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매체를 통해 올해의 인기곡, 올해의 선수, 화제가 된 사건 및 사고 등을 접할 때 한 해의 끝이 다가옴을 실감하고 달력을 한 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면 각종 매체와 서점에서 선보이는 ‘올해의 책’이나 베스트셀러 목록은 어떨까. 많이 사서 읽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어떤 시각과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할 때 한 번 참고할만하다. 혹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다면 서점에 가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집어 드는지 관찰해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주거 문화에서 큰 변화가 일고 있는 일본의 주목할만한 서적을 들여다보려 한다.
2025년, 주거 문화를 흔들 인구 감소 캘린더
먼저 일본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책이 도드라진다. 대표 주자로 <미래의 연표- 인구가 감소하는 일본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 未の年表 人口減少日本でこれから起きること>과 그 속편인<미래의 연표2 인구가 감소하는 일본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 未来の年表2 人口減少日本でこれから起きること>을 꼽을 수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일어난 사회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책은 서점에 차고 넘친다. 그러나2019년에는IT 기술자가 부족해 기술 강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2025년 즈음에는 동경마저 인구가 감소해 대도시 번화가에도 빈집이 속출하고, 노동 시장이 고령화되어 젊은 층의 근로 의욕이 저하될 뿐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등 여러 방면에서 붕괴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직언’하는 책은 이 저서가 유일할 것이다. 왜 저자가‘인구 감소 캘린더 人口減少カレンダー’라고까지 이름 붙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목조목 짚었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일본 사회 앞에 놓인 선택지는 정년까지 보장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주택 등 자산을 마련해두면 노후가 편하다는 기존 인식과 정반대다. 24 시간 체제이다시피 하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1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지도록 하며, 심지어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낮춰 창업을 해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한다.
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너도, 나도 도심 혹은 교외 지역에 크고 좋은 집을 마련하려 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전략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라고 주문한다. 집과 집안의 살림살이도 필요한 만큼만 콤팩트하게 마련하고, 중장년층 인구는 이미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지방으로 분산토록 하며, 비주거 지역을 주거 지역과 구분해 빈집 속출을 예방하자는 제안을 몇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고령 인구 증가에 의한 집주인과 세입자 문화의 변화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1인 가구도 늘고 있다. 그러면1인 가구와 고령자 가구가 이웃으로 지내면 어떤 모습일까. 일본 개그 콤비 카라테카 カラテカ의 멤버 야부 타로 矢部太郎가 집주인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집주인과 나 大家さんと僕>를 보며 간접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잡지에 연재하며 호응을 얻었던 만화 에세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한<집주인과 나>는7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인기를 얻을 뿐 아니라 올해 ‘제22회 데즈카오사무문화상’까지 받으며 작품성과 영향력까지 인정받았다.
<집주인과 나>에서 주목할 부분은 작가가 그려낸 일본 사회 속 일상이다. 도쿄 시내에 위치한 집에서 같이 살던 형제자매가 사망해 홀로 지내는 고령의 집주인부터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이웃 같다. 거기에다 입주 당시 부동산에서 혹시나 변고가 생긴 것 같으면 바로 연락할 것을 세입자에게 부탁하는 장면이나 집주인이 외출한 사이 연락이 안 돼 전전긍긍하는 세입자와 부동산 관계자의 모습 등도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기에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 만했을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웃과 풍경을 바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인 것은‘남’이었던 집주인과 세입자가 교류하며 각자 잊고 있던 것을 되찾는 모습이다. 가족을 떠나보내 홀로 남은 집주인은 타인과 교류하며 느끼는 온기를 다시 경험하고, 세입자는 바쁜 일상에 파묻혀 잊고 지내던 삶의 여유와 지혜를 터득하며 서로를 이해하고‘가족’과 같이 아끼고 챙기는 사이로 발전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거나 먼저 떠나보내 홀로 지내는 이들이 많은 요즘 세태에 맞는‘집’과‘가족’이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안겨준다.
일본어로 ‘마음이 풀린다’는 뜻인‘호도케루 ほどける’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도 경쟁이 극심하고 일상이 팍팍하다 보니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것에 이러한 표현을 자주 쓴다. 개그맨 야부 타로의 저서도‘호도케루’ 할만한 거리를 찾는 최근 일본 독자의 감성에 맞아떨어진 사례이다. 노트 한구석에 연필로 낙서하듯 그린 간결한 그림으로 고령의 집주인과 젊은 세입자가 교류하는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내 독자들이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것도 한몫했다.
80년 전에도 예견된 ‘동일한 삶’에 대한 고민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는 국내에도 출간돼 있다. 제목만 보면 딱딱한 자기 계발서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1937년 일본의 저명한 편집자인 요시노 겐자부로 吉野源三郎가 쉽게 풀어쓴 철학서이다. 제국주의, 파시즘 그리고 전체주의가 온 세계를 뒤덮어 긴장감을 한껏 조성하던 당시,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한‘인간’으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독자들이 고민해보기를 바라며 중학생인 주인공‘코페르’와 그의 숙부가 서신 형식으로 문답을 주고받는 형태로 구성했다.
출간 후80여 년 동안 고전으로 자리 잡던 이 책은 만화로 재각색되며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발간 후2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일본 국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 거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 번복 작품으로2020년 즈음 개봉 예정으로 작업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져 더욱 화제다.그는 “쇼와 시대 당시의 군벌 정치는 파멸로 치달았습니다.요즘 세상도 그렇게 빠르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우경화 사회 분위기와 산업화와 자본주의 확산으로 인해 나라는 부유해졌지만 정작 개인은 여전히 악전고투하는 현실 등이‘나’와 ‘나의 인생’ 전반에 대해 고민케 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코페르는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대해 “개인은 분자와 같고, 그 분자가 모여 전체 흐름을 만드는 것 같다”라고 밝힌다. 더 나아가 “그 분자가 만드는 흐름이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그런데도 바꾸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라고 꼬집어 이야기한다.
내 인생, 그리고 그중에서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집’을 둘러싼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금까지 모두가 똑같이 해왔기에 당연하다고 여긴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다 보면 나와 내 인생, 그리고 인생의 주 무대 중 하나인 집에 대해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체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주인공의 멘토 격인 숙부는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막연하게 머릿속에서만 그리고 상상으로만 치부했던 나의 삶, 그리고‘집’을 둘러싼 아이디어도 충분히 스스로 결정해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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