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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두 마리와 생활하는 벨기에 사진가

포토그래퍼 미커 페르베일런

Text | Nari Park
Photos | Mieke Verbijlen, Adriaan Delsaerdt and Lynn Kasztanovics

마흔을 목전에 둔 사진가 미커 페르베일런 역시 테라스와 따스한 볕을 품은 작은 아파트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생활한다. 스페인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아파르타멘토>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아티스트의 사적 공간과 삶의 단면을 특유의 따뜻한 톤으로 잡아낸 작업을 선보인다. 누군가의 삶이 담긴 공간과 인물의 일과를 꾸밈없이 포착해내는 벨기에 사진가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새롭고 실험적인 일을 하는 창작자의 공간을 엿보는 일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 스페인 인테리어 잡지 <아파르타멘토Apartamento>에는 특유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시선으로 촬영한 전 세계 아티스트의 집과 작업실이 담겨 있어 보는 맛이 남다르다. 이 잡지와 협업 중인 벨기에 출신 사진가 미커 페르베일런Mieke Verbijlen은 아파트라는 도시의 보편화된 주거 공간에서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아티스트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그녀는 생각지 못한 공간의 단면에 초점을 맞추거나 전형성을 파괴한 구도를 선보이며 익숙한 공간을 새로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뛰어나다. 인터뷰이의 실제 생활을 담는 것을 좋아해 촬영 전 청소나 정리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뭔가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과 설렘이 있다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물을 낸다’고 믿는 그녀는, 그만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도 힘쓴다.








다른 사람의 공간과 그 속의 오브제, 누군가의 삶의 단면을 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진가가 되기 전에는 어떠한 삶을 살았나요?

지금은 ‘아름다운 것’에 완전히 현혹된 삶을 살고 있어요. 다른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물의 미학적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대학 졸업 후 사진 관련 직업을 찾지 못했을 때 친구 베로닉 빌럼스Veronik Willems와 제 이름을 딴 ‘미커 빌럼스Mieke Willems’라는 자그마한 상점을 열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판매했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상점을 운영하는 게 힘들어 결국 문을 닫았지만요. 마음이 갈팡질팡하던 차에 친구가 제게 다시 사진을 찍어보라고 조언했죠. 제가 늘 사진 찍기를 갈망한다는 걸 곁에서 지내며 알았으니까요. 지인의 집을 스튜디오 삼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웹사이트를 오픈한 뒤 촬영 일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누군가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하는 것이 부끄러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어요. 앤트워프에 있는 극장 박스오피스에서 일하면서 달라졌죠. 그때 배우와 코미디언들의 프로필 촬영 주문을 받으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됐어요.





Inès van den Kieboom, De Standaard Weekblad, december 2022




다양한 예술 장르 가운데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에 입학할 당시 저는 고작 18세였고 사진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럼에도 제가 사진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죠. 주변에 영감을 주거나 무언가 아름답고 창의적인 것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것이 좋았어요. 동일한 피사체를 촬영해도 그 결과물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 사진가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보이는지가 결정되니까요.



유년 시절 어떠한 아이였나요?

작은 마을에서 자란, 모험심이 강하지 않은 조용한 아이였어요. 밖에 나가기보단 집에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죠. 10대에 접어들어서는 너바나, 소닉 유스, 비틀스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18세가 되면서 사진은 제가 유일하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어요.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저는 앤트워프 아카데미(Academy of Antwerp)에 진학하게 되었죠.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Inès van den Kieboom, De Standaard Weekblad, december 2022




현재는 <아파르타멘토> 같은 인테리어 잡지에 다른 사람의 공간과 인물을 특유의 따뜻하고 솔직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어요. 사진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종종 사람들은 제가 특정한 일만 골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즐기는 편이에요. 단지 제 스타일대로 일할 뿐이죠. 아렌베르크 안트베르펜Arenberg Antwerpen 극장의 포트레이트 시리즈를 계속 작업하고 있고, 벨기에 패션 레이블 뤼 블랑슈Rue Blanche 촬영도 돕고 있어요. 내일은 작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셰프 하다스Hadas의 스타일링 작업에 참여해요. 저는 무언가 엄격하게 룰을 정하기보다 자연스러운 작업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일이 없을 땐 주로 여행을 다니고 집에서 이것저것 몰두하기도 해요. 지난 몇 년간 휴가지에서는 자연 풍경을 즐겨 촬영했어요. 또 저는 유대인 카니발인 푸림Purim을 특히 좋아하는데 일 년 중 손꼽는 축제예요. 아이들의 특별한 코스튬이 너무 근사하거든요.




피사체에 강압적이거나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요.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그런 데에서 파생되는 것 같아요.”




공간 속 인물을 최대한 자연스레 담아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나요?

’집 안의 누군가’를 카메라에 담는 일은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빛이 가장 중요해요. 채광이 충분한 공간에서 촬영했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늘 일기예보를 살펴보죠. 인물이 촬영 자체를 쉽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도 중요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커피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인터뷰이가 바쁜 경우에는 실제 업무를 보도록 하면서 그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해요. 공간을 담는 경우에는 공간을 깔끔하게 치우거나 스타일링하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것 속에서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편이에요. 잔뜩 쌓인 세탁물이나 식탁에 가득한 물건 속에서 아름다운 색감을 발견하곤 하죠..



당신의 사진이 밝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같은 연출 때문일까요?

촬영할 때 저라는 사람의 작업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요. 아주 작은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피사체에 강압적이거나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요.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그런 데에서 파생되는 것 같아요. 제게는 피사체를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죠. 인터뷰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집이란 공간은 최고의 장소예요.








사진에서 특유의 거칠면서도 따뜻한 색감이 느껴지는데 즐겨 사용하는 카메라는 무엇인가요?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올림푸스Olympus OM-1 중고 수동 카메라를 구입해 작업했어요. 2년 전 고장 나서 동일한 제품을 다시 구입했는데 그만큼 저와 합이 잘 맞는 기종이에요. 가끔 친구의 핫셀블라드Hasselblad를 빌려 쓰기도 하는데 손이 빠르지 않은 저한테는 영 익숙지 않아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종종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하는데 후지 파인픽스 X100을 즐겨 써요. 전체적으로 빛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담는 데에는 아날로그 카메라를 선호해요. 디지털 기기보다는 조금 덜 날카롭고 과도하게 선명하지 않은 게 인간의 눈과 좀 더 비슷하다고 할까요.



벨기에에서도 패션과 창의적인 것으로 가득한 도시로 알려진 앤트워프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이곳에는 크리에이티브 직군이 모여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패션 아카데미는 물론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멋진 박물관과 크고 작은 갤러리가 많죠. 어디서나 작업의 영감을 받을 수 있을 만큼요. 책과 영화, 거리에서 눈길을 끄는 무언가일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 웹사이트, 잡지, , 사물 등 모든 것에서 가능하죠. 친구들과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확장되기도 해요.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뮤지엄을 방문하거나 예술가의 작업실에 자주 들르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창의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나요?

가급적 매일 전시를 보러 가려고 해요. 그러나 항상 모든 것을 체크하지는 않아요. 고민 끝에 원하는 전시를 선택하죠. 스스로 얼마나 창의적인 삶을 사느냐는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진가가 거주하는 앤트워프 아파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여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는데, 채광이 아름답고 나무 바닥도 근사하고 구조가 멋진 집이에요. 작은 테라스 공간은 정말 소중하죠. 밖에 앉아 책을 읽거나 식사를 하고 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거든요.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 두 마리가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첫 번째 고양이 미니에Minnie는 거의 10살이 되었어요. 태어난 지 8주 되었을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저와 함께 지냈죠. 지난 여름에 우연히 두 번째 고양이 테디Teddy를 알게 됐고 결국 가족이 되었어요. 미니에한테 생후 10개월 남짓한 테디를 소개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나이가 많은 미니에는 하루 중 대부분을 자고 싶어 하지만 테디는 호기심이 많고 장난기가 넘치거든요. 그 둘을 중재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제 삶에서 큰 부분이에요.










줄무늬 꽃병, 금속으로 만든 빈티지 조명, 벽에 아무렇게나 붙인 종이 그림 등 일상 속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이 눈에 들어와요.

대부분은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선물받은 거예요. 친구들이 그려준 그림도 무척 아끼는 소품이죠. 어수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것을 소비하는 편은 아니에요. 고가의 물건도 거의 없고요. 가구는 대부분 중고 또는 수작업으로 제작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남자 친구가 만들어준 커피 테이블과 책장을 가장 좋아해요. 침대도 친구가 만들어준 거예요.



집에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창문에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볼 때. 침대에 누워 무릎에 고양이를 앉혀놓고 공상하는 순간도 좋아해요.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고, 소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순간 특별한 기분을 느끼죠.








집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 자신이자 온전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꿈꾸던 삶과 현재의 모습은 얼마나 근접해 있나요?

어릴 적 꿈꾸던 삶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요.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꿈을 꿉니다. 고양이와 함께 집에 머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많은 여행, 모험을 원해요. 일상 속에서 늘 긴장을 유지하는 것, 항상 그 좋은 느낌을 이어가고 싶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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