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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essay, 큐레이션

3명의 사진가가 포착한 집의 색다른 표정

사진 전문 서점 <이라선> 김진영 대표

Text | 김진영
Photos | 김진영

집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곤 한다. 사진 전문 서점 <이라선> 김진영 대표의 감식안을 통해, 집을 기록한 포토그래퍼 3명의 사진집을 추천받았다. 부엌의 일상적인 사물부터 그 자체로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오래된 집, 10여 년간 아내의 모습을 빼곡히 담은 집까지 개성 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집에도 일상적이지만 가장 멋진 순간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테주 콜, <태양의 황금 사과>(MACK, 2021)



테주 콜, <태양의 황금 사과>(MACK, 2021)




부엌의 사물이 우연히 만들어낸 아름다움

테주 콜Teju Cole의 사진집 <태양의 황금 사과(Golden Apple of the Sun)>(MACK, 2021)오로지 부엌에서 찍은 정물 사진을 담고 있다. 식기나 음식을 소재로 한 작업은 세잔, 마네, 모란디 등의 회화나 얀 그루버, 로라 레틴스키, 샤론 코어 등의 작품처럼 많지만 테주 콜은 그간의 모든 정물 작업이 사물을 의도적으로 배열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작가가 사물을 배열하는 순간 이미지에 부분적으로 허구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상적인 부엌에서, 완전한 우연으로 사물이 무심코 놓인 상태를 사진에 담았다. 어떤 것도 의도적으로 배치하거나 빼거나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사물의 배열을 예측 불가능한 우연에 완전히 맡겨 작업했다.



테주 콜은 부엌의 사물을 찍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무것도 옮길 수 없다는 불편함과 골칫거리를 받아들이자, 빛의 우연한 모습과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나 이제 요리하려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우연에 순응하자, 사진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 어떤 것을 건드리거나 ‘더 나은’ 사진을 위해 무언가를 변경하거나 새로 둔다거나 누군가에게 나 대신 그렇게 해달라고 한다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는 엄격한 원칙을 따르기로 하자, 달리 말해 우연의 작동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하자 ‘프레임 안의 구성’은 순수하게 광학적이 되었다. 마치 기이한 스톱 모션 필름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사물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수아 알라르, <아버지>(Libraryman, 2019)



프랑수아 알라르, <아버지>(Libraryman, 2019)




아버지의 오래된 물건이 있는 집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의 사진집 <아버지(Papa)>(Libraryman, 2019)아버지 집에서 집의 풍경과 물건, 그리고 아버지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프랑스 남부 비녜르의 아버지 집에서, 93세로 쇠약해졌지만 집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며 생을 마감하길 원하는 아버지와 마지막 며칠을 보내며 이를 사진으로 담았다. 아버지가 집에서 보낸 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가구와 물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낡은 장난감부터 오래된 액자, 이름 있는 디자이너의 가구까지 분명 다양한 종류의 가구와 물건임에도 한 사람이 오래도록 쌓아온 취향의 세계에서 모두 조화롭게 어울린다. ‘아버지라는 제목의 책이지만 아버지 사진은 서너 장만 실렸을 뿐, 아버지의 집과 물건을 통해 아버지에 관해 보여주는책이다. 프랑수아 알라르는 사진집에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는 실내장식가로 불렸는데, 특히 색색의 물건 수집가로서 최고였다. 에토레 소트사스의 램프, 필립 스탁의 장식품, 루이 15 시대의 소파, 미술품, 종교예술 조각가였던 엄마를 기리는 성상들, 그리고 집 안 곳곳의 패브릭…. 아버지는 스타일을 섞고 세월을 견디는 걸 즐겼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엄마의 정신이 깃든 공간을 만들어냈다."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물건을 두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한 10

나이절 샤프란Nigel Shafran사진집 <전화하는 루스(Ruth on the Phone)>(Roma Publications, 2012)는 집에서 보내는 일상적 행동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내 루스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에 걸쳐 전화하는 모습만 담은 이 사진집에서 루스는 거실, 침실, 차고, 부엌 등 집 안 곳곳에서 전화 통화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을 한다. 유선 전화기를 든 젊고 귀여운 루스의 사진에서 시작해, 점점 나이를 더해가고, 무선 전화기를 사용하게 되며, 임신해서 배가 부르고, 아이가 태어나 병실에서 전화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나이절 샤프란, <전화하는 루스>(Roma Publications, 2012)



나이절 샤프란, <전화하는 루스>(Roma Publications, 2012)




루스의 모습은 때로는 초점이 맞지 않기도 하고, 빛이 부족한 차고에서 찍힌 사진에서는 어두컴컴해 잘 안 보이기도 하며, 눈을 비비는 중이라 예쁘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는 대상에 개입해 더 멋지게 표현하려는 욕망을 최소화하고 사진을 일상에 더욱 가깝게 표현했다. “루스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전화를 한다. 모든 것은 우리 주변에 있다.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물건을 두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이러한 것을 표현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크게 의식하지 않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나이절 샤프란의 말처럼 집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집 안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오래되고 낡은 물건에서부터 우리의 일상적 행동에까지, 집을 무대로 우리가 매일 채우는 시간 속에는, 발견되길 기다리는 아름다움이 무한히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김진영 | 2016년 서촌에 문을 연 사진 전문 서점 <이라선> 대표. 일요일처럼 편안하다는 뜻의 영어 'Easy Like Sunday'의 앞 글자를 따서 '이라선'이라 이름 지었으며, 한자로는 떠날 이(), 아름다울 라(), 배 선() 자를 써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배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모습이 담긴 사진집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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