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노마드, 로컬, 친환경, 홈데코

남한산성에 기대어 살기로 했다

고범석, 김혜윤 고범석가구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Hoon Shin
Film | Jaeyong Park

“도시에서의 삶은 너무 편리하고 빠릅니다. 이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는 자연의 속도와 생체 리듬에 맞춰 지극히 상식적인 속도로 살고 싶었어요.” 남한산성 골짜기에서 짜맞춤 가구를 만드는 고범석과 노들역 부근에서 우드카빙을 하는 김혜윤 부부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삶의 템포를 늦춰 살아보니 오히려 보고 느끼는 게 훨씬 풍요로워졌다고 말한다.








남한산성에 자리한 이 동네에는 언제 어떻게 자리를 잡았나?

(김혜윤) 2017년 동작구 본동에 살 때 공방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정한 조건이 두 가지였어요. 자연에 둘러싸여 있을 것, 서울 중심부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일 것. 파주부터 시작해 가장자리를 쭉 훑었는데 남한산성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진입로부터 한눈에 반했어요.








왜 자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나?

(고범석) 어릴 때 충북 제천에서 자랐어요. 크면서 대전으로, 서울로 집을 옮겼는데 그러면서 자연 한 갈망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생활하면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 교외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교외로 갈 때마다 힘든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더라고요. 망설일 것 없이 자연 속에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런데 사업장이니까 손님들 오는 길이 편해야 하니 서울에서 1시간 거리라는 기준을 정했고요.

(김혜윤) 그때 둘 다 직장 생활에 지쳐 있었어요.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11시에 퇴근하는 삶을 4~5년간 살다 보니 이게 맞나 싶었던 거예요. 어두울 때 출근해서 어두울 때 퇴근하는 삶이 싫었어요. 그러면 해 따라 한번 살아보자 싶어 하늘이 뻥 뚫린 곳을 찾았죠.



집도 이 근처인가요?

(고범석) 집은 하남이에요. 차로 20분 정도 걸려요.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출발하면 아침 9시에 도착하죠.








보통 이곳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

(고범석) 주문 제작 의뢰가 있을 때나 수강생 클래스가 있을 때는 분주한데 혼자 있을 때는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다음에는 뭘 만들까 고민하고 스케치하며 좀 느긋해져요. 봄이나 가을에 한가로울 때는 테라스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볕을 쬐는 걸 좋아하고요. 종일 회사에만 있을 때는 냉난방기가 켜져 있어 몰랐는데 제가 온도 변화에 예민한 사람이란 걸 이곳에 와서 알았어요.



풍경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삶이네요.

(김혜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보내는 게 처음인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는 학교와 학원 스케줄에 맞추고 대학생 때는 학기 일정에 맞추고 회사원일 때는 출퇴근 시간에 맞추며 살잖아요. 언젠가는 그 루틴을 깨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해본 거죠.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익숙해지니까 해방감이 들어요. 행복 지수도 높아졌어요.




출퇴근 시간에 맞추며 살잖아요. 언젠가는 그 루틴을 깨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해본 거죠.”




두 분은 어떻게 목공예가 업을 선택했?

(고범석) 저는 패션을 전공하고 무역 회사에서 근무했어요. 그런데 도통 회사 문화에 적응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는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목공이 어렴풋이 떠올랐어요.

(김혜윤) 그 이유를 제가 기억해요. 결혼 전 영등포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에 살 때였어요. 바 테이블이 필요해 쇼핑몰 한참 검색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동네에 MDF를 취급하는 곳이 있기에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보자 싶어서 설계를 시작했는데, 그때 제가 뭘 봤냐면요. 퇴근하고 와서는 폭삭 삭은 파김치 같았던 사람이 반짝반짝 눈에서 빛이 나는 거예요. 초등학생이 놀이터에서 놀 때의 나는 표정, 딱 그거였어요. 그래서 가구 만드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죠. 공방 이름도 제가 지어줬어요. 자신감 가지고 하라고 이름을 딱 내걸었죠.








김혜윤 목공예가 어떤 계기로 시작했어요?

(김혜윤) 고범석 대표가 퇴사하고 공방을 차릴 때까지만 해도 저는 회사원이었어요. 딸을 낳고 복직했다가 코로나19 사태 후 퇴사를 결심했죠. 아이를 낳으니 가장 갖기 어려운 것이 시간이었어요.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데 나도 나의 발전을 위한 시간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회사를 계속 다니며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것과 고범석가구를 함께 운영하며 우리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 두 가지 중 어떤 삶이 나에게 더 의미 있을지 오래 고민했고, 후자로 결정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가고 있어요. 공방에 버려지는 목재 쪼가리가 눈에 띄기에 이것들의 쓸모를 찾아주는 우드카빙을 시작했고 지금은 노들 공방에서 우드카빙 클래스를 고 있어요.










맞아요. 인생에는 선택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혜윤) 제가 싫어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선택의 순간을 외면해서 생긴 결과를 마주하는 일이. 원치 않 결과를 책임져야 하잖아요. 곧 후회하는 거죠. 그래서 어렵지만 결정해야 할 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해요.



고범석가구는 짜맞춤 가구 전문이죠?

(고범석) . 이러한 현대식 건물에 적용할 수 있는 수공예의 아름다움 중 하나가 짜맞춤 가구라고 생각해요. 손이 표현하는 만듦새는 확실히 기계에서 나오는 것과 달라요.

(김혜윤) 손으로 완성해 가는 쾌감이 있어요. 만족감이 높을뿐더러 삶의 가치관도 많이 변해요. 이렇게 조그마한 그릇 하나를 만들려면 두 달간 다듬어야 해도 그 재미와 감동을 아니까 동네 마트에서 2,000원짜리 그릇은 사고 싶지 않아요. 쉽게 사는 건 쉽게 버리더라고요. 내가 어렵사리 만든 건 못생겨도 어떻게 해서든 용도를 바꿔가면서 오래 쓰려고 하죠.








직접 물건을 만들면서 습관도 바뀌었네요.

(김혜윤) 신생아 키울 때 물티슈를 엄청 쓰거든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만든 시기가 첫아이 태어난 날부터 1년인 것 같아요. 근데 우드카빙을 시작하면서 일회용품을 안 쓰게 됐어요. 물티슈 대신 행주를 삶아 쓰죠. 자연물을 다루며 주변을 돌아보고 내 물건을 귀하게 오래 쓰는 법을 배웠어요.








유튜브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구독자 수가 28명이나 되던걸요.

(김혜윤)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요? 계획적으로 공방 홍보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초창기에 들어오는 일이 없어서 시작했어요.(웃음) 시간이 남아돌아 가구 제작기를 찍어 올렸는데 알고리즘의 마법으로 해외 팬층이 두꺼워졌죠.

(고범석) 영상 편집하고 보는 걸 원체 좋아해요. 대학생 때도 스케이트보드 하나 사서 타는 모습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게 취미였어요.

(김혜윤) 신기해요.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모를 남한산성 골짜기 우리가 좋아서 시작한 작업을 보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고 피드백을 준다는 게 놀라운 일이.








두 분에게 좋은 집이란?

(고범석) 저는 집에서 가구 배치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TV를 가운데에 둔 거실과 책장을 가운데에 둔 거실에서 보내는 일상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자기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가구를 배치한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가치관이 명확하게 서 있어야 하죠. 그리고 또 있습니다. 평생 쓰고 싶은 가구와 물건으로 채운 집이요. 우리 도시의 특성상 ‘평생 내 집’이란 개념이 없잖아요. 짧게는 2년 주기로 이사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러니 가구나 생활용품을 살 때도 다음 이사 때 새로 사지 생각으로 대충 구매해요. 그러면 내 주위가 2년짜리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평생 쓰겠다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구매한 것이 모인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만들고 싶은 작이 있다면?

(고범석) 훗날 가장 멋지게 만들고 싶은 작품은 의자예요. 유명한 건축가는 자기 건축물을 대표하는 의자가 하나씩 있잖아요. 그것처럼 고범석을 대표하는 의자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남한산성 공방을 옮길 계획도 있나요?

(김혜윤) 만약 그렇다면 공방을 더 넓는 기회가 왔을 때겠죠. 그때는 2 동으로 공간을 나누어 쓰고 싶어요. 동에는 작업실을 두고 다른 한 동에는 쇼룸과 디자인실, 접객실을 두고 싶어요. 그리고 그 옆에 우리가 고심해 골라온 목재를 보관는 넓은 창고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카빙도 그곳에서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




RELATED POSTS

PREVIOUS

쓸모있는 빈센트의 ‘아폴로니아’
공동 저자 빈센트 리

NEXT

남의 집 거실을 여행하다
남의집 프로젝트 대표 김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