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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재생, 프리미엄

만인의 거실 된 청파동 100년 고택

이준호 킷테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Sung Veen Kim
Film | Taemin Son

"저희 외갓집이었어요. 매주 사촌들과 모여 만화책 보고, 가끔은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 불을 피워 하루 종일 국을 끓여 먹었어요. 이제는 이 집이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길 바랍니다.” 이준호 대표는 그의 어머니와 이모가 자라고 자신이 뛰놀았던 울타리 같은 집을 카페로 바꾸어 이웃과 손님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담장은 낮아졌고 실내는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으로 채워졌다.








손님들이 현관문을 들어서며 다들 저처럼 놀라겠죠?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저도 “우와!” 하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이웃 분들도 많이 오셔서 이 집에 얽힌 인연을 들려주셨어요. 저희 외할아버지를 기억하시는 분도 많고, 어릴 적 이 집에 와서 놀기도 했다고 하세요. 노란색 외장 때문에 이 집을 ‘노란 집’으로 부르는 분이 많았는데, 저희 가족이 따로 도장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 색이었다고 해요.



카페 이름 ‘킷테’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일본어로 ‘기테 구다사이てください’가 ‘와주세요’란 말이거든요. 이 집 내부는 전형적인 일본식 다다미 구조인데 밖에서 볼 때는 서양식 구조인 거예요. 그래서 집의 속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에 고민 끝에 킷테라고 했어.










언제 처음 카페 문을 열었나요?

2022 12월이에요. 이제 9개월 됐네요. 이 집은 1930년에 건축 회사를 운영하던 일본인이 지은 거예요. 리모델링 당시 지붕 구조를 교체할 때 나온 상량문에서 확인됐어요. 1945년 광복 이후 적의 재산이라 하여 적산 가옥으로 분류되고 곧 민간에 불하拂下, 즉 매각했어요. 외할아버지는 1960년에 이 집을 인수하셨어요. 외증조할머니부터 제 조카까지 5대가 이 집을 거쳤죠. 리모델링은 2017 11월에 시작해 2019 6월에 마쳤고요.



생김새가 독특한 집이에요. 어떤 특징이 있나요?

1930년이면 일제강점기 중기에 해당하거든요. 일본인도 우리나라 기후가 일본과는 다르다는 걸 충분히 인식했을 때라, 전반적으로 다다미 구조이지만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부분적으로 우리나라 전통 방식의 구들방을 도입했던 것 같아요. 박공지붕, 2개의 현관문, 응접실 등 서양식 건축 요소도 혼합됐는데, 이를 보고 당시 주택 유행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라고 전문가들이 말하더군요. 이렇게 일식과 서양식이 혼합된 주택을 화양절충식 주택이라고 한대요.








리모델링 원칙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신축과 달리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을 텐데요.

두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기보다는 원형을 보존하자. 두 번째는 안전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보강하자. 세월이 지나면서 기울어진 부분의 수평을 맞추며 구조와 단열을 충분히 강화했어요.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배운 적이 있나요? 아니라면 이런 전문적 정보를 수용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저는 경영학과를 나왔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학술적 건축의 전문가는 아니죠. 그런데 저희 가족이 살았던 집 이야기라 흥미로웠어요. 살면서 몰랐던 이야기가 현관, 바닥, , 하물며 창틀에도 스며 있더군요. 집의 기록이란 게 단순히 그 집에 사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이야기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 집을 카페로 개방한 이후, 리모델링에 참여하신 분들이 집에 관한 전시를 열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찬성했어요.




집의 기록이란 게 단순히 그 집에 사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이야기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난 8월에 열린 <나이테>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건축 설계를 해준 에이코랩 정이삭 소장을 비롯해 시공 관리를 맡은 지연순 소장, 목조 자문의 조재량 대목, 리모델링 과정을 기록한 노경 사진가, 양은혜 연구자 등이 작가로 나서서 이 집에 관한 역사와 건축적 의의를 보여줬어요. 전시 관람객을 대상으로 집 투어도 진행했는데, 투어 신청 링크를 오픈하고 며칠 만에 신청자 수가 100명을 넘었죠.








그 시간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이야기도 있나요

. 그중 인상적이었던 게 건축물에 사용한 스크래치 타일 장식을 보고 한 건축학부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예요. 이 스크래치 타일은 1920년대 초기부터 일본에서 유행한 자재라고 해요. 당시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일본 제국호텔 재건축에 사용하면서 일본에 처음 알려졌고, 한국으로 건너와 1930년에 이 집을 지을 때 사용한 것 같다고 해요. 미국에서 일본, 그리고 용산의 청파동까지, 이 타일이 여기까지 온 경로를 보면 신기하죠. 모르고 보면 그냥 타일이지만 알고 보면 시대상이 묻어나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 집에 관한 추억이 많겠어요. 어릴 때 자주 놀러 왔나요?

외가가 대가족이에요. 저희 집도, 이모네 집도 다 이 근처여서 주말마다 이 집에 모였어요. 밥도 먹고 김장도 하고, 옛날에는 저기 마당의 소나무 자리에 아궁이가 있어서 어느 날은 마장동에서 소 머리를 통째로 사 와서 하루 종일 국을 끓이기도 했고요. 저녁을 먹고 나서는 사촌들과 지금 커피 바 자리인 작은 방에 모여 TV 보고 만화책 보고 그랬어요.










그토록 추억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보존에 뜻이 모였던 걸까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 가족 회의를 했어요. 물론 ‘헐고 새로 짓자’,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팔자’는 의견도 나왔죠. 그러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 언젠가는 그렇게 하게 되더라도 당분간은 지켜서 써보자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결론 내린 이유는 뭘까요?

5대째 가족의 기억과 흔적이 담겨 있는 공간이니까요. 힘닿는 데까지 보존하자는 게 가족 모두 수긍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요.










그렇다면 가족이 살던 집을 외부인이 사용하는 카페로 바꾼다고 했을 때 서운함은 없었나요?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역설적이지만 건물을 오래 유지하려면 사람이 계속 드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사람이 오가면 당장은 여러 자재가 빨리 닳고 망가질 수 있지만 그만큼 더 자주 보수하고 살피게 되니까 건물 수명은 오히려 길어지죠. 또 사실 이 집을 외부 지원 없이 리모델링한다는 게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어요. 만약 문을 꼭꼭 닫고 우리 가족끼리 사용했다면 이 건물을 이렇게 유지하지 못했을 거예요. 다시 말해 이 집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유지시키려면 건물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했고, 결국 카페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응접실이요. 화양절충식 주택의 대표적 특징이 일본식 가옥에 서양식 응접실이 있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응접실은 다른 방과 달리 바닥 마감재, 조명 모두 원형 그대로 두었어요. 딱 보면 다른 데보다 조금 더 오래된 티가 나죠.








리모델링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어요. 그 고단한 과정을 지나고 나니 어떤 것을 얻게 되던가요?

글쎄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서울시 한복판, 게다가 이렇게 대학가 빌라촌 한가운데 이런 집이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는 분이 많아요. 킷테는 커피를 파는 카페지만 본질적으로는 손님들이 이 집의 시간 자체를 사주시는 것 같아 보람을 느껴요.



5년 후면 이 집은 100살이 되네요. 그때 어떤 모습이면 좋겠어요?

지금은 제가 잠시 맡아 카페로 운영하고 있지만, 저보다 오랜 세월 존재한 이 집의 미래는 이미 제 손을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꿈을 말하라고 하면, 유럽에는 200년 이상 한자리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많아요. 이런 공간의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 최대한 이 모습을 유지해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2130년에는 200년 된 건물에서 운영하는 100년 된 카페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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