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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재생, 친환경

멸종 위기 동식물로 말하는 자연적 삶

베아트리스 포셸

Text | Nari Park
Photos | Beatrice Forshall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베아트리스 포셸은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코티지 하우스 정원에 딸린 작은 스튜디오는 인터넷조차 연결되지 않는, 문명과 단절된 ‘섬’과 같다. 작업이 길게 이어지는 늦은 밤이면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보고, 날씨가 허락하는 날이면 근처 강에서 수영을 즐긴다. 자연과 일체된 순간을 경험하며 멸종 위기 동식물에 더욱 마음이 동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과 판화 작업으로 세상에 전하는 스토리텔러가 된다.








최대 200년을 사는 미국에서 가장 큰 선인장 사와로를 중심으로 올빼미, 토끼가 공생하는 모습을 담은 판화는 언뜻 아름다운 생명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옆에 적힌 글귀는 경각심을 주기 충분하다. “선인장 종의 31%가 수집가들의 밀매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다른 그림도 비슷하다. 부리가 큰 토코투칸, 황갈색 올빼미, 퀸 알렉산드라 버드윙 등 동물을 주제로 한, 예쁜 동화책이 연상되는 베아트리스 포셸Beatrice Forshall의 그림에는 그 어여쁜 생명체가 곧 사라질 거라는 뼈아픈 문구가 담겨 있다.



작가는 멸종 위기 동식물을 금속판에 새겨 넣고 인쇄하는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9살 무렵부터 야생동물 보호 관련 일에 이끌린 그녀는 ‘잊힐 운명’에 처한 생명체들의 목소리를 증폭하는 작품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그 개체들을 모은 일러스트북 [The Book of Vanishing Species: Illustrated Live] 출간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을 보내고 있다. 영국 데번에 자리한, 인터넷조차 연결되지 않는 코티지 하우스의 삶을 담았다.








멸종 위기 동물을 그림에 담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떠한 계기로 화폭을 마주하는 삶을 살게 되었나요?

가족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화가인 어머니와 사진을 찍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거든요. 부모님이 식탁이나 정원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어머니는 때로 요리와 그림 작업을 동시에 하기도 했죠.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야생동물 보호 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9살 때 동물 보호 단체 ‘디 애니멀 클럽The Animal Club’ 활동을 시작했어요. 친구 몇 명과 격주로 모여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그림과 종이 조각품을 만들어 지역 마켓에 판매했고, 그 수익금을 세계 자연 기금(World Wide Fund)에 기부했어요. 그 일을 지금까지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은 평화로운 작업이고 좋아하지만, 야생동물 보호는 그 이상으로 저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과 같아요. 예술이 자연과 환경보호 운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다양한 예술 장르 중에서도 판화 기법인 ‘드라이 포인트 인그레이빙’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드라이 포인트dry point engraving는 판면에 예리한 기구로 그림을 새기는 조각 요판 기법이에요. 작업 과정과 그 속에서 발현되는 텍스처가 흥미로웠어요. 노동 집약적이지만 드로잉, 판화, 프린트, 채색 등 각 단계마다 텍스처가 다르고 금속, 종이, 잉크 등 다양한 재료를 대하는 것도 흥미롭죠. 작업 마무리 단계에서는 항상 예상치 못한 놀라운 요소가 발생하는데, 결국 그것이 좋아서 이 작업을 지속한다고 생각해요.








코알라, 인도 코끼리, 딱정벌레 등 다양한 동식물을 그렸어요. 그것을 주제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그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동물이 당면한 취약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동물은 인간에게 직접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대변자로서 동물을 그리고 글로 쓰고 싶었죠.



자신만의 해석과 화풍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을 텐데요. 보태니컬 아트나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다른 작업으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스타일은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을 통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은 과학적인 정확성이 목적이 아니라, 제가 대상으로 하는 생명체의 정신, 인간이 잃어버릴 위험이 있는 멸종 위기 개체를 포착하는 데 있어요.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밤에 별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근 출간한 일러스트북은 그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작은 플랑크톤부터 거대한 세쿼이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에 대한 69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공기, , 토양, 사피엔스 등 네 챕터로 나눠 지구상의 생명체가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알리고 싶었어요. 종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존하는지, 진화하는 데 수백만 년이 걸린 그 섬세하고 복잡하며 자비로운 생명의 그물망을 우리가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관한 기록이기도 해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자연 개체수가 줄어들면 결국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될 거예요. 그것은 각자가 매일 내리는 선택과 그에 따른 영향에서 비롯되고요. 그렇지만 만약 우리의 선택들이 달라진다면 자연은 회복될 수 있겠죠. 이번 책은 그런 현상과 제 바람을 담은 그림책이라 할 수 있어요.








하나의 생명체가 그림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나요? 각 생명체에 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해요.

개체를 선택하고 그리는 기준은 무엇보다 그 종이 품고 있는 이야기예요.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얼마나 다르며 비슷한지를 생각해보는 거죠. 최근 범고래가 보름달이나 오로라를 볼 때 노랫 소리의 음역대를 바꾼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흥미로운 생명체의 삶이 그들에 대해 그리고, 글을 쓰고 싶게 만들죠. 2017년 케임브리지 보존 계획(Cambridge Conservation Initiative)에서 아티스트 레지던트과정을 마쳤어요.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원, 정책 입안자 및 실무자들과 협업하는 가운데 종의 보존에 자신의 경력을 바치는 이들을 만났죠. 당시 제 작업의 주요 주제인 ‘멸종 위기 동물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 과정을 겪으며 그림으로 그 동물들의 모습을 담고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동물을 그리는 작가로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작업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황무지로 둘러싸인 영국 데번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지난해 책 작업을 하며 데번 지방의 작은 계곡에서 혼자 생활했어요.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실에서 일할 때는 집 밖을 나가는 일이 드물죠. 그럴 때면 그 안에서 굉장한 평화를 느낀달까요. 코티지 하우스에 딸린 정원 안에 인쇄기를 설치한 작은 스튜디오가 있는데, 종종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다 밖을 나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 그보다 행복한 순간이 없어요. 작업실 근처 숲에 사는 황갈색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정말 좋죠. 근처에 제가 수영을 즐기는 강도 있어요.



코티지 하우스에 딸린 스튜디오라니 듣기만 해도 서정적인 시골 풍경이 떠오르네요. 혹시 집이나 작업실을 선택할 때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은둔, 그리고 그에 따르는 평화를 좋아해요. 그것은 바람이나 비에 덜거덕거리는 양철 지붕 같은 걸 의미하기도 하죠. 저는 자연과 야생동물 가까이에서 지내려고 노력해요.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는 이 매력적인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는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았어요.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언제인가요?

하루의 ‘두 끝’을 좋아해요. 아침에는 제 앞에 펼쳐질 시간을 떠올리며 미지의 시간을 그려보고, 밤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작업하는 것을 즐기죠. 판화 작업을 하며 음악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자주 듣다 세상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해요.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프랑스 남서부에서 나고 자랐어요. 나에게 집은 주변 언덕의 참나무와 밤나무 숲, 황톳빛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에요. 마을 교회의 수탉 울음소리와 종소리, 봄날 뻐꾸기 소리, 어머니가 그림 그리는 소리, 장화를 신고 마른 나뭇잎 위를 걷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이 떠올라요. 아버지의 양털 점퍼, 내 발밑에서 잠든 강아지 콜리, 나무 연기와 축축한 무화가 잎 냄새가 연상되기도 하고요. 집은 유년의 모든 기억이 중첩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동물과 자연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업은 당신의 생활 방식과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듯해요.

개인으로서 제가 매일 선택하는 것, 이를테면 무엇을 먹고 소비하며 어떤 방식으로 여행하느냐와 같은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팬데믹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당신의 작품을 추천해주세요.

제 스튜디오나 웹사이트는 물론 여러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제 신간에 두루미의 ‘구애 춤(courtship dance)’을 담은 그림이 있어요. 긴 팬데믹 시기를 거쳐오면서 지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웃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꿈꾸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밤에 별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수영할 수 있는 야생의 어딘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 작업이 야생동물 보호에 많은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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