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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라이프스타일, 프리미엄

창문이 고마운 이유

창문, TV 리모컨, 화장실

작은 물건부터 큰 구조까지. 집 안은 수많은 물건과 요소로 채워진다. 큰 생각 없이 사용해 온 그것들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창문의 개수와 크기는 부의 많고 적음을 나타냈고, TV 리모컨을 소유하는 것은 서열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옴으로써 집의 역사는 새롭게 써 내려가게 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필자의 실제 관점이 아닌, 내용과 유사한 가상 이미지입니다. / ©HMMB



나는 지금 거실에 앉아 창문을 마주한 채 글을 쓰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 너머로 창문 밖 풍경이 들어온다. 창문 밖의 앞 집이 보인다. 그 집의 경사진 지붕에는 눈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저 멀리 북악산 끄트머리도 조금 보인다. 하늘은 흐려서 기분이 좀 울적하다. 저녁에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술 한잔이 생각나게 한 것은 내 마음인가, 저 창문 밖의 흐린 하늘인가. 어제도 그리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가끔 해가 났다. 잠깐 해가 나서 거실에 빛이 들어오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그러니까 내 마음을 바꾸는 건 마음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오는 빛의 유무인 셈이다. 밖을 볼 수 있고 햇빛이 통과하는 창문이 집에 있다는 건 근대 이전만 하더라도 커다란 특권이었다. 그러니 창문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이전 한옥에는 유리창이 없었다. 우리 선조는 그릇은 잘 만들었지만 유리는 생산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옥의 창호에는 기름 먹인 종이를 사용한다. 한지는 무척 훌륭한 건축 재료다. 외부의 차가운 공기를 차단함과 동시에 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방 안을 따뜻하고 밝게 하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유리창처럼 밖을 볼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한옥의 창호는 열 수도 있고, 여름에는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들어 올려서 완전히 개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는 문을 닫아야 하므로 현대 주택에 사는 나처럼 방에 앉아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밖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20253‘VILLIV’ 매거진에 실린집의 특권인 창문,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에서 이어집니다.




국내 최초 TV인 금성 VD-191에는 채널 다이얼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TV 채널을 발가락으로 돌려본 적 있나? 나는 어린 시절 그렇게 했다. 그것은 편안하지만 안정된 행위는 아니다. 또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볼 때는 발가락으로 채널 다이얼을 돌리는 것은 물론 손으로 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격 조정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게으름이 도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에너지를 덜 쓰고 어떤 이익을 얻겠다는 태도다.


최초의 TV 리모컨은 1950년에 미국의 가전 회사 제니스가 개발했다. 초기 TV 리모컨은 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을 만든 의도는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편하게 채널을 돌리려는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 TV를 보다가 채널을 바꾸려면 일단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어 일어서서 TV 앞으로 걸어가 손으로 채널 다이얼을 잡고 돌리는 일련의 행위가 필요하다. TV 리모컨을 발명한 제니스의 엔지니어 유진 폴리Eugene Polley는 이 짧고 힘들지 않는 행위조차 귀찮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편리한 물건에게으름뱅이(Lazy Bones)’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선이 달려 있는 것이 미관상 좋지 않아 5년 뒤에는 무선 리모컨을 내놓았다. 그 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거의 모든 가전제품에 리모컨이 딸려 출시되었다.

20256‘VILLIV’ 매거진에 실린TV 채널을 발로 돌리다에서 이어집니다.






새롭게 지은 한옥에도 뒷간은 없고, 옛날 한옥이라면 뒷간을 제거하고 실내에 현대식 화장실을 짓는다. 재래식 화장실이 절대로 재현될 수 없는 이유는 상하수도 같은 현대 도시의 필수적 시스템을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재래식 화장실에 대한 부정적 기억 때문이다. 재래식 화장실은 냄새가 나고 더럽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아주 역겨운데, 파리가 그곳에 알을 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재래식 화장실은 반드시 필요한 곳이지만, 집에서 가장 천대받은 낮은 신분의 공간이었다.


한옥에서 화장실은 별도의 공간, 사람들 눈에 덜 띄는 후미진 곳에 있었고뒷간이라 불렀다. 안채나 사랑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그러니 냄새가 덜 나서 좋긴 한데, 문제는 밤에 볼일을 볼 때다. 밤에 볼일을 보려면 무섭다. 깜깜한 곳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운 것이다. 옛날에는 화장실에서 처녀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또 볼일을 보는 동안 변기 밑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빨간 휴지를 줄까, 파란 휴지를 줄까?” 이런 괴담 때문에 아이들은 밤에 혼자 화장실 가기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다른 형제 중 하나를 데리고 가서 뒷간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여름에는 참을 만하지만 겨울에는 추워서 볼일을 보는 일이나 뒷간 앞에서 기다리는 일 모두 고역이었다. 그런 불편과 공포를 덜어주는 물건으로 요강이 있었다.

20257‘VILLIV’ 매거진에 실린신분 상승한 화장실의 사연에서 이어집니다.



Text | Sh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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