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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반려동물, 재생, 친환경

바다 쓰레기가 가득한 금속공예가의 보물 공작소

이혜선 금속공예가

Text | Solhee Yoon
Photos | Sung Veen Kim
Film | Taemin Son

이 집 현관문을 거치기 전에는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저 해안가를 굴러다니는 쓰레기였을 뿐인데 며칠 뒤면 번듯한 광을 내며 전시장 전시대에서 찬란한 조명을 받는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낯익은 주택가의 평범한 집 안에서 벌어지는 비범한 작업의 세계로 들어가봤다.








걸어오면서 보니까 동네 상점 간판이 다들 ‘도래울’로 시작하던데, 무슨 뜻이에요?

마을 이름이에요. 원래는 ‘돌여울’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도래울’이 되었대요. 창릉천과 도라산이 만나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더라고요.



작업실 창밖으로 바로 공원이 보이네요?

너무 좋죠? 저도 공원이 가까운 게 이렇게 좋은 일인 줄 몰랐어요. 2018 2월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냥 ‘공원이 가깝네’ 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공원을 하루라도 안 보고는, 안 걷고는 못 살아요. 작업실에서 웅크리고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이 지금 내가 어느 계절에 있는지 알려줘요. 또 저 멀리 북한산이 있는데 봉우리가 안 보이면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겠거니 짐작하고요.








창문이 재미있는 매체 같네요.

날씨가 맑고 쨍하면 하루가 굉장히 잘 풀릴 것 같고, 식물도 잘 자랄 것 같아요. ‘오늘 쑥쑥 크겠네’ 하며 바깥으로 화분을 옮기고요.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오늘 로또 산책은 어쩌지?’ 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죠.








반려견 이름이 로또인가 봐요. 같이 출퇴근하나요?

. 까만 털이 아름다운 아이예요. 작업실이 막 생겼을 때 친구가 이 아이의 새 가족을 찾고 있어서 얼른 데려왔어요. 처음에는 부모님이 개를 탐탁지 않아 해서 작업실에서 살았고요. 로또의 장점과 사랑스러움을 앞세워 몇 년간 설득한 끝에 이제는 집에서 살면서 작업실로 같이 출퇴근해요.(웃음) 부모님도 로또를 둘째 딸처럼 여기며 잔소리도 하고 예뻐하고 그러세요. “으휴, 왜 이렇게 털이 빠져?” 하고는 금방 “자, 이거 먹어용” 하시죠.



작업실과 집은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1분 거리도 안 돼요. 여기 바로 위층에 살거든요.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로또와 공원 산책을 하고 11시쯤 출근하는 게 저의 오랜 루틴이에요. 작업실에 와서는 커피를 내리고 화분에 물을 주고 주변 정리를 한 다음 작업대에 앉아요. 제 작업대 뒤로 로또의 작은 집이 있어요. 아무래도 아늑하고 조그만 공간을 좋아하더라고요.










바다 쓰레기를 작품 재료로 쓴 지 어느덧 5~6년 됐지요. 변치 않은 생각이 있다면 뭘까요?

바다 쓰레기도 결국 자연에서 왔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래서 2018년 첫 개인전을 열 때에는 작품을 들고 갤러리가 아닌 해변 모래사장에서 작품 사진을 찍었고, 요즘에는 쓰레기를 줍기 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요. 그런 모습이 참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바다가, 해변이 이 쓰레기를 제게 보내고 또 품어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기준으로 재료를 수집하나요?

페트병처럼 쉽게 형태가 변하거나 말랑한 것은 재가공이 어려워 분리수거장행이고, 저는 단단하면서도 형태가 있는 것을 모아요. 이 쓰레기 또한 원 앤드 온리예요. 제가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두 귀히 여깁니다. 특별한 것이라면 따개비가 붙어 있는 쓰레기랄까요. 따개비를 처음 봤을 때는 징그럽고 흉해 모두 탈락시켰는데 이제는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시계로 여겨요. 이 물체가 바깥에서 산 시간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해변마다 자주 보이는 쓰레기 종류가 다른가요?

‘여기에는 이러한 특정 유형만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고, 양식장이든 해수욕장이든 그 일대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활동에 따라 쓰레기 종류가 다릅니다. 자주 보이는 것으로는 어업 도구,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소꿉이 있고요. 저는 남해는 아직 못 가봤고 동해, 서해, 제주도만 가봤어요. 그중 제주도가 가장 마음이 쓰이는데 제주도가 이 주제를 시작한 계기가 된 것도 이유겠지요. 쓰레기를 줍는 활동가가 많은 편인데도 바다 쓰레기 문제는 정말 심각해요. 더 나은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가구가 쌓이엄마는 누군가에게 필요할지 모를 쓰임을 찾아내려고 했어요.”




바다 쓰레기는 이곳으로 와서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비린 냄새를 제거하는 일이 1순위라 물로 씻어 옥상에서 말리는 게 첫 단계입니다. 부피가 작고 색이나 형태가 특이한 재료는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 상태를 자주 확인하고요. 부피가 큰 재료는 따로 빼둬요. 가끔 “색은 어떻게 입혀요?”라고 묻는 분이 계신데 저는 전혀 색칠하지 않아요. 원재료의 색상이 눈에 잘 띄도록 아름다운 조화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편입니다.








‘줍는다’는 행위는 ‘새 쓰임을 발견한다’는 의미 같아요. 이 작업을 하기 전에도 그렇게 잘 줍는 사람이었나요?

.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엄마 영향이 커요. 엄마는 늘 두리번거리며 새 쓰임을 발견하는 사람이었어요.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아파트에 살았는데, 분리수거일이나 이삿날이면 단지 한쪽에 가구가 쌓이잖아요. 그러면 엄마는 꼭 가까이 가서 훑어보셨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필요하겠다는 쓰임을 찾아내면 그 사람한테 전화하죠. 직접 용달차를 불러 가구를 보낸 적도 있어요. 그냥 엄마가 이런 일을 좋아하나 보다 했는데 이제는 제가 그러고 있어요. 저는 금속공예 기술이 있으니까 엄마보다는 여러 면에서 업그레이드됐죠.(웃음)



그런 버려진 물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여기를 조금만 줄이면 우리 집 어디에 꼭 맞겠다’, 아니면 ‘색을 조금 벗겨내면 우리 집에 잘 어울리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응접실에 있는 의자가 딱 후자의 경우였어요. 형태는 멀쩡한데 핑크 페인트로 뒤덮인 걸 보니 딱 전 주인이 유치하다고 생각해 버렸구나 싶더라고요. 그걸 작업실로 가져와 핑크 페인트를 갈아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레 빈티지한 멋이 생겼죠.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얼마 전에 집에 불이 났어요. 그날도 로또와 산책하고 오다가 쓸 만한 물건을 하나 주워 기분 좋게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집 앞에 소방차가 늘어서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고 그을린 물건만 추스르면 되는 사고였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작업실에서 두 달을 살며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집보다 더 오래 보내는 이곳, 이제는 내 집이라고 생각할 정도인데 약간 어색하더라고요. 무엇 때문일까 곰곰 생각해봤더니 결론은, 집이란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자기 전까지 거실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요. 그러면서 서로의 하루를 나누죠.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로또가 이러저러했어, 그러면 엄마와 아빠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요. 그 시간이 집 같은 집을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어요.








작업실을 위해 꼭 챙기는 생활 습관이 있다면요?

청소와 분리수거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쓰는 공유 작업실이라 청소 당번이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건 제 몫이란 생각으로 싱크대 정리, 화장실 정리 등은 제가 한 번 더 하려고 해요. 약간의 책임 의식이랄까요.








2023년에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수퍼빈’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쓰레기가 돈이고 재활용이 놀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기업이에요. 수퍼빈이 최근 재생 플라스틱 플레이크 소재화 공장 아이엠팩토리를 지었는데, 저는 그곳 휴게 공간에 들어갈 테이블 램프 작업을 한창 하고 있어요. 그리고 5월에 열리는 공예주간 그룹 전시와 가능하다면 청주공예비엔날레나 공예 공모전에 참여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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