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FEATURE|도시, 오가닉, 프리미엄

소리를 소리내는 공간

고음질 소리 지향 공간들

음악을 감상하고 감성을 공유했던 음악감상실이 쇠퇴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가 2020년대 레트로 붐으로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음악감상실에서 좋은 음악, 더 좋은 음질이란 무엇인가를 배운 사람들은 그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하고 하이엔드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Audeum Audio Museum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음악감상실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모이는 공간이자 문화를 공유하는 장소였다. LP 플레이어, 오디오 스피커 같은 음향 기기가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이었고, 듣고 싶은 대로 바이닐을 구매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화가 변하기 시작한 건 음악의 소유 방식이 달라지면서부터다. CD와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MP3는 그것을 더 쉽게 만들었다. 하지만 2020년대, 20·30대 사이에서 불기 시작한 레트로 붐으로 아날로그의 따뜻한 감성까지 전해주는 LP가 유행하면서 음악감상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유행의 중심인 청년들은 더 비싸진 LP 플레이어와 바이닐을 쉽게 구매할 수 없어 음악감상실에 가서 음악을 듣고 레트로 문화를 경험한다. 이렇게 압축된 디지털 음질이 아닌, 미세한 차이까지 전달하는 고음질에 눈을 뜬 MZ세대는 LP 바를 넘어 하이엔드 오디오로 소리의 경이로움을 전달하는 음악감상실을 찾아간다.


그 결과 오디오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했던 음악감상실이 꼭 가봐야 할 공간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황인용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이하 카메라타). 1930년대에 제작한 독일 클랑필름사 스피커와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극장용 스피커가 설치된 이곳은 대형 스피커 전문가가 소리를 조율해 고음역대 소리까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최대한 좋은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곳이기에 구조부터 건축자재까지 특별히 신경 써서 설계했다. 같은 지역에 위치한 콩치노 콩크리트도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이곳에도 1930년대에 제작한 독일 클랑필름사 스피커와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사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데, 카메라타와 달리 인간에게 잘 들리는 중저 음역대가 잘 전달되어 보다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카메라타와 콩치노 콩크리트오로지 음악 감상만을 위한 공간으로 대화가 금지되며 간단한 음료만 마실 수 있다는 철저한 규칙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음악만 듣는 사람, 창밖 경치를 보며 멍때리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등 혼자서 조용히 음악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휴식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콩치노콩크리트



©Audeum Audio Museum



뉴욕 리스닝바 Eavesdrop



뉴욕 리스닝바 All blues



현대사회에서 음악감상실처럼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도록 이끄는 공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헬싱키 대학교 아시아 연구 및 음악학 조교수 라세 레흐토넨Lasse Lehtonen은 대화 없이 음악에만 집중하는 음악감상실이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말 그대로 짧은 콘텐츠에 노출되어 도파민에 중독되고 집중력이 낮아지는 현시대에는 하나의 감각, 행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이 휴식은 감상의 질을 높여 사람들이 더 좋은 소리를 찾도록 만든다. 클래식 음악 관련 웹사이트와 오프라인 감상회를 기획하는클래식 앨범 선데이스Classic Album Sundays’ 창립자 콜린 코스모 머피는청각은 시각과 다릅니다. 보기 싫으면 눈을 감아버리면 되는 시각과 달리, 귀는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호흡하듯이 듣게 되죠. 그래서 소리에만 집중하면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고, 고급 사운드 시스템에서는 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라며 좋은 음질에 노출될수록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리에만 집중하면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고, 고급 사운드 시스템에서는 더 미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작년 6월 개관한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Audeum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국내 최초 소리와 오디오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박물관으로, 19세기 축음기부터 1920~1960년대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까지 전시되어 있다. 예약 관람만 가능한데 매회 매진되는 이유는 역사에 남을 정도로 유명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생생하고 정직한 음질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 시스템이 발전하기 시작한 1920~1930년대의 대형 스피커로 듣는 음악은 웅장하고 묵직해 압도될 정도다. 오디움은 각 오디오와 스피커의 특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클래식, ,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준다. 덕분에 평소 듣던 음악이 스피커 하나로 다르게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급 오디오로 음악을 제대로 듣는다는 건, 전에 하지 못했던 차별화된 경험을 한다는 의미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음악감상실이 유행하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팬데믹 이후, 작지만 소리에 집중하는 리스닝 바listening bar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영국 런던에서 하이파이 오디오 바JAZU를 운영하는 로지 로버트슨은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젠 집을 나설 이유가 있어야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젠 집에 없는 것을 제공해야 해요라고 답했다. 지금의 사람들이 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음악감상실을 찾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자극적인 방해를 받지 않고, 좋은 소리로 음악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확실히 평소와 다른 경험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경험을 통해 얻는 가치다.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통해 휴식을 취하고, 지나친 자극으로 무뎌진 감각을 다듬으며, 집과는 또 다른 편안함을 만끽한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Audeum 



RELATED POSTS

PREVIOUS

새로운 내 집을 향한 첫걸음
하우스 리터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