 일을 전문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능숙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새로운 분야라도 스스럼없이 부딪치고 즐기는 열린 사람처럼 보이고요. 그래서 저도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저마다 휴식 방법이 다르겠지만 한 가지만 추천해준다면요?

본인이 상주하는 작업실이든 사무실이든 집이든 자신을 미소 짓게 하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가끔 손님과 대화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데, 그럴 때는 자신을 관찰하는 게 먼저라고 말씀드려요. 내가 무엇을 할 때 눈이 번쩍 뜨이고,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즐거운지 알아보기를 추천합니다.








집은 어떻게 꾸몄을지 궁금하네요.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다기가 있고, 또 제가 커피 브루잉도 좋아해서 그와 관련된 도구가 있어요. 얼마 전 라디오에서 이끼가 실내 공기 정화에 탁월한 식물이라고 들었는데, 올해는 집을 이끼로 제대로 꾸며보는 것이 가장 큰 미션입니다.








요즘 본인에게 최고의 휴식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처음으로 트레일 러닝 대회에 신청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자신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일단 도전하는 거랍니다. 한번 해보고 나면 포기하든 마니아가 되든 하겠죠. 저만의 미션 같은 걸 자꾸 만드는 편이에요. 할지 말지를 두고 오래 고민하지 않아요. 고민하는 거라면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까, 일단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싫은 건 아예 할까 말까 그런 생각도 안 들거든요. 만약 지금 속으로 고민하는 게 있다면 한번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삶의 좋은 휴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