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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작업실도 아닌 그런 공간

그래픽 디자이너 채병록

Text | Byungrok Chae
Photos | Jungmin Son

그가 일과 삶을 병행 중인 오피스텔은 남산타워가 바라보이며, 작업 테이블에 앉아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뷰를 갖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야근을 핑계로 퇴근 없이 잠까지 해결하기 시작한 복층 오피스텔은 많은 이야깃거리와 인연을 만들어준 공간이기도 하다. 그에게 사무실은 집도 작업실도 아닌, 그렇다고 스튜디오도 아닌 그런 공간이다.


집도 작업실도 아닌 그런 공간

한강대로의 12층 오피스텔에서 바라보는 남산 뷰는 그 어떤 오션 뷰, 한강 뷰보다도 멋지다고 자신한다. 도심에 우뚝 솟아 있는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산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스튜디오 겸 야근을 핑계로 퇴근 없이 까지 해결하기 시작한 복층 오피스텔은 많은 이야깃거리와 인연을 만들어준 공간이기도 하다. 집도 작업실도 아닌, 그렇다고 스튜디오도 아닌 그런 공간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 흔한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터라 나에게 삶의 공간은 꽤나 독립적이고 적막하기만 했다. 건축 일을 하셨던 아버지 덕에 주말엔 나무를 자르고 돌을 옮기 자그마한 정원을 가꾸기 일였다. 늦잠 자고 놀러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아버지와의 협업 아닌 노동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지금의 삶도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은 듯하다.




영역 없이 혼재되어 보이는 이 공간이 나에게는 나름 체계가 있는 최상의 회사이자 작업실인 셈이다.




나름 체계가 있는 최상의 회사이자 작업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평상시와 다른 일상을 보낸 이들이 많았다. 누구는 쾌재를 부르며 자유를 누렸을 , 가족 모두가 종일 붙어 지내며 조금은 자신만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2008년 이후 고작 몇 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혼자서 작업해온 나에게는 그저 무덤덤한 다른 세상 얘기였고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 지루할 틈 없는 삶을 살아온 듯하다. 혹자는 만나는 곳이 회의실이고 노트북을 펼치는 곳이 여느 카페일지라도 작업실이라 한다. 하지만 영역 없이 혼재되어 보이는 이 공간 나에게는 나름 체계가 있는 최상의 회사이자 작업실인 이다.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유명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여러 곳 방문는데 의외로 소박하고 좁은 공간에서 어마어마한 작업들을 보고 놀랐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작고 소박한 작업실을 유지하는 하나의 이유일 듯도 하다. 또 하나, 지금까지 불문율처럼 지켜온 것이 있는데, 20년간 신발을 신지 않고 작업다는 것이다. 바닥의 따뜻한 온기와 되도록 가볍고 편한 복장으로 나름 중요하게 여긴 작업에 집중해온 듯하다. 낮보다는 이른 새벽이 좋고 평일보다는 주말에 작업하는 습관이 어느덧 나에게는 의외성의 보편화가 되었다.




어느 곳보다 집중이 가능한 세상 속 공간

나의 런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이 틀 때의 풍경과 날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큰 창이 필요하다. 게을러질 만한 여유도 혼자 많은 것을 처리해야 하는 마감도 일터라는 고정적 개념에서 삶의 흐름을 일과 함께하는 것이 지칠 때도 있지만 조금씩 쌓여가는 편애하는 나의 이미지와 소품들이 공간을 메나간다. ‘집은 쉬는 곳이다’, ‘집은 일과 분리되어야 한다’ 같은 주변의 조언 아닌 꾸짖음도 많이 들었지만, 세상 어느 곳보다 집중이 가능한 세상 속 공간에서 그렇게 여유를 찾아왔다.



누구나 보금자리에 대한 낭만 있을 것이다. 작은 소망이라 하면 오래오래 작업할 수 있는 쉼 같은 공간이다. 도심의 옆집 담벼락 뷰가 아닌 햇살이 잘 담기는 화단이 바라보이는 테라스와 영감으로 시작해 머릿속 스케치를 마무리할 수 있는 자그마한 히노키 욕탕이 있는. 그러한 공간에 나만의 땅콩 주상 복합 공간을 만들고 싶은 꿈도 갖고 있.




채병록 | 그래픽 디자이너. 2014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씨비알그래픽CBR Graphic을 운영고 있다.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전통으로부터 현대적 미감을 찾아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나이키, 스타벅스 등 다양한 문화 단체나 기업과 협업 활동도 하고 있으며, 빅토리아&버트 미술관, 뮌헨 국제 디자인 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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