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사 계획을 세울 때면 지도를 열어 근무지 기준으로 동선을 살펴보며 살고 싶은 지역을 찾는다. 그러나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간다는 즐거움보다 아쉬움이 크다. 몇 년간 집과 동네에 대해 쌓인 감정을 버려야 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만큼 지역과 공간에 공감대를 위한 의미 부여를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불편하지만 더 나은 강북에서의 삶
자연재해와 동물로부터의 위험을 피하고자 동굴을 파고 움막을 짓는 시대는 아니지만 벽과 지붕이 있는 집이라는 공간은 신체적 안정감을 주는 곳임은 틀림없다. 부동(不動)의 공간이기에 정신적 안정감을 더 느끼는 것도 같다. 강남에서 생활할 때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사회생활 위주의 삶으로 집은 쉬는 곳으로 인식되었지만, 최근 이사한 강북 생활은 ‘나의 삶을 위한 주거’에 더 관점이 맞춰져 있다. 강남 같은 계획도시보다 언덕이 많아 조금은 불편한 환경이지만 산에서 불어오는 공기에서 습도의 차이를 느끼고 자연의 소리가 정신적으로 좋은 바이오리듬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현재 나의 집은 거실 구조의 특성상 온돌이 아닌 1990년대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생활 패턴이 테이블 문화로 바뀐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소파 밑에 앉던 습관이 입식 문화로 바뀌며 엄청난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의자의 구조, 편안함, 스타일, 기능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등 작은 생활의 변화가 사물을 사용하는 목적에서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최근 느끼고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빈도가 높아지고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가 안정감에 있다는 것 또한 발견하게 된다. 의자의 사치보다는 즐거움을 경험한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왜 최근 몇 년 간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이런 경험을 못 했을까.
“편하지만 만족 못하는 반복되는 현실을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폐기
한국의 전·월세 문화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이사 때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폐기’라는 명목으로 가구나 소모품을 버리며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공간을 꿈꾼다. 그렇지만 2년 거주의 암묵적인 공식이 단기 생활을 위한 소비(자주, 이케아 등 SPA 브랜드)와 잘 어울리며 지속성보다는 소비성에 가까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늘도 혹은 내일도 간편한 배달 음식으로 다양성을 경험하지만 조리 과정 없이 살기 위해 먹는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허전함을 느끼게 만든다. 쿠팡이츠나 배달의 민족의 월 결제 금액과 주문 횟수를 보며 이런 생활의 지속 가능성에 부담마저 갖게 된다. 편하지만 만족 못 하는 반복되는 현실을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지금을 위해 하루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버리고자 지속 가능한 라이프를 고민하고 일상의 사물에 작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러 가지 물건을 사용하기보다 필요에 의한 정확한 관점에서 하나의 물건을 선택해 소비하는 것이 결국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의 심플 라이프를 통해 배웠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중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정신적인 것, 더 중요한 것(essential)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미 있는 물건의 수를 적게 할수록 그 물건들이 훨씬 더 가치 있어진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있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게 된다는 30만 가지 물건에 대해 우리는 과연 소유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 정리하고 간소화하는지가 생활의 질을 높여주진 않을까. 가끔 여행을 다닐 때 바퀴 달린 캐리어를 보면 사람보다 작은 집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마트와 주거 공간의 동일한 정리 개념을 알려준 오와 열
독일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형태의 사진처럼 마트나 백화점의 제품 진열 방식을 보면 기분이 좋다. 반복되는 오와 열은 제조 특성상 생긴 기본 단위 구성으로, 20세기 유통 구조가 만든 현재의 기준이자 결과다. 이 나열 방식에는 컬러, 재질, 용도, 크기 등 여러 가지 규칙이 존재한다. 이번에 이사한 부암동 집은 정희숙 공간미학 대표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옷가지와 사물의 오와 열을 맞추었는데, 일상생활에서 마트의 정리정돈 시스템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에 수많은 파일이 용도에 따라 정리되어 1분 내에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처음 집에 오는 손님도 주방 싱크대, 거실 서랍장 등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호텔에 사물을 비치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은 역시 호텔이라 말하는 것처럼 나는 매일 유럽의 에어비앤비나 호텔에서 장기 투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의 공간에 어울리는 물건을 구매 후 벌어지는 행동의 결과는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물론 좋은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꼭 필요한 무언가, 남겨질 무언가를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있으며 나는 그 양을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나의 물건을 얻기 위해 버려지는 부산물의 줄어듦을 돌이켜보면 삶을 위한 도구의 업그레이드가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집이라는 공간의 주거 문화가 변화하는 이사라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
단지 TV 위치만 바꾸었을 뿐
건물마다 입구에 모인 엄청난 쓰레기양을 보고 우리는 소비 시대의 정점에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환경을 위한 삶을 고민하게 되고 매일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보고 반성을 하지만 나 혼자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중립자 역할을 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쓰레기 탑을 보며 오늘은 어제보다 높이가 낮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중요하지 않은, 내 것이 아닌 것은 매일매일 퇴출되는 것이다.
내가 본 대부분의 집은 TV가 거실 중심, 그 맞은편에 소파로 설정 값을 세팅해놓았다. TV가 거실에서 주인공일 수도 있으며,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암묵적인 공식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바일폰 사용으로 어디서든 각자의 손바닥만 한 좁은 반경 안에서 많은 행위가 이루어진다. 나 역시 큰 거실에서 생각보다 굉장히 좁은 영역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이사를 계기로 거실 인테리어는 TV를 코너로, 오디오를 집의 중심으로 구성했다. 그 결과 다양한 일로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나의 삶은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음악으로 하루를 끝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단지 TV 위치만 바꾸었을 뿐인데 말이다. 우리 거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구병준 |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겸임 교수로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비즈니스 컨설팅을 진행하며, 리빙 &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챕터원(Chapter 1)을 운영한다. 디자인과 공예에 조예가 깊은 그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며 지속 가능한 공예와 더불어 더 나은 가능성을 제안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202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한국공예관 총감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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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디랜드 Brody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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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