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CULTURE|오가닉, 재생, 프리미엄

흙 속에 두 손을 함께 담그고

책 “흙을 만지는 손”

출판사는 ‘아이와 함께 도예를 배워보는 책’이라고 소개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도예가 마리옹 그로가 경험한 치유의 힘을 아이에게 전달하고 싶은 부모를 위한 책이다. 더 나아가 공예와 도예의 힘을 사진과 글로 느껴보고 싶은 모든 사람의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아이와 함께 만드는 컵, 손바닥 도장, 비누 받침대, 그릇 등 일상용품 사이사이 포토그래퍼 클레르 과리가 포착한 교감의 순간이 펼쳐진다.



Little VILLIV

육아는 한 가정에 크나큰 축복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개인만이 아닌 가족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VILLIV” 매거진은 매월 1회에 걸쳐 아이와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발자취를 찾아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흙을 만지는 손(Les Mains dans la Terre)”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마른 흙 냄새가 실내를 감싸는 듯하다. 다음 장을 펼치면 마리옹 그로Marion Graux와 세 아이가 집 안 작업실에서 흙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진이 이어진다. 포토그래퍼 클레르 과리Claire Guarry는 흑백과 컬러 필름을 이용해 엄마와 아이들이 손과 흙을 통해 서로 교감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사진이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작가 마리 고드프랭Marie Godfrain은 도예가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서 일상을 대하는 마리옹 그로의 철학을 담백한 문체로 풀어낸다. 마리옹 그로의 보헤미안적이고 시적인 삶의 방식이 문장마다 읽힌다.


아이의 작은 손이 촉촉한 점토를 누르자 손끝을 따라 미세한 주름이 번진다.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던 엄마가 작은 두 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포개어 함께 흙을 매만진다. 말보다 감촉이, 생각보다 감각이 공간에 가득 차는 순간. 무엇을 만들고 싶을까?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손이 나누는 대화만으로 충분하다.



www.youtube.com/@gallimardjeunesse6990



마리옹 그로의 집 안 작업실은 세 아이의 놀이터다. 창가에는 말린 꽃과 아이들이 그린 그림, 은은한 색감의 도자기가 자리하고 벽에는 도구, 주문서, 영감을 주는 물건들이 걸려 있다. 작업실은 부엌 한쪽 또는 어느 생활 공간이든 가능하다. 도구 또한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빨대, 쿠키 틀, 숟가락, 젓가락 등 주방용품이나 생활용품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하면 비용도 절감되고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저는 흙과 맺는 실질적 관계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강바닥의 점토가 식탁 위 접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연과의 연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죠.” 그녀는 도예 작업을 소개하기 전 흙은 우주를 구성하는 네 요소 중 하나이며, 불과 함께 태곳적부터 인류와 공존해왔음을 상기시킨다. 아이들은 언제나 진흙, 손을 움직이며 노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마리옹 그로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손바닥 위에 흙 덩어리를 올려놓고 그 감촉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단단한가, 부드러운가? 따뜻한가, 차가운가? 이제 천천히 물레를 돌려본다. 부드럽게 만지고, 힘을 실어 다듬고, 두드리고, 눌러본다. 목적 없이 손으로 흙을 감싸고, 쓰다듬고, 눌러보면서 촉감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 그렇게 엄마와 아이의 놀이는 흙장난으로 시작해 도예와 예술이 주는 창작의 기쁨으로 번져간다.


목차에는 손자국 조각, , 식기, 이름표 등 총 아홉 가지 일상용품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다. 하지만 이는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 열린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자국을 남기는 작업은 아이가 성장하는 기록이 되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빚은 컵은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손길과 온기가 담긴 용기가 된다. 책은 이러한 실용적인 제작 과정에 도예의 본질적 기쁨과 전통, 감각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준비물과 과정이 자세히 적힌 설명 사이 마리옹 그로가 아이와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도예에 대한 오해, 편견, 철학, 태도에 관한 글이 이어진다.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흙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리옹 그로는 도예를 배우는 과정에서 기술적 완벽함보다 몸과 감각을 조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작업에 몰입하려면 등을 곧게 펴고, 안정적으로 몸의 중심을 잡은 채 손끝에 집중해야 한다. 손이 흙을 빚으며 움직이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빚고, 반죽하고, 가마에 굽는 과정을 반복하며 본능적으로 작업에 몰입해야 한다. “이런 명상 같은 상태에서 손이 자연스럽고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저는 작품을 다시 손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야만 그 에너지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프랑스 채석장에서 채취한 붉은빛 점토 네 가지를 조합해 은은한 파스텔과 우윳빛 색감으로 자신만의 색조를 개발한 것도 이런 철학과 맞닿아 있다.


창백한 피부에서 붉어진 볼까지,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한 이 여정은 그녀만의 개성이자 특징이 되었다. 전문적 수준에 도달할수록 자유로운 창작의 범위는 오히려 좁아저요. 기본 동작을 반복해서 익히는 것이 중요하죠.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도예라는 작업이 주는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하나의 단순한 형태를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더 의미 있죠. 기술이 쌓이면 손의 움직임이 점차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지며 본능적인 감각이 발휘됩니다. 집중과 기술이 자리 잡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완벽하지 않은 형태와 자연스러운 불규칙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요.”



어렵고 복잡한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하나의 단순한 형태를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더 의미 있죠.”



하지만 도예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하나의 작품이 되려면 내구성과 균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흙의 성질과 가마에 굽는 방식, 형태의 안정감이 완성도를 결정짓는 요소지만 무엇보다 가장자리 마감이 중요하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모서리는 깨짐을 방지하고, 균형 잡힌 비율은 형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전통적 도예가들은 단순히 외형뿐 아니라 손에 쥐었을 때의 무게감과 실용성을 고려하며, 쓰임새가 있는 도자기를 이상적인 결과물로 여긴다.


"도예는 손끝에서 시작되는 끝없는 기쁨의 불꽃입니다." 마리옹 그로는 도예가 단순한 공예를 넘어 감각과 직관이 이끄는 창작 과정임을 강조한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형태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집중과 몰입, 기쁨이 피어난다. 완벽한 결과를 향한 조급함이 아니라, 손과 흙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작품. 이 책은 도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빚는 행위를 통해 감각을 깨우고 내면의 균형을 찾는 법을 안내하는 책에 가깝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흙을 만지며 자신만의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마리옹 그로가 전하고 싶은 도예의 본질이자, 프랑스어 책임에도 나의 책장에 꽂혀 있는 이유다.



Text | Anna Gye

Photos | Éditions Gallimard Jeun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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