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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가드닝, 오가닉, 재생

자연스러운 자연을 심는 정원사

정원사 이대길

화분을 키우는 게 유행이다. 집 안에 ‘작은 자연’을 만드는 테라리엄도 인기다. 대체로 마당이 없는 곳에 사는 도시 사람에게는 정원에 대한 로망이 있다. 작은 정원이 있는 카페를 찾아가고,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지난해와 비교해 봄 날씨가 사뭇 달랐어요.

올해는 봄에 비가 제법 많이 왔죠. 전반적으로 정원이든 숲이든 식물 왕성하게 생장하는 분위기어요. 요즘(6월 초 인터뷰 당시)은 조금 건조한 날씨가 지속돼 정원에 물 주는 게 큰일이네요. 비가 많이 와서 식물 살아나며 부피를 많이 키웠는데, 대기가 마르 수분 키워낸 크기만큼 증발하기 때문에 건조 피해를 입게 돼요. 잎도 좀 따고 물 주면서 관리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곳의 정원도 조성하셨다고요.

편강한의원에서 운영하는 코스메틱 브랜드 편강 율의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입니다. 이곳의 정원을 2023년 겨울에 조성했습니다. 해외의 많은 소비자가 찾는 곳인 만큼 정원에도 한국적인 요소를 넣고자 했어요. 또 정원 뒤편으로 큰 나무들이 있어서 그것을 배경 삼아 우리나라 숲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을 심어 기존의 정원을 연장한다는 개념으로 조성했습니다.


다양한 공간에 맞는 작업을 하고 계신, 공통된 맥락 같은 것이 있나요?

자연에 가깝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와 사고를 유지하려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 어떤 자연의 일부가 자리할그것이 자연스러울지 계속 고민하는 거죠. 이용상의 문제, 식물마다의 선호 등 다각도로 고민한 퍼즐이 잘 맞춰질수록 아름답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식물이 건강해야 정원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정원을 조성하는 데 브랜드 숍이나 주거 공간이 야외의 큰 공간에 비해 더 용이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같은 자연 안에 정원을 만드는 게 훨씬 어렵죠. 흔히 큰 자연이 배경으로 받쳐주기 때문에 더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도심의 경우 정원의 모습이 자연스러울수록 인공적으로 구축된 주변과의 대비감이 두드러져서 풀어내기에 훨씬 유리니다. 생태적으로도 넓은 자연 지대의 경우 지역 생태적 환경을 파악해 연결 지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요. 도심의 경우에도 생태적 부분을 고려하지만 환경이 작은 단위로 분절돼 있기에 조금 더 쉽게 풀어갈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원사 이대길 2014년 원예학을 전공하 휴학하고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에서 1년간 직원들과 함께 교육받고 숙식하며 수목원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정원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에게 수목원 생활은 식물 하나하나를 세세히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이후에는 정원 식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 1 일하며 그 깊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한편 그가 정원에 대한 이상향을 그리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은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였다. 그의 정원 이론을 바탕으로 디자인 정원을 보며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인가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그현대적 정원과 식재 디자인을 탐미주의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게 된다. 자연정원을 위한 꿈의 식물을 공동 번역하고 이어서 다큐멘터리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의 자막을 공동 작업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정원이나 조경 분야에서 이른 나이에 독립해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요.

이대길 스튜디오는 사실 무작정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죠.(웃음)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제가 관심 있는 현대 식재 디자인 분야를 시도하는 곳을 만나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지금보다 부족한 부분이 더 많았지만, 제 관심 분야를 스스로 정원에 접목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일반 직장을 다니며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릴 자신도 없었습니다. 개인 스튜디오를 차리면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점차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었죠. 역시나 초반에는 일이 전혀 없어서 아는 분들에게 일을 받아 일당 형식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실험정원을 꾸리기도 했어요. 2년 차부터 그동안의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하나씩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요.


실제 현장에 나와 느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앞에서 말한 실험정원 7년 가까이 농약을 안 쓴 곳이었죠.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염두에 둔 식물만 챙는데, 주변에 잡초도 생기고 이전에는 몰랐던 여러 생물도 만나게 됐어요. 예상하지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죠. 그런데 그 낯이 나쁘지 않았어요. 내가 하는 일이 이 생물들에게 영향을 주게 될 텐데, 나쁜 영향이 아니라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고 느꼈죠.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내 태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원의 생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어떤 희망을 느낀 것 같아요.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그렇게 하나의 식물만 살리는 게 아니라 그 식물을 찾아오는 새나 여러 곤충도 같이 살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점점 확장되는 것 같았어. 또 한 가지는 여전히 비즈니스 측면의 어려움이 있어요. 정원의 식물이 자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클라이언트는 효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하니까요. 한편으로는 제가 그들에게 기다림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고요.



내가 하는 일이 이 생물들에게 영향을 주게 될 텐데, 나쁜 영향이 아니라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고 느꼈죠.”



일반적으로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이 궁금하네요.

먼저 정원이 들어설 공간을 기준으로 설계를 해요. 클라이언트의 생각을 포함해서요. 그런 과정을 보통 3~4주 정도 거치고, 그다음 어느 정도 완성된 디자인을 실현하는 시공 과정을 거칩니다. 다른 업종의 경우 시공을 마치면 일이 완성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정원은 시공 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식물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렇게 돌봄이 시작되는 것이죠.


정원은 조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인데, 그 이후의 돌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정원의 자연 환경에 맞는 식물은 자생하게 되지만, 그 환경에 맞지 않거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난 경우 식물이 어느 정도 안정화될 때까지 정원사가 돌봐주어야 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정원이 무르익어가는 것이죠. 그만큼 조성 이후의 관리는 정원을 가꾸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관리를 통해 정원이 나아지는 것을 경험해본 클라이언트는 계약할 때부터 관리를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저도 현재 제가 조성한 정원 위주로 정기적으로 돌봄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정원의 크기나 식물의 양에 따라 주기를 정하는데,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날씨에 따라 할 일이 많아지면 2~3주 주기로 방문하기도 하고요.




서울숲 생물 다양성 정원 생생정원’, 선율조경기술사사무소와 협업, 2024 / 이대길 제공



개인 연구 목적으로 진행한 실험정원’, 2019 / 이대길 제공



이솝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 내 조성한 빗물정원’, 안마당더랩과 협업, 2021 / 이대길 제공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1층 하늘정원에 있는 플랜터 식재 디자인, 2024 / 이대길 제공



부산 복합 문화 공간 에케의 정원, 가든스튜디오 산하와 협업, 2024 / 김명구 제공



공동주택 단지 대형화되면서 조경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니다.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제가 자연을 보며 감탄하는 부분인데, 살아가는 개체들이 그렇게 다양한데도 같이 살 수 있게 안정성을 이루고 유지한다는 점이죠. 자연의 역사이자 장점인데, 다양해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이라고 할까요. 식물 다양하게 심수록 자연에 유리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 식물이 다양해지는 만큼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나 배려는 다양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식물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듯이 각기 필요한 것이 다른데 그런 고려 없이 그저 보기 좋은 것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거. 정원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각 식물에 대한 보살핌도 다양해져야 해요.


주거 공간 이외에도 점차 다양한 공간을 꾸미는데 정원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정원을 활용해 공간을 구성하거나 정원을 조성하는 부분들은 각기 장점도 있고 스타일도 좋고 대체로 퀄리티가 우수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각 식물을 다루는 점에서는 부족한 부분도 발견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각 식물에 대한 고려 없이 심면 결국 죽거든요. 보통 풀이 쉽게 죽다 보니 관리가 쉬운 나무 위주로 심거나 나무만 게 되겠죠. 가까운 일본만 봐도 정원이 나무뿐 아니라 여러 풀 같이 어우러져서 진짜 자연, 숲 안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경우 많은데, 이는 식물을 다루는 기술이나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숲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위해 다양한 식물을 활용하는데, 그로 인한 장점은 또 무엇일까요?

다양한 식물이 는 정원은 여러 모습을 보여줍니다. 식물마다 생장하는 시간이 다르거든요. 예컨대 꽃이 피는 시기가 다 달라요. 1년 동안 그 변화를 계속 보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일종의 음악이 흐르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종류가 다양할수록 1년의 시간이 더욱 다채롭게 흘러갑니다. 날씨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는 분위기나 감도도 있죠. 특히 저는 빛과의 조화를 좋아해요. 계절마다 빛의 질감이 다르거든요. 그때그때 빛과 식물이 조응하는 아름다움이 좋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일상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져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고요. 정원을 가꾸는 많은 분들이 땡볕에서 애써 풀 뽑으며 다양한 식물을 관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정원을 즐기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각자 좋아하는 계절의 분위기가 있을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고 지켜보고 싶은 정원이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에 가보는 것도 한 방법이고, 시간대가 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해가 좀 낮게 떠서 빛이 사선으로 들어오는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이에.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스스로 더 세밀하게 보는 방법도 찾게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정원이 있나요?

예전에 영국과 프랑스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유명한 정원 디자이너가 조성한 공원과 개인이 오랫동안 가 개인 정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인 정원에서 더 큰 감동을 받았. 그 이유를 지금도 찾아가는 중인데, 어느 정도 유추는 부분은 역시 정성이었던 것 같아요. 살아 있는 식물이기에 스스로 자라지만 정원사가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까지 그 감흥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 가드닝의 의미가 있을지 몰라요. 어떤 정원을 꾸려서 누군가를 초대해 좋은 경험을 주려는 태도 말이죠. 얼마나 많은 정성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만큼 더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니까요.


정원사라는 직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사람과 자연 사이에 있는 존재 같아요. 정원사는 식물의 언어도 알고 사람의 언어도 아는 만큼 서로 간에 필요로 하는 것을 통역해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



Text | CH

Photos | Ken P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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