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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재생

어린이 동심을 구하는 할아버지 히어로

김종일 키니스장난감병원 이사장

Text | Solhee Yoon
Photos | Ken Pyun
Film | Taemin Son

키니스장난감병원 문 앞, 택배가 수북이 쌓여 있다. 내용물은 뽀로로, 로보카폴리, 콩순이, 헬로카봇 등 어린이들의 스타 일색이다. 여기에 작은 메모가 붙어 있다. “소리가 나오지 않아 진료 요청합니다.” “불이 안 들어오는데 치료가 가능할까요?” 병원을 소개하며 김종일 이사장은 말했다. “이게 우스운 일이 아니에요. 장난감 고치는 일은 말하자면 한 가정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일이죠. 아이고, 전화 왔네. 잠시만요. 예, 장난감 병원입니다.”








어느새 운영한 지 12년 됐다고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도 이렇게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나요?

아니죠, 잠잠했죠.(웃음)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홍보할 방법도 몰랐고요. 그래서 그때는 외려 장난감 회사에 연락해보거나 장난감이 필요한 어린이 단체나 시설에 장난감을 기부하며 저희 이름을 알음알음 알렸어요. 이름이 크게 보도된 적은, 2015년 인천 남구청에 1,000여 개의 장난감을 기부했던 일 정도랄까요. 꾸준히 활동하니까 서서히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현재 몇 개 지점을 운영하나요?

의사는 12명 안팎이고 인천에 2, 수원에 1개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다달이 행정복지센터 같은 곳에 외래 출장을 나가요. 요즘에는 출강 문의도 많아요. 자기 동네에도 이런 것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고, 와서 운영 방법이나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하죠.









네이버 카페 ‘키니스장난감병원’ 진료 예약 게시판을 보면 전국에서 도착한 문의 접수가 문전성시를 이루던걸요. 일을 제대로 발굴하셨어요.

이전에 인하공업전문대학 교수를 했어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데 후배가 ‘이거 한번 해보세요’ 하더라고요. ‘옳다, 좋다!’ 했지요. 공학하는 사람들 문제가 뭐냐면, 답이 하나만 있는 줄 알아요. 그래서 뒤도 옆도 안 보고 이거 해야겠다고 했죠.(웃음) 애들이 있는 한 장난감이 있잖아요. 이건 진짜 오래갈 수 있는 일이겠다 싶었죠. 나야 돌멩이나 나뭇가지 가지고 놀았지만.



이만큼 운영해보니까 어때요?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게 시작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요. 장난감마다 사연이 있고, 진료 접수하는 부모들 마음도 다 다르고. 그런 걸 보면서 이 일을 하기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똑같이 생긴 장난감이라고 모두 똑같은 건 아니군요.

가끔 ‘뭘 이런 것도 보내나’ 싶을 만큼 어른들 눈에는 별것 아닌 장난감을 보내기도 해요. 그런 건 중고로 사는 게 택배비보다 싸요. 그렇다면 그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아이한테는 이 장난감이 엄청 소중하니까 부모가 고쳐주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장난감이란 아이가 생애 최초로 갖는 ‘내 것’이고 그 ‘내 것’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과정이 담겨 있는 거죠.



, 그렇다면 여기 선생님들은 어린이들에게 최고 명의이겠습니다.

“장난감이 아프니까 잠시 병원에 다녀오는 거야”라고 하면 끝까지 손에서 못 놓던 아이도 순순히 내놓는대요. 요즘 애들은 아프면 병원 가야 한다는 걸 다 아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장난감을 고친다는 건 그 사용 기간을 연장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조그마한 꿈을 지켜주는 일이에요. 이건 저도 시작할 때는 몰랐어요.










혹시 요즘 유행하는 장난감 트렌드도 보이나요?

캐릭터 이런 건 잘 모르고 연령대에 따라서 장난감 종류가 나뉘어요. 누워 있을 때, 기어 다닐 때, 서고 걸어 다닐 때, 좋아하는 캐릭터가 생겼을 때…. 장난감을 보면 대충 ‘이 아이는 지금 이 시기를 보내고 있겠구나’ 상상할 수 있죠. 고치기 까다로운 것도 있어요. 건반류 장난감은 일일이 건반을 다 떼내야 해서 골치가 조금 아파요.(웃음)



대학교수로 일할 때와 장난감 병원 의사로 일할 때 느끼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교수 시절에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유용한 지식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어요. 근데 이 일은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사명감이고 봉사에 가깝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하는 일이니까.



본인이 보내는 택배비를 제외하고 수리비, 받는 택배비 등이 무료라고 들었어요. 키니스장난감병원 자체가 비영리 민간단체라고요.

이게 누구에게나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봉사의 의미는 자기 시간이나 자기 돈을 조금 들여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약속했지. 수리비와 우리가 보내는 택배비, 그리고 여기 의사 선생님들 점심비를 병원에서 내겠다고. 임대료, 관리비, 운영비 등으로 돈이 계속 들지만, 후원을 받고 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더 잘 고치기 위해 의사 선생님들끼리 토의도 하나요?

6개월간 꾸준히 활동한 의사 선생님은 전문가라고 해서 우리끼리 ‘박사님’이라 불러요. 이제는 스스로 수리 장비까지 만드는 수준이죠. 아시겠지만 우리는 정식 의사가 아니잖아요. 자기 손으로 제 기능을 되찾아줄 때의 그 기쁨, 그건 정말 본인만 아는 거거든요.



정년퇴직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준 셈이네요.

그럼요.(웃음) 그런데 정년이 무슨 뜻인 줄 알아요?



직장을 그만둔다?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하루 사이에 내가 갈 곳이 사라지는 거예요. 분명 어제는 그 방에 가서 일했는데 이제는 못 들어가는 거야. 얼마나 큰 변화예요. 그게 좋은 사람도 있고 두려운 사람도 있겠죠. 사람마다 제각각 사연이 다르니까. 나는 더 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의 창업, 취업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두 번째, 세 번째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다행히 잘 찾았고요. 다른 분들도 그런 일을 잘 만들길 바라죠.




2의 창업, 취업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두 번째, 세 번째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이 일을 하면서 좋은 것은 뭔가요?

저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있는 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우리 나이가 되면 외부 자극이 적어지니까 덜 움직이게 되고, 그러면 치매도 걱정이거든. 근데 이 일을 하면서 손과 머리를 계속 쓰니까 좋죠. 여기 의사 선생님 중에 70살 아래는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그래요. 우리 치매를 잘 늦추고 있는 거라고. 또 이 장난감 병원의 특징이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거예요. 특히나 젊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반가워요. 이 일이 나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좋은 의미가 훨씬 커요.








봉사하는 마음을 말씀하셨잖아요. 그런 마음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돌아보면 이 세상에서 내가 참 많은 걸 받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된 종교인은 아니지만 받은 걸 좀 갚고 가야겠다 그런 마음이 있어요. 내가 65학번이에요. 우리 집이 9남매인데 운이 좋게 대학까지 갔고 졸업할 때가 되니까 일할 곳이 넘치던 시대였죠. 나라 전체가 산업화 열풍이라 철강, 정유, 조선, 기계 등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니까. 월급 반년 치 모으면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어요. 인천에 신혼집을 구했는데 당시 13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100만 원에 샀던 것 같아요. 물론 나도 20~30대에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았지, 남을 위해 살았겠어요. 이제 그럴 때가 됐으니까 하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는 장난감이 없어서 못 노는 아이들이 없으면 좋겠어요. 다른 말로 하면 ‘폐기되는 장난감을 줄이고 싶다, 그것들을 고쳐서 장난감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장난감이 순환하는 구조가 생기면 좋겠다’ 이런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데가 인천만으로는 부족해요.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 나름 이렇게 큰 도시만이라도 장난감 병원이 생기면 좋겠어요. 저희가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서 전국에 강의를 하러 다니는 이유예요.










더불어 자원도 아낄 수 있겠네요.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을 버릴 때도 잘 버릴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어요. 색깔별로 잘 구별해 버리기만 해도 재활용률이 훨씬 높아진단 말이에요. 물론 이런 일은 저희 같은 작은 단체에서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니까 문제죠. 무리한 꿈인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생각도 안 하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이만큼 운영해보니까 보이는 것이고. 만일 이 이야기를 듣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같이 해도 좋겠죠.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이 아직 많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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